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40화 - 가르침 받은 자들 - 본문
방침이 정해진 노장군 리처드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루기스와 큰 틀을 정한 뒤 곧바로 군 재편성에 착수했다
갈라이스트 구왕국군을 병합한 신왕국군은
다시 창을 들고 전쟁터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표면은, 대마 및 마성의 토멸이라고 하는 것
하지만 국가로서의 최종 목표는 달랐다
최종 목표는 북벌
대성당 직할령의 제압 및
참칭자인 선왕 아멜라치츠 갈라이스트의 토벌
이로써 갈라이스토 신왕국은
군사정치 모두 불안정한 정세를 매듭지을 수 있었다
또 이 대원정은 문장교, 동맹국 가자리아
볼버트 왕조, 남방 일리저드와 공조하에 치러지게 됐다
물론 실제로는 불가침을 다짐하는 데 가까웠긴 하지만 말이다
한 달도 안 돼
단기간에 다른 나라와 동조할 수 있게 된 것은
리처드나 문장교의 대처가 좋기도 했지만
현실적 위협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이 진짜 원인일 것이다
즉 요새거수 제브렐리스의 존재
지금도 계속 대륙을 잡아먹는
그 놈을 방치하면 모든 국가에도 위협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
이 뜻만은 어느 세력이나 인물에 있어서나 공통되었다
결국 이 원정에 동의한 여왕 필로스는
루기스, 리처드를 비롯한 병사들에게 격문을 띄웠다
"부당하게도 대성당은 우리가 영유하는 토지를 지배해
세금이라고 칭하며 백성들에게 금품을 강탈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멋대로 자신의 왕을 모셔 받들고 있다
이것은 반란이다, 즉각 반란자들을 진압하고
대마 및 마성으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거병하라!"
대의명분은 얼마든지 있었다
매사는 탈없이 진행되어 갔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사태를 달갑게 맞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나 혼자뿐일지도 모른다
리처드의 부관 네이마르 글로리아는
막사에서 마지막 부대 편성을 마친 뒤 상관에게 한 가지 보고를 했다
"……대대장님... 아니 장군님
역시 이번에 각하게서는 이번에 최전방에 서서는 안 됩니다
원정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리처드는 보고서에 시선을 남긴 채 네이마르의 말을 들었다
그는 얼굴을 들지는 않았지만 목소리 자체는 잘 듣고 있다
그리고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말을 이었다
"우리가 북진하면, 틀림없이 대성당은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병사는 2만, 귀족의 사병을 합친다해도 3만
반면 대성당은 구왕국군 5만 명과 성당 기사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기도 대성당의 수호 아래 매우 높고, 지휘관의 질도 매우 높습니다
각하께서 진흙을 뒤집어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 남자에게만 맡기면 됩니다"
"또 그 얘기냐, 네이마르"
네이마르는 리처드를 보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이는 그녀 솔직함의 표현이었고, 그러나 결점이기도 했다
적어도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그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자기와 정반대의 의견을
정면으로 던지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순순히 무슨 일이든 흡수할 수 있는 그녀지만
변론술 만큼은 너무나도 미숙했다
리처드는 보고서를 살짝 들여다보며 고개를 들었다
"몇 번이고 말하겠습니다, 각하!
당신은 그 남자로부터 꼬붕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아직 대성당도 맞아 줄 것이고
브리트니스 각하도 장군이라면 환영할 것입니다!"
"너 정말 설득에 적합치 않구나
그런 노골적인 말로는 사람은 안 넘어가
정론이란 건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순간에만 통하는 거야"
"……정론이라는 것은 각하께서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리처드는 자기도 모르게 주름을 찌푸리며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이마르는 하나만 잘 구슬려 주면
금세 입을 다무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였다
그것은 강한 반면에, 계기가 있으면 굴복을 할 수 있다는 성질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끈기가 있었다
상대에게 달려들 만한 기백이 있었다
"......정면에서 한다면 말이지
네가 하는 말도 틀리지 않아, 우리가 상대하는 건 대성당과 대마
안그래도 불리한데, 몸을 반으로 갈라 싸워야 되는 상황인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몇 번이고 달려 들었을거야
정 도망치고 싶다면, 북쪽으로 도망쳐도 돼"
"혼자 안 가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네이마르는 상관을 직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엔 거짓의 빛이 없었다
분명 더 이상 안이한 말만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인하고 나서야 리처드는 보고서를 집무 책상에 올려놓고
그녀와 눈길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대성당에 그대로 쳐들어가는 게 아니야
북쪽 보루에 진을 칠 것이다, 루기스가 제브릴리스를 상대하는 동안
대성당이 남하해 온다면, 놈들을 도리어 잡아들이는 거지
어떻게 말하면, 방어책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군"
대마 제브렐리스가 다가오는 이상
이쪽에서 공격하는 것 같은 무모함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지키기만 한다면
적의 반수 정도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이번 것은 능히 적을 누를 만한 작전으로
항간이 말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 공세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그럴까요? 만약 브리트니스 장군이 온다면 어떠하실 건가요?"
