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79화 - 성녀의 고난 -
성녀 마티아는 머리 속
깊은 곳에서 통증을 느꼈다.
"...카리아 씨,
제발 밤에 돌아다니는 것 좀 자제 해주시겠어요?"
마티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카리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의 목에 목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뭘 행동하든 모두 내 마음인 것이다.
알겠느냐? 그럼 입닥치고 있거라"
그녀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이
어두운 실내를 휘황찬란하게 빛냈다.
그녀가 거짓말이나 허세를 부리는게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말투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두 줄로 갈라진 매끈한 은발은
금방이라도 먹이를 향해 달려가는 사자의 갈기처럼 보였다.
"그리고 네 놈의 목줄을 채울 권리도 내 것이다.
네 말에 따라, 이미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하는데?"
마티아는 눈꺼풀을 가늘게 떴다.
이런 문답이 한두번째가 아니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위협을 무릅쓰고 움직일 수는 없다.
마티아는 지친 입을 움직여서 카리아를 설득해야 했다.
일찍이 가자리아의 엘프들과
문장교도들이 동맹을 맺은 것은 거짓이 아니였다.
문장교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생명을 유지하고
지식을 쌓아 올리는 엘프들에게 경의를 표했었고,
엘프들은 편견도, 욕망도 아닌 경의만을 가진 채,
문장교도들을 반겼었다.
무엇보다 고시대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그 한가지 점에서 엘프와 사람들은
서로 깊이 손을 잡았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핀이, 대성교와 손을 잡게 된 지금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일.
이제 엘프들의 대부분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문장교도와 교제하며
아직도 지식을 공유하는 자는
엘프 중에서도 오래된 자로 그렇게 불렸다.
지금 성녀 마티아가 숨고 있는 곳은,
그렇게 불리는 자들이 가진 건물의 하나였다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에 갈라이스트의 병사가 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계책 없이, 가자리아에 맞서는 것은
너무 무지막지한 일입니다."
"네놈이 말하는 바는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약자의 생각일 뿐이다."
카리아의 장검이 무심코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실린 감정은 분노와 오만이 섞여있었다.
마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목구멍으로 흘려 넣었다
마티아는 의아했다.
카리아라는 인간은 분명 어딘가에
자신의 힘에 무게를 두고 있는 면은 있었다.
그러나, 루기스가 있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오만함이 보이지 않았었다.
마티아의 머릿속 통증이 더 심해졌다.
"대체로 걱정하는 거라면,
나보다 저기 있는 마법사 쪽을 걱정하는거 어때?"
그렇게 말하며
카리아는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리켰다.
마티아는 그녀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두통을 조금이라도 누르기 위해, 이마를 눌렀다.
피에르트 볼고그라드
그녀는 카리아와 다르게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관문에서 루기스가 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현관문 앞에서
방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피곤은 누적되고, 정신력은 점점 더 소모되어 갔다.
그녀는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한 번은 그녀에게 그만두라고 했다.
그를 도우고 싶다면 최선의 상태가 되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문을 등진 순간에
루기스가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문을 향해 버렸다.
그녀가 그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이상함을 뛰어넘어 경외감이 들 정도 였다.
언제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카리아와
쓰러질지 모르는 피에르트...
이 두사람이 골칫거리가 되어서
마티아의 머리 속을 괴롭히는 것이였다.
"여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엘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계책을 궁리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섣불리 움직였다가, 큰 낭패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티아는 늘 하던 상투적인 말투로 말했다.
이제 제발 카리아가 포기했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확실히 카리아와 피에르트는
루기스라는 평범한 남자에게
모종의 친근함 이상의 것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 했다.
그러니 루기스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진 이상
이 두명이 폭주해버리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덕분에 마티아도 이 두 사람을 지켜보느라
요 며칠 내내 수면부족이 계속되고 있었다.
카리아와 피에르트는
문장교도를 존속시키는데 놓칠 수 없는 전력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 그녀들을 잃을 수는 없었고,
그녀들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들을 잇는 루기스라는 쇠사슬을
반드시 탈환해야만 했다.
아,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다니
마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
루기스라는 남자는 이렇게도 자신에게 고난을 줘놓고,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잘못했다며 사과를 할까, 아니면 고맙다며 감사의 표시를 할까
아니,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아무래도 그는 눈치 없는 남자니까 말이야
마티아는 그런 그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가버렸다
카리아에게는 무슨 일인지 고하고 달랠 것이다.
피에르트에게는 무언가를 말하고 기분을 북돋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할 말이 분명 없을 거야
문득, 마티아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성과 지식만이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가운데,
내가 감정 따위에 휩쓸려 버리다니...
그 와중에 머리를 휘날리며 방을 나가려는
카리아를 붙잡는 동안,
현관문에서 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크게 한번,
그리고 다음에는 작게 두번
그것은 협력자인 엘프의 방문이 틀림없었다.
"성녀님, 희소식이 있습니다.
탑이 움직였습니다. 그 평범한 사람이 움직인 것입니다."
현관에서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에
여섯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