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7화 알류에노
고아원 문을 통과한 곳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영락없는 과거에 보았던 알류에노의 모습이였다.
닿으면 부서질 것 같은 가는 손가락과 흰 살결, 은은하게 빛나는 옅은 금빛 머리카락은 잘 다듬어져 정돈되어 있었다
"어 루기스! 오랜만이지만 전혀 변하지 않았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녀를 보자 굳어 있던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그 모습이 이상했는 지 알류에노는 입을 꾹 누르고 크게 웃었다
"왜 그래? 이상한거 봤다는 표정을 짓고, 혹시 모험자로 살다가 독기라도 뽑힌거야? 그렇다면 아주 좋겠지만, 재미가 없을 지도"
알류에노의 그런 모습에 나는 시선을 더욱 아래뤄 낮춰 버렸다. 왠지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어딘가 비꼬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 대해 내 머리 속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알류에노... 너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응?"
눈 앞에 서있는 알류에노는 의아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색깔과 외모와 모습은 분명히 알류에노이다. 그러나 무엇일까 이 위화감은 적어도 내 안에서 알류에노는 그런 무서운 말은 사용하지 않았던거 같아...
"무슨 소리야. 너 여기서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 소꿉친구 성격도 까먹은 거야?"
나인즈 씨는 장바구니에서 식료품과 물을 꺼내다가 완전히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알류에노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아니 그랬던가? 구세의 여행에 동참하느라 내가 알류에노를 바라보는 시선은 성녀 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인가... 물론 누구나 그 모습을 눈으로 쫓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소꿉친구인 나 조차도 오랜만에 재회 했을 때에는 그 모습을 보고 넋을 잃곤 했다
다시 정리하자면 나는 그 이미지만 앞선 채, 소꿉친구에게도 그 이미지를 적용시켜 버린 것이였다. 그렇다 분명히 어린 시절, 특히 고아원에서 함께 지낼때 알류에노는 정숙하기 보다는 발랄한 성격 이였다. 조심성 보다 활발함을 따지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알류에노는 나보다 너덜너덜해진 차림새로 어디서 무얼 하다 온걸까?
힐끗 내 몸에 시선을 보내던 알류에노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두 사람으로부터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황에 대해 뭔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뭐하고 있어요? 자, 어서 가요"
알류에노는 살랑살랑 손발을 내저으며 두 사람을 이끌 듯이 고아원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외관에 비해 매우 넓다. 많은 아이들을 길러주고, 때때로 구매자들을 집안에 들여보내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전원이 둘러쌀 것 같은 커다란 나무 탁자, 주저 앉으면 삐걱거리는 의자에 등등 만이 있었다. 그나마 어릴때에는 이래도 호화로운 집으로 보이곤 했다.
오랜간만의 집이라는 듯 가까이 있는 의자에 걸터 앉으려는 데, 갑자기 알류에노가 왼손을 잡아 끌렀다
"영 - 차!"
순간 예리한 칼에 찢긴 듯한 통증이 어깻 죽지를 강타 했다. 다음은 이쪽도 라고 하면서, 알류에노가 아무렇게나 오른손을 잡아당기자 오른쪽 어깻죽지에서도 같은 통증이 일어났다. 뒤이어 알류에노는
"루기스! 이렇게 다쳐 놓고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거야? 나인즈 씨 붕대 좀 쓸게요. 루기스, 똑바로 앉아 있어"
갑작스런 고통 때문에 눈가에 눈물이 맺힌 나는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서는 여전히 살짝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인즈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알류에노에게 붕대를 건네며 흐뭇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마음을 납득했다고 해야 하나 아아. 확실히 그 발랄한 모습, 그리고 자애의 정신은 알류에노의 과거 모습인게 틀림 없다. 참으로 나는 멍청이였나 보다, 고아원을 나간 후로 내가 사모하는 여자의 모습까지 잊어버렸을 줄이야... 물론 좋은 추억을 내 맘대로 상상했던 것도 주된 이유 겠지
한 때의 나는 훌륭한 모험자가 되겠다고 우기며 고아원을 나온 후, 이 비참한 생활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계속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따금 알류에노가 보내 준 편지를 읽고 그 근황을 겨우 알 정도 였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는데... 나는 왜 솔직해 지지 못했던 걸까
"루기스, 어디에 부딪히기라도 한 거야? 여기 파랗게 질려있어"
어깻죽지에 천천히 붕대를 감으면서, 알류에노는 투덜투덜 화난 듯한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동시에 씹는 담배를 본 알류에노는 또 나에게 화내며 '그런 나쁜 것은 어디서 산거야?' 라든가 '그런 것을 씹어도 어른이 될 수 없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알류에노의 잔소리에도 이것만은 오랜 모험 생활 속에서 빠질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이건 간단하게 포기할 수는 없게 되었다
한참동안 잔소리를 하던 끝에 내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알류에노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공손하게,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양어깨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치료 받았기 때문인지 말할 수 없는 좋은 기쁨에 잠겨, 그대로 그리운 시간을 곱씹어 보았다. 알류에노와 나인즈 씨도 시시한 잡담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아 그런건가... 아마 내가 미래에서 잃었던 행복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걸꺼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역시 어딘가에서 위화감이 들었다. 확실히, 발랄한 알류에노는 과거에 그랬을 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발랄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저기... 알류에노"
"응? 무슨 일이야? 붕대를 감는 법에 대한 항의는 듣지 않아 알았어!?"
그러면서도 어딘가 들뜬 목소리의 울림 이였다. 나는 담배를 깨물고 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갈 곳이 정해졌잖아... 어디야 그 장소는?"
"......나인즈 씨?"
알류에노의 시선을 받은 나인즈 씨는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며, 그 보라색 눈동자를 돌렸다. 바깥 풍경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창에서는 옆 건물의 벽 말고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알류에노, 너는 여전히 그대로구나 두려워하는 일이 있어도 여전히 겉으로 보이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것은..."
"음... 뭐야 너야말로 그 여유는, 시건방져 보이는데?"
정곡을 찔린 듯한 알류에노는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알류에노는 잘못 알고 있다
나는 여유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조금 경험을 쌓았던 것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디죠? 새로운 거처는?"
그러고보니 당시의 나는 모를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알류에노가 어디에 배정을 받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상한 장소는 아니야... 뭐 좋아, 원한다면 들려줄께 너라면 상관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한 박자 쉬고 알류에노는 중얼거렸다
"내가 가는 곳은... 대성당이야"
입가에서 담배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