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80화 - 마법사의 요람 -

개성공단 2021. 4. 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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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버트 왕궁




금화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려 만든 국가의 중심지
이제 그 휘황찬란한 건물은 사람의 왕이 아닌
마인들이 거처하기 위한 마구간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눈앞에 두고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주위에서는 상당히 쇠냄새가 났고
그 근방에서 피가 튀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이 냄새를 흩뜨리려고 하겠지만
마성들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왕궁을 바라본 채 안뜰을 나아가 발꿈치를 치니
힘차게 한 팔이 그어졌다




"자...잠깐, 이거 괜찮은 거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양손으로 내 팔을 움켜쥐듯이 하면서
구릿빛 인간으로 모습을 바꾼 샤드가 말했다
그 자주 눈에 띄는 두 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 체구와 늠름한 모습에서 보면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나도 모르게 이쪽의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그녀에게는 아마 허세라든가 체면이라든가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녀의 기분을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이곳은 적지의 중심
주위는 마성이 둘러싸여 그 눈을 번뜩이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부주의한 짓을 하면 놈들은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이다

그 중에 나와 그녀 둘밖에 없다고 하니 겁쟁이가 될 법도 하다
거기다 원래부터 소심 기질이 보였으니...



톱니바퀴 라브르의 안내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설마 3천의 군사를 왕궁에 들여보낼 수 있음을
장관인 누트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마인 상대로 생각하면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불필요한 침입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긍지였는지 모른다

입장을 허락받은 사람은 라브르에게 안내를 받은 나와
병들의 우두머리로 여겨진 샤드 뿐
카리아가 그 자리에서 심하게 얼굴을 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외쳤지만 귓전으로 흘려듣고, 여기까지 와버렸다

돌아가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겠네
차라리 돌아가지 못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카리아가 감정을 드러내 그 눈동자를 직시하면
도무지 혀가 돌지 않고 말이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 그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게 되는 것이였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가볍게 내쉬자
내 팔에 끌려 다니던 샤드가 흠칫 어깨를 쳐올렸다
겁이 많아진건가,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나는 군




"괜찮아, 위험해지면 도망가면 좋아
가능하다면 카리아에게 전해주면 고맙겠지만"





그녀가 모습을 바꾼 여자는 나보다 키가 컸는데
팔에 매달려 웅크리고 앉아 있자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옛날 나인즈 씨가 나를 본뜬 것을 흉내내서
약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듯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 사람을 본 따는 것 밖엔 못했다

샤드는 순간 의아스러운 듯 눈을 떴지만 입술을 작게 뜨며 말했다



"……너는 이상한 놈이군, 내가 도망치면 너 혼자일텐데"




그런데도 어떻게 도망쳐 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샤드는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눈동자는 의아한 빛을 띠고 있어서
내 말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런가
하긴, 도와달라고 해놓고, 위험해지면 도망쳐라...
나도 앞뒤가 안맞는 말 같긴 하지
나조차도 바로 의심하겠어

어쨌든 도망가면 좋다고 말하는 녀석은
대개가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였다

지금까지 샤드에게 걸어온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끌 듯이 걸음을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을 찾았다



"……뭐야, 넌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러 온 거잖아
그래서 도와주지 않는 것만큼 싫은 것도 없으니까."





눈꺼풀에 약간의 통증이 스쳤다
어린 시절 뒷골목에서 지낼 때는 그런 일뿐이였으니까

귀족들은 서민들에게 관심 같은 건 없었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살기에 급급해, 고아들을 상대할 여유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설령 어린아이가 굶어죽을 뻔해도 상관없는 일인 것이였다

도움을 청하든 구원을 청하든 의미가 없다
손을 뻗쳐 봤자, 잡아 주는 것은 고작 노예일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뒷골목에서는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그걸 모르는 놈은 대개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나도 예전에는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했던 적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목을 쉬게 하고 눈물 조차 흘렸지만
하지만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싫은 일인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결국은 내가 이기적일 뿐이야, 신경 쓰지마"




내 말에 납득이 가지 않는건가?
샤드는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계속 내 팔에 끌려다녔다

마법으로 속여서라도 인간의 모습이 되어주어서 다행이다
역시 구렁이의 모습이라면 뭔가 떨쳐낼 것 같았다

안마당을 빠져나오자 찰칵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라부르는 한번도 우리쪽을 돌아보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서 보면 그냥 인간 같기도 하군
우아하게 머리칼을 흔드는 모습은 귀족의 딸 같아

