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3화 - 일찍이 꿈꿨던 모습 -

개성공단 2021. 4. 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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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치는 칼날을 흔들면서 버나드는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보았다

눈앞에서 한 남자가 보랏빛의 검을 약간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키는 남자 평균보다 조금 큰 정도

별로 크지도 작지도 않고 체구에서도 특별힌 점이 없었다

그저 그의 두 눈동자가 강하고 험준한 정도일 것이다

그 체격만을 본다면 그는 충분히 일반적인 범주에 들었다

 

과거 버나드가 알아본 강자

또 상상했던 영웅용사라는 존재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이 남자야말로 지금, 틀림없이 문장교 군권의 꼭대기에 있는 자

 

눈부신 존재보단 재앙, 선역 보단 대악으로 알려진... 루기스

 

 

 

뜨거운 호흡이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것을 버나드는 느끼고 있었다

주인의 원수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그렇게 해서 영웅으로 불리는 존재와 칼을 주고받는 고양감

그 두 종류가 기묘하게 섞여 버나드의 눈을 붉게 했다

 

그의 전력과, 그 무위도, 영광도 웅장함 모두 전해 들었다

그러나 나와 그가 칼을 맞바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하지만 버나드는 이길 수 없다는 등의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의 한순간의 변덕이 생사를 가르는 것이 전쟁터라는 것

전쟁터에서 용사가 가끔 어이없게 절명하는 상황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일이 어떻게 넘어질지 모르는 그것이 전쟁터였고

버나드에게 전쟁터는 고향과도 같았다

이 장신의 남자는 고지식함과 모종의 불손함을

몸속에 동거시키고 있을 것이다

 

고로 먼저 움직인 것은 버나드였다

기세를 몰아 긴 팔을 젖히며 상단에서 검을 휘둘렀다

 

 

 

 

매끄럽게 넘실거리는 칼날이 허공에 선을 그렸다

칼날은 루기스의 왼쪽 어깨로부터 들어가

몸통을 먹을 수 있도록 겨냥하고 있었다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가르는 그 미려한 일섬은

틀림없는 나날의 단련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찰나, 버나드는 한기를 느꼈다

 

한기는 등줄기를 온통 뒤덮어 안구 자체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것이 무엇에 의해 초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버나드는 몸을 뒤로 젖혔다

뼈 마디마디가 강렬하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순간적으로 그것을 가능케 했다

 

과연 그것은 버나드의 운명을 갈라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쇠와 쇠가 한순간 맞물리는 순간

조금 전까지 버나드의 턱이 있던 부분에, 검이 달리고 있었다

 

 

 

호흡이 흐트러질 것 같은 것을

버나드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하지만 온몸에서 한 가지를 느끼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뼈를 태울 정도의 선명한 압박감

누가 주고 있는 것인지는 알려고도 할 필요 없을 것이다

 

버나드는 볼을 조용히 일그러뜨렸다

그것은 무서운 것인지, 기쁨인지 버나드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가슴속에 있었던 것은 그저 기묘한 생각 하나

 

아, 그렇군

이것이 영웅이란 말인가

 

 

 

 

 

"으어어어엉어어ㅓ어어어어어어어어"

 

 

 

 

 

버나드는 쉰 목소리를 내며 칼을 휘둘렀다

그 칼싸움은 어디까지나 날카롭고 매끄러웠다

 

한 번, 두 번... 칼과 칼이 얽혔다

칼싸움 특유의 둔한 소리가 전쟁터에 몇 번 울려 퍼졌다

일방적으로 휘둘러지는 버나드의 칼날이 불꽃을 뿜고

반면 용사의 칼은 당당하게 칼날에 대치했다

때로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털어리는 듯한 그 몸짓...

