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59화 - 아버지와 딸 -

개성공단 2021. 4. 1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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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서 제 목을 베어 주십시오




피에르트가 담담하게 내뱉은
그 말에 저릴 만큼 충격을 받은 사람은
결코 친아버지인 마스티기오스뿐이 아니었다

부장 하인드는 시무룩해 있던 표정을 찡그렸고
무엇보다 동반자였던 루기스조차
손가락 끝을 굳게 다문 채 매섭게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3명 모두 이 검은 소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
경악과 동요를 있는 만큼 마시고 있었디

의외로 옆에서 가장 냉정해 보인 것은
말을 정면으로 받은 마스티기오스였다
적어도 하인드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마스티기오스는 두 손을 위아래로 포개며 느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눈가에, 조금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것이 협박이라면 너무 치졸하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야"





그것은 마스티기오스가 피에르트에게 한 말 중
오랜만의 아버지다운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입술이 바짝 말라 있음을 
마스티기오스는 알고 있었다

마스티기오스는 결코 피에르트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행동, 말마디를 보아도
이 딸 이상으로 총명한 아이는 자신 아이에겐 없었다
마스티기오스가 하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그녀임에 틀림없었고
자기 자식 중 피에르트야말로 최고의 성품을 가진 자였다

다만 치명적인 마법 능력의 결함을 제외하고는...



체내 마력은 너무나 충분하며
환경으로부터 마력을 끌어들이는 기술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최종점, 마력을 행사하는다는 점에서
피에르트는 너무나도 재주가 없었다

물을 많이 보유해 놓고도 입구가 너무 작은 주전자 같은 것
마력을 조금씩밖에 토해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마력을 쌓아두어도 그것은 무의미하다
마법사에 있어서는 마력을 축적할 수 없는 성질 이상으로 
명적인 결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얼마나 딸을 괴롭혔는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마스티기오스는 생각했다

피에르트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탐욕스럽게 지식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도
목이 쉬도록 영창 수련을 반복했다는 것도
새로운 마법 이론에 접목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의 모든 것이 싹트지 않았던 것에 대해
과연 아버지라 해도 다른 사람보다 모를리가 있겠는가



마법의 대가인 볼버트 왕조에서 마법사이면서
마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는 박해와 비웃음의 대상
명가인 볼고그라드 가문이라 해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분명히 명가였기 때문에
불필요한 그 중압의 가시는 피에르트의 어깨에 휘감겨
그 피부에 파고 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그 영혼에 상처를 입었는지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그것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마스티기오스에게 생겨난 것은
다만 볼버트라는 우리에서 피에르트를 놓아주는 것뿐이었다
학술에 있어서는 결코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였기에
먼 곳의 도시국가라면 그 재능의 개화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떠나보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복음전쟁이 시작되고 말았다

성벽 도시 갈루아말리아의 함락
피에르트가 행방은커녕 생사 불명됐다는 소식에
온 집안에는 기뻐하는 자도 있었다

재주가 없는 딸은 볼고그라드에 걸맞지 않다
그것이 마법사로서는 통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스티기오스라는 남자는
마법에 있어서는 신의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그 성질은 결코 마법사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본디 가진 성품과 자신의 아버지로서의 영향이 컸다



마스티기오스에게 피에르트의 죽음은
자신이 목에 손을 걸어 죽인 것과 같았다
자신의 무익함이 딸을 어이없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였다

그 딸이 살아 있다고 들었을 때
그리고 실제로 봤을 때
마스티기오스의 가슴속에 오간 감정은 너무 복잡했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는 안도와 기쁨
하지만 적편에 몸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엄청난 불안과 회의감

회의감...
그것이야말로 마스티기오스 가운데
지금 가장 큰 감정이 되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스티기오스의 질문에 피에르트는 한 박자를 놓고 대답했다




"예, 각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고 있으시군요
하지만 지금 여기서 갈라이스트와 볼버트 왕조가
서로 전쟁을 벌이며 목숨을 내놓는다면
가장 기뻐하는 것은 마성 뿐 일 것입니다"



