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02화 - 하늘을 달려라 -
왕성 밖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는 불기운을 몰아친
왕성을 뒤로 하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민가의 지붕을 타고 도시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피에르트 본연의 체격으로는 그런 재주를 부릴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도약의 순간에 다리의 마력을 집약해 폭발시키고, 뛰었다
그리고 그것만을 단지 연속으로 행하고 있었을 뿐
이 자체는 피에르트가 일찍이 마음에 그린 엉뚱한 마법 이론 중 하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면 인간의 행동능력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이론을 구상하는 것과
실제로 행 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피아트는 새삼 깨달았다
발밑에 마력을 모으는 일 자체는 참 쉽다
그러나 그것을 소규모로 폭발시켜 추진력을 얻는다는 것은
가혹하고 정밀한 마력제어가 요구되었다
잘못 하면 지붕에서 다리를 다칠 것이다
그것을 연속해 실시하는 등이라고 하면
이미 뇌가 처리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뇌 전체가 뜨거워지는 느낌에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피에르트는 열이 너무 난 나머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숨을 헐떡였다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마력이 폭주해
다리가 파열하는 모습이 몇번이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다
마인과 맞닥뜨린 루기스와 엘디스의 외부 엄호를 맡고 있었고
하늘을 자기 것으로 삼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든 붙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봐! 그만 내려와! 그 얘 몸을 어떻게 할 셈이야!"
몇 차례 하늘을 향해 날며
피에르트는 고도를 높이는 하얀 머리카락에게 손을 뻗쳤다
하지만 손을 아무리 내밀어도, 그 모습엔 전혀 닿지 않을 것이다
피에르트는 몇 차례 도약과 착지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뼈와 머릿속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보다 더한 고도를
하얀 머리는 선뜻 뛰어다닌다니 무서웠다
그 운용에는 어느 정도의 마력과 제어 기술이 필요할까
피에르트는 상상하기도 싫어졌다
인간에게 하늘은 아직도 아득한 존재인 것이였다
하얀 머리카락은 나른한 듯
눈 아래의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투로 보아, 지금 허공에 떠 있는 것은
마인 보석 아가토스 인 것 같았다
"너 말야...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야? 질리지도 않나 봐
나는 인간의 그런 끈덕진 면을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 수고를 들이는 것도 싫어하지
그런 일에 힘빼지 말고, 더 의미있는 일에 힘을 쓰는게 어때?
이 아이의 몸은 이미 내거라고 했잖아, 응? 이제 그만 가줄래?"
아가토스는 질린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또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그 모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에르트 따위는 흥미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하늘 높이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오만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가토스에게 그 말만은 진실이였다
인간 문명은 기술 수준도 마법 기구도 마성에 크게 못 미친다
그 체구도 빈약해서 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작은 일에 구애되어 서로 몸을 물어 뜯어대기만 한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사람들
적어도 아가토스가 아는 인간이란 그것이었다
새삼스럽게 그 인식을 고칠 생각은 없었다.
아가토스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자니 말이다
하지만 피에르트라는 사람처럼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처음 보았다
흰자위가 잘 보일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내며 피에르트는 볼을 찡그렸다
전신의 혈류가 소리를 내며 빨라져 가는 것이
피에르트에게 느껴졌다.
불가능, 무의미, 무가치
얼마나 익숙한 말인가
그렇고말고, 박식한 얼굴의 지혜자 행세를 하는 무리들이
곧잘 내뱉는 말이라고 피에르트는 생각했다
그것을 말하는 패거리는 마치 정한듯이
자신들은 불가능이란 없다고,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무의미, 무가치하다고 판단된 자들이
얼마나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자신의 가치도 못 찾는 녀석들이
누구 맘대로 남을 평가하는 것인가
그의 가치조차 몰랐던 내가 했던 짓처럼 말이다
피에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발가락 끝까지 마력을 쏟아 부었다
그 마력량에 혈관 한두 개가 끓어 터지는 듯했다
이제 손가락 끝의 감각은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신경쓰지 않았다
뺨에 찬바람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것도 곧 피에르트가 발하는 열에 빨려 들어갔다
검은 눈은 그저 하늘을 나는 오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피아라트는 천천히 가는 다리를 굽혔다
이제 제어조차 내팽개친 채 발끝에 마력을 쏟아 붓고
그러다 폭발시켰다
더 높이 뛰어야 한다, 더 높이!