앞서가는 그녀, 라브르의 의도는 솔직히 알 수 없다
스스로 피에르트를 데려가 놓고도
이쪽이 가서 보면, 만나게 해주겠다니



보통때 같으면 함정이겠지만
마인인 그녀가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인간 등, 정면에서 쳐부수고 먹고 죽이고 굴복시키는 존재
마인이란 마성이란 그런 존재다
인질이나 덫 같은 짓은 약한 존재의 소행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행동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읽어야 할 것이고
나는 이것을 기회로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어쨌든 본래라면 마성의 무리들을 뚫고
접근해야 할 마인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 동료에게 일부러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놈은 나의 무장조차 해제하지 않았다

그럼 안내 좀 받아보자
비록 적지의 중심지이지만, 내가 생각했던 최악보다 훨씬 나으니까

주위에서 아무리 마성의 기척을 느껴도
신기하게 그들을 놔주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보검이 신음 소리를 내며 허리춤으로 기울었고
동시에 더욱 가슴속에 열이 가득 차고 있었다



한동안 라브르의 등을 계속 쫓았다
여전히 그녀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고 샤드는 내 팔에 매달려있었다

샤드는 적당히 떨어지길 바랬는데 그건 무리였던 것 같다

그제서야 울리던 라브르의 발소리가 멎었다




"자, 당신의 동료는 이 안쪽에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서 발걸음을 돌려 귀환할 수도 있죠
즉각 결단을..."





이 녀석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가

느닷없이 쏟아진 라브르의 말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 아니면 이제 와서 함정이였다던가"





나는 등뼈에 둔탁한 감촉이 기어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가슴속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아니예요, 인간영웅 루기스
즉시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진행하면 되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운명이니까요."





샤드를 등에 둔 채 라브르를 쳐다보았다
역시 웃음 같은 것을 띄운 채,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
문을 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시녀처럼 공손한 태도였다

의도를 모르겠군
하지만 기분 나쁜 느낌만은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목을 킁킁거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약간 크기만 한 문
아마도 어느 왕궁이든 반드시 있을 법만한 것이였다
보물고든 군량고든 알맹이는 각양각색이지만
상당히 견고한 물건이 들어 있을만한 문이겠지




"피에르트!"





나는 무거운 문을 밀어젖혔다
그리고 가슴속에 밀어넣어놨던
초조와 우려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걱정이 없을 수 없다
조급함이 없을 수가 없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여기에 온 것이였다

그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별의별 각오를 다졌다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베이고 있는 것인가
이미 죽음의 직전인가...
갖가지 불쾌한 상상이 눈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현실은 때로 상상을 쉽게 뛰어넘는 법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넓은 방의 안쪽. 아마도 모든 것을 한 번 치워낸 것이겠지
창고라고 하기엔 놓아둔 것은 너무나도 적었다
있는 것은 마법도구 정도 일 뿐

피에르트는 일단 무사해 보였다
사지도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고, 피를 흘린 자국도 없었다
모욕당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쇠사슬에 온몸을 휘감긴 채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악몽을 꾸듯 가냘픈 오열을 토해냈다

무심코 가까워지려고 했지만
주위에는 마구에 의해서 마법 결계가 둘러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곳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순간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피에르트의 모습이 더 선명해졌다





"그래서 라브르..."





자세히 보니 피에르트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투박한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
그 사지에도 가까운 것이 보였다
구조고 뭐고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만은 알고 있었다

내 눈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것은 볼버트 왕조가 만들어낸 악몽 그 자체
마법사의 요람

과거 볼버트 왕조에서 마법사가 엄청 위대하고
시민의 지위가 엄청 낮았던 시절의 물건
마법사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거스르는 비마법사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권력자가 반역자에 대해 
쓰고 싶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거기서 탄생한 것이, 그 투박한 구속구
그것은 그것을 몸에 익힌 자의 마력을 한 번 뿌리째 빼앗는다

원래 인간은 누구나 마력을 적든 많든 가지고 있는다
마력이란 장기나 혈액애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영혼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물건이였다

그것을 억지로, 폭력적으로 빼앗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가죽을 벗기는 것에 가까웠다
우선 상상을 초월한 격통으로 미칠 지경이고
정신과 온몸의 신경이 모두 타버리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죽음에는 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목걸이는 마력을 탈취한 후
다시 그 상대에게 마력을 쏟아 붓기 때문이였다

그러고는 또 뺏고, 넣고, 뺏고 넣고를 반복하니
이제 장착자는 마냥 절규하고, 그러다 어느덧 정신을 잃고
그래도 오열을 터뜨리며 괴로워했다
끊임없는 통증에 잠도 올리 없었다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





나는 뒤돌아보며 라브르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 죽고 싶어? 아무거나 말해봐"


"네? 제가 뭘 잘못 했다는 건지, 즉시 정정을"




라브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기질적인 속에 감도는 미소가 아니라
어딘가 마적인 미소였다







"이것을 준비한 것은 제가 아닙니다
그녀의 동족이 모두 내줬으니까요
즉각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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