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45화 - 두 영웅 -

개성공단 2021. 4. 1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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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기적의 현현이면서
참으로 합리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누구나가 체내에 가지는 마력이라고 하는 연료로
술식이라고 하는 것을이용해 밖으로 사출하는 것이였다
말하자면, 구조 자체는 정말 단순한 것

그래서 아득한 태고의 시대에서도 원시의 마법을 부리는 자들이 있었고
영적 기적을 가진 이들은 때로 마녀라는 것들로 불리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태고시대부터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마법은 신비의 영역이자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다
연구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행하고 있는 것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 뿐이였다

그 신비를 풀어 체계화시켜 하나의 학문으로 평가절하한 자들이 있었으니

아르티아
통일제국의 초대 황제로서 인류 신화 그 자체



그녀는 마법 가운데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부분만을 잘라내 형식을 만들어 냈다
어금니도 뿔도 없는 허약한 인류가 스스로 일어나
마성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준 것이였다

아르티아 이후 마법은 한 학문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형식만 다듬으면 개인의 차이는 있어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인류라는 종은 틀림없이 마법이라는 무기를 지니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있었던 것은 구원도 희망도 아닌, 끝 없는 광기였다

인간은 얻은 무기를 연마하기 위해 두려울 정도로 매진했다



어떻게 마법을 이루기 위한 기능을 몸에 부착시킬 것인가
어떻게 몸에 넘칠 정도의 마력을 보유할 것인가

그것을 위한 장기, 그것을 위한 신경, 그것을 위한 혈액
그리고 그것을 위한 영혼을 끈임없이 연구했다

어느새 그것은 마법사의 전부가 되었다
마를 보다 방대하게 뿜어내기 위해 자신의 몸과영혼마저도 새롭게 만들었다
마법기구, 영락한 기적이라고 불리는 그것
마법사는 그 생애를 걸고, 자신의 체구를 마 그 자체로 변모시켰다

그렇게 마도 장군
마스티기오스 라 볼고그라드의 양팔은
틀림없이 마법기구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본래는 신의 것이어야 할 신울림을 천둥으로 만들고
그 끝에 있는 것을 모두 태워 죽일 정도에 이르렀다
아르티아가 해낸 형식 마법의 격을 벗어난 정도였다




그 진수 앞에서 문화도시 딘하임의 성벽은 너무나 무력했다
마스티기오스와 그 정예들의 송곳니를 깨뜨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였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원래부터 전쟁을 하기 위한 도시가 아니라
문화를 누리는 자들이 각국을 오가는 도시
때문에 과거 볼버트 왕조의 침략을 받았을 때는 일찌감치 항복해
시민들의 안전을 기원하고는 했다

그것은 이번에도, 변함없었다
하지만 볼버트 군은 항복을 하는 사신들을 계속 베어버리기만 했다

마인 라브르는 감정이 내키지 않는 목소리를 공중에 떠돌며 말했다



"항복 따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마도장군
적어도 그들의 도시를 피로 물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들의 모든 것을 산산히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아도, 너네들이 하겠지
무기질적인 눈망울을 가진 마인을 바라보며 마스티기오스는 이를 깨물었다
입 안에서는 피가 배어날 것 같았다

이 결말은 뻔한 일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문화도시 딘하임에는 볼버트 군에 대항할 힘은 없었다

그러다 항복도 못 받게 되면
그 앞에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 뿐이였다

병사가 죽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노인과 아이가 죽고, 여자가 다음에 죽는다오직 피와 철 냄새만 딘하임을 뒤덮을 것이다


마스티기오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약간의 도망처를 마련해 주는 정도뿐이었다

공격 태세를 늦추는 일은 마인들에게 재빨리 발견될 것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군사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마인을 따르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배신하는 일만은 마스티기오스가 할 수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죽이면서 마스티기오스는 물었다



"...마인님, 항복하는 자는 그냥 보내주지 그런가
피해가 커지고 말거야, 저들에게 항전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데..."


"마도 장군"




마인 라브르는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정교한 몸짓은 인간의 형상이면서도
마치 인간과는 다른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겨우 인간 따위의 것이 우리에게 권유하는 오만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멸시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라브르는 자기 할 말을 한다는 투였다






"어떤 의문을 갖든, 얼마만큼의 반감을 낳는
당신들은 그저 우리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언젠가 바보처럼 죽고 마는 그 때까지 말이지요
알겠습니까? 이 하등생물?"