네이마르는 아직도 리차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매달리려는 것 같기도 했다
"저도 한때 브리트니스 장군 밑에 있었습니다
각하의 말씀대로, 그녀는 규격이 정말 달라요
제가 두 배의 병력이 있어도, 그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와는 대립해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각하께서도 브리트니스 장군을 잘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에서 자신을 넘을 사람은 없다
매장감옥 벨라 가까이에서
그렇게 말한 발레리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은 과신도 오만도 아니고
단지 진실이라는 것을 지금의 네이마르에게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발레리가 다른 장병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을까
그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엄청난 강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동시에 네이마르는 발꿈치에서 기어오르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 괴물을 적으로 돌리다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네이마르는 어리석지 않았다
끝까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반대로 난 입맛이 도는 걸?
그녀석도 너도 내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 됬나 봐"
"…그 남자와 나란히 하는 것은 그만둬요"
네이마르에게 그 남자, 란 하나 뿐이였다
그녀는 늘 꺼림칙한 감정을 얼굴에 붙이고 내뱉듯이 말했다
리처드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노회함, 냉혹함이 눈동자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반가운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다면 발레리도 포함인가
내가 발레리를 처음 만난 것은 말이지
아직 그 녀석이 애송이였을 무렵이야
나는 그 땐 용사의 직함을 버리고, 모험자를 했었지
초면에 그 녀석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알아?"
네이마르는 고개를 저지도 않은 채
멍하니 상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사를 거의 말하려 하지 않는 리처드가
느닷없이 반가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웬만한 충격이었다
그렇다기보다, 그런 무렵부터
발레리와 면면이 있었다는 것이 금시초문이였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녀의 동요를 뒤로 한 채 리처드는 말을 이었다
"용사여, 우리의 긍지와 영혼의 안녕을 위해 귀하께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면서 덤벼들었지, 암살 시도라면 몰라도
결투를 신청하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당연히 내가 이겼지
하지만 그 때부터 사사건건 따라다니게 되었더군
뭐 나도 돌보고 싶었는지,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었지
이제는 이길 수 없겠지만... 네 말대로 발레리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러니 놈을 막는 역할이라면 누구보다도 내가 제격이겠지"
그러니까
애초에 그녀와 대립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자신의 눈동자에 분노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네이마르에게는 알 수 있었다
스승은 다시금 자기를 구슬리려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반박하려고 입술을 삐죽거리는 순간
네이마르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리처드가 네이마르의 말을 가로챘기 때문이였다
"잘 들어, 이제 네게 전쟁터에서 배울 것도 많지 않아
기회도 없잖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라"
그걸 끝으로 리처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숙연하게 원정 준비만 갖출 뿐이였다
네이마르도 어찌된 영문인지 더 이상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가 이해해버렸기에 말이다
리처드 퍼밀리스가 원정하는 곳은
북방 메드라우트 보루
북쪽에 조성된 보루는 과거 갈라이스트 왕국이
그 지점까지 국토를 잃고 국경을 좁힌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쇠퇴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했다
옛 용사와 지금을 사는 영웅의 대립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었다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제17장 성전 시대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42화 - 천년 앞서 - (1) | 2021.05.10 |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41화 - 둘 간의 모의 - (0) | 2021.05.07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9화 - 뜨거운 용 - (0) | 2021.05.07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8화 - 적은 북방에 있다 - (0) | 2021.05.07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7화 - 무구한 칼날 - (1) | 2021.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