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85화 - 추측과 열의의 우려 -
루기스에게 목숨을 맡기고 이끌려 그 뜻에 따라 갖춰진 삼천병
그들 중 한 명이 숙소로 삼은
찌그러진 여인숙 안에서 동료에게 물었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의 코끝을 스쳐 갔다
"그 분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연기일까, 아니면 적편에 붙어버린 걸까?"
머리를 짧게 자른, 약간 기품 있는 남자였다
원래는 명사의 혈통을 잇고 있는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거드름 피우는 기색 없이 군사의 한 사람으로서
힘쓰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그에 응한 것은 촌스러운 남자였다
군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품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나무 탁자를 힘껏 두드리며 상대방의 말을 받아쳤다
"이 바보야, 네놈은 서니오의 신참이라 모르나 본데
그 분이 마성 쪽에 붙었다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어"
그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는 것은 뒤따르는 영웅 루기스 이야기일 뿐
병사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을 직접 부르기보다
존칭으로 부르는 방식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게 더 친밀감과 경의를 겸비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촌스러운 남자는 갈루아말리아 함락 무렵부터
루기스의 모습을 지켜본 인간이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언제부터 종군했는가 하는 점이
기준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남자들로서는 서니오 회전과 왕도 공략전에서 종군한 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나란히 서 있는 도시국가도, 갈라이스트 왕국도
마인 드래그만도 그래, 누구나 그분 한 분을 두려워하셨고
그 분은 무조건 이겨오셧어, 근데 왜 새삼스럽게 마성에 무릎을 꿇겠어"
설령 어느 정도의 열세와 고전에서도
자, 이기겠다고 웃으며 검을 들고, 누구보다 앞에서 적을 헤집고 다녔다
그것이 병사가 말하는 루기스이며, 병사가 신봉하는 영웅상 그 자체
그만한 인물이라면 문장교 말고도 사관들의 입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문장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 영웅이 어찌 목숨이 아깝다고 배반을 하겠는가?
"다만 그분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뭔가 생각났을 거야."
병사도 아는 영웅의 못된 버릇
결국 그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해내겠다는 기개가 너무 강하다는 것
베르페인은 물론 매장감옥에서도 그랬다
그 속셈은 결코 다른 자에게 누설하지 않고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도 나 혼자뿐이라는 철저함
그걸 영웅담으로 들으면 신물이 나는 것도 있지만
지휘관의 행동으로 생각하면 금세 식은땀이 났다
따르는 병사로서는 적어도 명령 한 가지도 내려 줬으면 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런 종류일 것이라고 촌스러운 사나이는 말했다
어차피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이 이 곳에서
담소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였다
그 자리 정면에 자리 잡은 것은 마인 라브르에
마인 쥬네르바와 그 밑의 수 많은 마성들
인간국가 하나를 거뜬히 유린하던 괴물들이 거기에 있었다
반면 이쪽은 사방을 에워싼 삼천병뿐
그대로 충돌을 했다면 약간의 저항은 가능했겠지만
전멸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루기스는 말했다
"싸울 생각은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돌아가는게 어때?
숙소를 찾는게 좋을거야"
그의 단 그 한마디만으로 삼천병은 상처없이 철수할 수 있었다
두 마인도 병사보다 루기스에게 더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기에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루기스가 죽인 마성뿐
"우리를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어
그걸 안 했다는 건 기획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일에 대비하는 것 정도겠지"
명사 남자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칠고 투박한 사내의 말은 거칠었지만 생각 자체는 진수 같았다
하지만 본제는 여기서부터다
명사 사내는 술이 담긴 그릇을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더니 말을 꺼냈다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카리아님은 어째서 저 모양이시지?"
거칠고 촌스러운 남자는 한순간 겁을 먹다 것처럼 표정을 왜곡한지만
가볍게 턱 주위를 쓰다듬고 말했다
시선이 서성거리는 걸 보면 그에게도 해답은 준비되지 않은 듯 싶었다
"그야 뭐... 두 분은 연인사이니까 그렇겠지
생각하는 구석이 따로 있으시려나?"
명사인 남자는 납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추궁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그대로 술을 머금고 병사들의 굴렁쇠 속으로 들어갔다
촌스러운 남자는 그 등을 바라보며 다시 강하게 탁자를 쳤다
숨을 들이마시는 그 순간, 숙소에 모여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그 남자에게 쏠렸다
모두들 술을 마시거나 잠깐 선잠을 자는 등
잠시 자유에 취해 있었는데 그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남자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병사들이여, 우리의 영웅 각하는 또 다시 독단적인 일을 하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뻔히 알고 있겠지!?
그 분은 말씀하셨다, 승리를 만끽하라고!"
술기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군사들이 그 눈에 탐욕스러운 전의를 품고
응하고 사내에게 화답했다
그 목소리는 숙소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열에 넘쳤다
루기스가 이들에게 건네준 광적인 전의가
아직도 그들의 눈동자에는 깃들어 있는 듯했다
◇◆◇◆
음...
굉음이 귓가에 맴돌고 카리아는 눈꺼풀을 움직였다
몇 번 몸을 버둥거려, 시트의 감촉을 기억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자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잠에 취한 머리가 사고를 천천히 일깨우기 시작해 시야를 명료하게 했다
마침내 머리가 깨어날 무렵, 카리아는 다시 강하게 눈을 감았다
그냥 이대로 자버리자
그렇게 생각한
카리아는 머리로부터 침구에 기어들어 어둠 속에 자신을 던져 버렸다
일어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기어이 일어나 버리면 싫든 좋든 생각이 나게 되는 거였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존재조차 부정당했던 꺼림칙한 기억을...
순간 심장에 말뚝이 박힌 것 같은 충격이 오면서
숨이 천천히 목구멍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카리아는 가슴 전체가 돌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빨리 잠들어 버리고 싶다
잠들어 버리면 한때는 이 불쾌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다
현실이라는 잔혹한 칼날이 자신을 찌르려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다
정신의 균형은 누더기 같았다
생각하면, 연인에의 집착이야말로
카리아의 정신성을 눌러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였을 것이다
가령 잘려나가고, 쫓기든, 핏방울을 튀기든든
기둥이 있었기 때문에 카리아는 지금까지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조차 모른다고 부정되어 버렸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화내면 되나, 슬퍼하면 되나
이마저도 카리아에게는 알 수 없었다
다시 시트를 꽉 양손으로 잡았다
"……카리아님은 일어나셨나요?"
"글쎄, 움직이는 것 같긴 한데"
레우와, 아마도 샤드의 목소리가 카리아의 귓전을 때렸다
그 목소리에는 불안과 초조의 빛이 담겨 있었다
한심한 일이지만 카리아는 그 소리를 듣자 더 발끈했다
평소에는 저렇게 거들먹거리는데
그의 말 한 마디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니
차라리 그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 놓는건데...
그런 생각마저 들기 시작한 카리아에게
이번에는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로 들어 오지 않았지만 큰소리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문 너머로조차 알 수 있었다
정색을 하고 있는 여군의 목소리
"카리아 님
마스티기오스파를 자칭하는 마법사의 일파로부터
사자가 와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카리아는 긴 속눈썹을 천천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