마스티기오스의 번개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완전무결한 살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였다
마법사 집안에서 태어난 자가 본디 가진 광기의 피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입만은 꾹 다물었다

그렇게 체면만은 고분고분한 내색을 하면서도
마스티기오스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라부르가 방금 보여준 노골적인 거절의 말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요컨대 여기에는 뭔가 의도가 있을 것이다
단지 재미만을 위해 인간이 사람을 죽이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아닐테지

그렇다면 마인들도 반드시 파고들 틈이 있을 터였다
그것만 잡고 던지면,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까지 얼마나 희생이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마스티기오스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다시 문화도시 딘하임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제 도시는 함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문은 번개에 타버렸고 도시 내부에서 거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아마 다수의 부대가 돌입에 성공한 것 같군



죽음... 죽음의 비명이 마스티기오스의 귓전을 관통했다
그것들을 움켜쥐듯 마스티기오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명 나를 저주하겠지
그리고 난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할테야
그저 우리 백성을 위해, 다른 백성을 죽이는 것이니..

마스티기오스는 함락되는 도시의 자초지종을 지켜봤다
햇살이 눈을 뜨는 새벽녘에야 그것이 겨우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문화도시 딘하임의 함락으로 촉발된 마호 전쟁
그 후에도 볼버트군은 일체의 기세를 멈추지 않고 
주요 도시를 포함한 소규모 도시군을 계속 잡아먹었다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도시국가군은
때때로 항복의사를 보였지만, 볼버트군은 모조리 거절
피와 오열로 길을 닦으며 볼버트군은 끝없는 서정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엔 갈루아마리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





그리운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향신료니 음식 냄새일 것이다
성벽 도시이자 교역 중심지인 갈루아말리아가 가진 냄새 말이다
성문 앞에서는 이미 느껴지고 있었다

전에 이 곳에 왔을 때는 그립다는 생각보다는
카리아를 어떻게 뿌리칠까를 생각했는데 말이다

인간이란 쉽게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립지 않아, 카리아?
전에 너랑 같이 길드로 간 적이 있었는데
우리도 꽤 변했군"




말이 발굽을 울리자 카리아의 은발이 흔들거렸다
카리아는 입술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맞아, 그때 네 놈은 춤추는 화약고 같았지
하지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만큼은 안변한 것 같은데..."




나는 득의 양양하게 눈을 부릅뜨는 카리아에 대해 
깨를 움츠리고 미소를 지었다
카리아도 이런 점만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표정을 부드럽게 하는 것과 동시에
가슴속은 저릴 정도로 차가워져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온몸이 이곳은 죽음의 땅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우리의 수를 필적하는
대군의 적이 이 갈루아말리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내가 과연 그것을 말릴만한 힘이 있을까?
성벽 하나만으로 몇 배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일까?

불쾌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성문을 통과했다가는 그대로 살아서
돌아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예감마저 들었다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순간 나의 머뭇거림을 날려버릴 듯한 큰소리가 들렸다
순간 귀가 먹었다



들려온 것은 사람들의 외침에 가까운 목소리
젊은이들과 노인,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우리를 맞이했다

더 이상 쏟아지는 소리가 환호인지
아니면 비애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와 배후의 군사들을 향한 것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 모습을 보면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죽음과 눈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미처 피하지 못한 자들
어떤 이들은 병든 자였고, 어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이였다

그리고 볼버트군이라는 죽음이 다가오는 가운데
갈루아말리아의 성벽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자들



그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엿보였다

그들도 생각하긴 싫지만, 이미 머릿속으로 아는 게 있었다
적은 대군, 하지만 이쪽은 소수, 이길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데도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요구하듯이, 시선을 내게 꽂혔다

순간적으로 카리아에게 시선을 주지만
카리아는 위와 턱을 움직여 나에게 말을 재촉했다
그럴줄은 알았지만, 무엇 하나 도와 줄려하지 않는 건가

나는 군중에게 걸음을 옮기며, 숨을 들이마셨다





"모두 고개를 들어줘요
저는 죽으러 온게 아닙니다, 이기러 온거지"





죽고 싶은 건 아니겠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눈 앞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것이 귀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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