무슨 일이 있어도 납덩이에서 황금으로 향하는
그를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에 손을 뻗쳤다
그를 긍정하는 자신이, 단 하나라도 포기할까 보냐
피에르트는 갈기갈기 찢어질 듯한 손가락을 뻗어
그 가느다란 팔을 정신없이 움켜잡았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잠시 몸이 흔들렸음을 알 수 있었다
잠깐 사이를 두고 아가토스는 입을 열었다
"...뭐야, 그 자신감 넘치는 얼굴은
너 말야, 그냥 확 쏴버릴까?
이제까지 내 너그러움으로 용서해주고 있었다고
네가 이 얘의 목숨을 구해줬으니 말이야
동정심은 이 한 번 뿐이야, 자 어서 놓도록 해"
아가토스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쏘아붙였다
그녀의 언동이 조금 어리게 보이는 것은
지금의 체구에 이끌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에르트는 두 손으로 아가토스의 작은 몸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 행동은 상대방을 부드럽게 끌어안는 듯했다
그녀의 말에는 약간 가쁜 입김이 섞여 있었다
"싫어, 절대로 놓지 않을거야
난 말이야, 의외로 결정하면 굽히지 않는 성격이야
쏘아 맞혀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러면 너도 다치지 않을까?"
피에르트의 말에 아가토스의 표정이 역겹게 일그러졌고
한순간 그녀에게서 감정이 사라졌다
다음엔 약간의 초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혀를 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피에르트, 미리 말해두지만, 난 정도가 없다는 게 특징이야
설령 네가 떨어져도 아무런 책임을 안 질거야"
그것만 말하고, 아가토스는 왕성을 노려보았다
그 안쪽에 있는, 마력의 소용돌이가 눈에 비치고 있었다.
◇◆◇◆
병사들이 잠시 남은 숙소 안
은색의 눈이 사경을 헤매듯 가늘어져 갔다
머리맡에 남아 있던
난잡한 글씨로 된 메모를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덮고 몇 번 깊이 숨을 쉬었다
그제서야 입술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을 카리아는 깨달았다.
나는 냉정하다, 나는 냉정한 사람이야
카리아는 몇번이나 자신에게 그렇게 타일렀다
그렇지 않으면 눈앞의 메모를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쓴 것이야
펜도 잡는 법 따위 모르는 사람이 일부러 자신을 위해 쓴 것이라면
그것을 찢어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것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다 치고
써 둔 내용에 대해 카리아는 일절 이해할 수 없었다
부상을 입었는데 휴식을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과연 확실히 나는 패배를 당했고
사지에 깊은 상처를 입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쉬면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얘기하지 않았는가
마인이든 뭐든 죽여버리자고
카리아는 그제서야 자신의 손톱이 손바닥에 박힌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주먹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차마 그것을 멈출 수 가 없었다
나는 냉정해, 나는 더 할 나위 없이 침착한 사람이야
그렇게 몇 번이고 타일렀다
알고는 있다, 루기스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자신을 내버려뒀을 것이다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카리아는 루기스를 신뢰하고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만난 시간이 적지 않았기에 말이다
하지만 꼬리를 물고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성을 삼킬 정도의 분노와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슬픔이
카리아의 피부를 스쳐갔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상처를 입으면 침대에 누워 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비록 손발이 구부러져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하지만 하필이면 나는 패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만회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그냥 침대에 누워있어...라고?
이... 이 거인인 내게 대체 무슨 굴욕을 주는 건가
카리아는 눈물까지 글썽한 은빛 눈을 뜨고 검을 집었다
그건은 손에 딱 맞다는 듯이, 아주 저절로 붙었다
거인 신화 그 자체이자 이제는 카리아의 근원인 셈이였다
카리아는 자기 안의 자의식이 어느덧 인간보다
거인으로서의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더 이상 붙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 지금의 이 몸을 받아들인 것이니 말이다
그에 비례해 비대해지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가슴에 맺힌 순수한 마음을
난폭한 행동으로 성취시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던 것이 나날이 커져 갔다
이제 아무렴 어떤가
참는 행위는, 거인에게 어울리지 않아
자신의 생각 자체는
그도 이미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살짝 그 등을 밀어주면 된다
다소 억지성을 발휘하며 말이다
한 번이고, 두 번이고... 해줄 테다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카리아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그것은 무릇 예전의 그녀라면 하지 않았을 결심이였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나서주자
하지만 루기스, 이제 네놈에게 도망갈 곳 따윈 없어
칼리아는 흑검을 들고 숙소를 떠났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