 

이것을 정밀하게 해내는 기술 자체는 영락없는 위협 그 자체

하지만 버나드가 등을 서늘하게 한 것은 그 무기가 아닌

상대의 그저 순수한 힘에 관해서 였다

 

버나드가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한 몸짓을

그는 당연한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칼날은 미동도 하지 않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목구멍에서 경탄스러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버나드는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부동의 존재를 상대로 칼부림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영웅이란 용사란 이런 것인가

보통 사람의 혈액이 제정신이라면

분명 그의 피에는 광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좋다

쉽사리 칼이 닿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앞의 한 번으로 버나드는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이제 팔뚝 한두 개로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버나드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패배할 수도 없었다

죽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렇게 저항도 없하고 죽을 순 없다

그렇게 되면 죽어서 영혼이 되었을 때

버나드는 결코 주인을 대할 낯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 대악, 영웅에게만은... 앙갚음을 하리라

 

 

 

버나드는 숨을 숨켰다

호흡을 잠시도 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온몸의 증오를 긁어모아 오직 한 점을 노렸다

 

버나드는 굳이 검을 수중에 끌어들여

찌를 자세를 취하고 물결치는 날에 햇빛을 배게 했다

그 순간만큼은 분명 그에게 있어선 틈일 것이다

 

그가 그것을 놓칠 리는 없기에

보라색 검이 쥐어짜인 화살이 발사되는 듯한 기세로

하늘을 가르며 버나드의 체구에 다가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은 버나드의 어깨를 가르고 심장을 도려낼 것이다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버나드의 뇌를 엄습했다

설사 회피 행동을 취하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면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영락없는 결사의 일격 일 테니까

 

하지만 버나드는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한바탕을 더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강자라면, 이 틈을 놓칠 수 없었다고 믿었기에...

 

버나드의 손끝에서 대악 루기스의 목덜미를 도려내기 위한 

섬광이 일직선으로 쏟아졌다

 

버나드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일격이었다

기세등등한 적의 칼날은 이제 멈출 리도 없고 보였고

나는 목숨의 대가로 적의 목을 도려내는 것이다

 

그것으로 좋다.

렇지 않으면 나는 주 살레이니오를 대할 낯이 없다.

눈앞의 적은 주인을 말살한 존재이자, 원수 같은 존재이니까...

 

그 증오는 틀림없이 버나드 속에 존재했다

하지만 거기에 또 하나, 다른 감정이 섞여 있던 것 또한 확실했다

 

 

 

 

그것은 곧 기대

자기 주인을 죽인 자이다

그럼 그 이상의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

제발 하찮은 나에게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그에게 있었다

 

그리고 소원은 이루어졌다

 

선명한 금속음이 귓전을 때렸다

순간 갑자기 버나드의 시야가 반전됐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일순간 눈에 비친 것은 마치 버나드의 움직임을 꿰뚫어본 듯

궤도를 바꾼 보라색 빛이 물결치는 칼날을 그대로 끊었다는 점뿐이였다

 

그리고 다음에는 체구에 충격이 가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흐린 구름의 하늘이 오늘만큼은 묘하게 밝았다

그제서야 버나드는 비로소 자신이 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기엔 뭣하지만, 이제 그만하자

목숨 걸고 하는 돌격 같은 건... 상대하기 싫어져서 말이야"

 

 

 

 

상당히 편한 말투였다

루기스는 버나드 옆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원수의 존재가 그런 말을 하니, 버나드는 드러누운 채 말을 내뱉었다

평소 그의 꼼꼼한 모습이 아닌, 거친 모습이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냐

나를 동정하려는 거라면, 집어치워라

나는 결코 너를 용서할 수 없다"

 

 

 

 

루기스는 그에 말해 간단히 대답했다

 

 

 

 

 

"동정이 아냐, 단지 내가 아는 영웅이라면 널 죽이지 않았을 뿐이야

물론 죽고 싶다면, 당장 죽이도록 하겠어"

 

 

 

 

 

루기스가 가리키는 영웅이란 게 누구냐는 건

버나드에겐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그러한 존재가 있었던 것이

버나드에게는 놀라움 뿐 이였다

 

한숨을 내쉬며 버나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루기스를 증오한다고 묻는다면, 당연히 증오한다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패배한 자신 또한

비참하여 스스로 죽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들과 상반된 감정이 있는 것 또한 사실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심정이었다

 

버나드는 여전히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나는 너를 언젠가 죽이겠다... 설령 땅바닥을 기는 한이 있더라도..."

 

 

 

 

 

루기스는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섰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라는 눈치였다

 

버나드는 또 한 번 깊은 숨을 내쉬며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단지 귓속을 울리는 소리만이 이내 사라졌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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