피에르트는 숨을 가볍게 들이마셨다
검은 눈동자가 예전에 보였던 두려움의 빛을 물어 죽인 채 
장 마스티기오스를 향하고 있었다




"과거 마성들은 개별적으로 우리에 대한 습격을 반복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위협이지만, 인류의 위협이 되진 않았죠
하지만 이 녀석들은 이번엔 팔짱을 끼며,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마는 마인을 거느리고, 마인은 마수를 거느리고
이제 이것은 인류와 마성과의 대륙의 패권 전쟁입니다, 각하
지금 우리가 손잡지 않으면, 인류는 파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류는 마성의 가축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는다 해도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피에르트는 매끄러운 말솜씨를 내뱉었다

적어도 그 눈동자에 허위의 빛은 없고
말의 마디마디에서 동요는 느껴지지 않았다
경위야 어찌됐든 피아라트라는 인간은 그 말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마스티기오스는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져, 몸의 주위에서 반짝하고 번개가 튕겨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하인드가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피에르트가 말하는 것이 모두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소의 속셈이 쌍방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성이 연합에 가까운 것을 짜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 통솔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부족 단위로만 지휘계통을 갖고 있던 마성들이
마치 하나의 절대자를 얻은 것처럼 군체로서의 의지를 갖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위협인데, 대마, 마인의 내습
이는 분명 인류 자체의 위난일 것이다

그래, 과거 갈라이스트 왕국의 호국관
제이스 블러켄베리로부터 온 사자도
거기에 가까운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 수단과 주장을 가릴 시기는 지난 것이다, 마스티기오스 경



그런 말이 블러켄베리에게서 온 전령문에 새겨졌던 것을
마스티기오스는 떠올렸다

그렇기에 마스티기오스에게도 등골을 휘젓는 고뇌는 있었다
무엇을 옳다고 할 것인가, 마도 장군의 책무만을 다하면 좋은 것인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큰 회의감이 있었다
그것이 가슴 속을 기어다녔고, 지금 그의 두 눈에 어려 있었다

마스티기오스의 시선이 피에르트에서 그 옆의 루기스를 향한다





"루기스라고 했나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확실히 피에르트가 하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스스로의 목을 베라고 한 것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생각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마스티기오스는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피에르트의 눈동자는 너무나도 녹슬지 않고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총명하다거나 결의를 정했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인가 있었다는 것이였다

분명 그녀는 지금
정말로 목을 베여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 것이였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을
마스티기오스에게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이상하다고 단정짓고도 남을 것이다



자기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스티기오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 과연 성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삐뚤어졌다고 해야 할까

삐뚤어지게 했다면 누가...?

이제 그것은 명백했다
마스티기오스의 온몸을 휘감는 듯 번개가 울려퍼졌다
감정의 표출이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그는 실감하고 있었다

한번 죽었을 딸이 이렇게 모습을 보인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두 번 죽이는 짓은 할 수 없어
하물며 일그러뜨리는 일도 말이야
마스티기오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이 
천둥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에르트를 꾄 게 당신인가?"




마스티기오스가 평정을 유지한 것은 그 어조뿐이었다
그의 입술은 꽉 다물어져, 약동하고 있었고
벌떡 일어선 체구에서는 자연히 발생한
천둥이 허공을 진동시키며 공기를 매우 팽팽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 전 딸의 말에 아버지는 동요를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딸이 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쪽이었던 것 같았다
검은 눈은 뭔가 부끄러워 보였고, 흰 뺨은 해가 진 것처럼 물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표정의 곳곳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로 인해 마스티기오스는 확신에 이르렀다
역시 딸을 꾄 장본인은 영웅 루기스, 이 자라는 것을...

그 시선 앞에서 루기스는 정말 불쾌한 듯 입술을 열며 말했다





"지금 한 말은 취소해 주겠어?
피에르트는 나에게 꾀어질 만큼
멍청하지도 싼 여자도 아니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짜낸 듯한 목소리로
루기스는 말하며 마스티기오스에 화답하듯 일어섰다
기묘한 전율이 회담장을 뒤덮었고
마도장군과 영웅들의 시선이 질량이 담긴 듯 흔들렸다
그저 자리를 지키는 부장만이 그 얼굴을 파랗게 만들 뿐이었다



그 와중에




아득한 상공에서 뭔가가 작렬하는 굉음과
그리고 마인이 발하는 마의 큰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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