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90화 - 악당과 정의 -
마인 루기스
그의 등장에 놀란 것은 당연히 오일런트 뿐만이 아니였다
시민들 중에도 문장교 영웅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여럿 있었고
설사 새로운 마인이 출현했다는 것을 알면
목구멍에 쥐가 나는 감촉을 느끼게 마련이였다
처형장은 더욱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기가 달라붙어 온도가 점점 내려갔다
"...바보 같으니! 어째서 당신이!?"
부관인 하인드조차 있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무심코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마스티기오스 동지이자 함께 마성을 물리치겠다고 맹세했을 상대가
마인이 되어 여기에 있을 줄이야
무슨 일이 일어났고, 뭐가 잘못된건가
그는 정말 적으로 돌아버린걸까?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 따위는 결국
대마는 커녕, 마인에게도 도달하지 못했단 말인가?
하인드의 가슴속에 암담한 것이 스며들었다
낙담이나 실망이라기보다는 마스티기오스
그리고 루기스라는 두 사람으로도
마인을 당해낼 수 없는가 하는 비탄이 더 컸다
에일린 역시 큰 소리로 루기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루기스는 마스티기오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잘 어울린다고? 이거 쑥쓰럽네
그래, 그게 마지막 말이라도 좋단 말이냐?"
"응, 상관없어
내 목이나 등이 베인다고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루기스는 역시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스티기오스의 얼굴에는 유연한 빛이 있어도
공포와 고통에 떠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억에 있는 한 사람은 죽기 직전에는
얼굴이 창백하고 겁이 많은 법이다.
아무리 강자라 해도
그런데도 마스티기오스는
마치 자신에게 죽음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행동이었다
"상당히 여유롭군, 장군이란 건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설마, 우리의 차이는 미미하다
누구나 용자일 수 있고, 누구나 평범하기도 하지
적어도 그렇게 나는 믿거든"
마스티기오스는 잠시 고개를 들어
루기스의 진홍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동자에는 기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었지만
마스티기오스에 대한 적의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순진함마저 간파할 수 있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마인으로 변해 버렸는지, 그것은 마스티기오스도 몰랐다
도대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설마 그가 단지 고분고분하게 마인화해 버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만일 지금 이 때에 기억이나 의식을 잃었다고 해도
무엇인가의 씨앗이나 단서는 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를 비난하거나
비탄에 잠기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마스티기오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자기를 죽여버렸다고 해서
그 후 그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
그 때 자기를 죽인 것이 화근이 되어
사람들은 더 이상 손을 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이제 인류라는 종은 그 내부를 크게 침식당한 중환자와도 같다
이것으로 내부 분열을 반복하면, 그 앞에 있는 것은 멸망 뿐
마스티기오스는 한 박자 호흡을 들이마시고 나서
이번에는 민중을 향해 말했다
"모두들 들어라! 지금 여기서 죽는 건 마도장군 따위가 아니다!
마인들에게 좋을 대로 쓰여지고, 목숨을 잃는 한낱 어리석은 자이다!
어짜피 나는 여기서 죽어야 했을 몸이다!"
누구나 마스티기오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속에 틀어박힌 감정은 다양하지만 그 말을 모두가 뇌에 새기고 있었다
"너희들은 살아라, 어리석은 자의 죽음에 연연하지 말라!"
그것은 많은 민중 그리고
시야의 범위에 있던 복수의 군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시민 행세를 하는 걸 보면 아마 그들은
자신과 동포들의 탈환을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무모했다
이렇게 마성이 함께 에워싸인 가운데
소수를 구하기 위해 수십 명의 군인과
그 이상의 민중이 혼란 속에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살아 남는다면
마성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더욱 참혹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 때는 참아야 한다
마스티기오스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일란트들의 눈동자가 커지면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얼굴엔 고통이 땀으로 배어났다
한순간 뒤 그는 목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장군 각하를 구하라!!!"
마스티기오스의 말이 있고도 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마스티기오스가 루기스의 존재에서 희망을 찾았듯이
볼버트 군인들에게는 마스티기오스야말로 희망이였다
비록 마인을 앞에 두고 아무리 성공에 이르는 길이 험난해도
설령 우리가 모두 죽는다고 해도
마스티기오스 한 사람이 살아남으면
거기에 가치가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군인들의 돌입으로 처형장은 다시 한 번
소란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민중에 섞여 있던 군인들이 숨겨둔 무기를 들고 처형대로 달려갔다
마성들은 한순간의 동요는 있었지만 역시 왔느냐는 듯 응전을 시작했다
민중의 비명과 소란
군인과 마성이 뒤엉켜 본색을 드러낸 공방이 시작됐다
"에잇! 신경 쓰지 말고, 마스티기오스.. 마스티기오스를 죽여라!!"
킬의 목소리가 눈 아래 처형장에 울려 퍼졌다
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이 혼란의 와중에서
마스티기오스가 만에 하나 살아나는 것이였다
그렇게 되면 놈은 반드시 다시 반항을 기도할 것이다
민중도 다시 희망을 찾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처형 수순은 아무래도 좋다
가까운 마성들로 하여금 그 목을 베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처형대에는 혼란 등 조각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루기스가 서 있었다
왕도의 주인 누토는 킬의 옆자리에서 그 모습을 슬쩍 보고 있었다
"잠깐만, 저 예전 인간이였던 마인이 죽여야 의미가 있는 거야"
누토는 주인 쥬네르바에게 루기스의 모습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배신을 보이지 않는지 자세히 관찰하고 보고하라고
저것이 예상대로 마도장군을 죽이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누토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
아직 마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놈이라면
쥬네르바의 부하인 누토도 충분히 대항이 가능할 것이다
독수리의 눈이 루기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소동 속에서 무언가 말을 주고받는 것 같지만
혼란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행동만은 보였다
루기스는 마스티기오스를 향해 마검을 치켜들고 칼끝을 하늘로 세웠다
주위의 소음이 더 울렸지만 그런 것이 마인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루기스는 그대로 마스티기오스를 향해 깔끔하게 마검을 내리쳤다
끝났군
누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인 루기스는 쥬네르바에 대해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일단 라부르의 말에는 순종적인 듯하다
또 한 잔, 입을 크게 벌리고 누토는 술을 목구멍에 던져넣었다
귀찮은 일이 떠나고 마음고생이 하나 줄어든 기분이었다
다음 순간 눈 아래 보이는 처형장에서 다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희비가 뒤섞인, 조금 전까지와는 또 다른 소란...
누토와 킬이 그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무슨 일!"
누토는 부리를 벌려 소리를 튕겼다
그리고 시야 끝에 그 광경이 보였다
처형대와 구속구를 파괴당해
아직 생존해 있는 마스티기오스와
누군가에게 베어 죽임 당한 주위의 마성들
그리고 마검을 적시고 있는 마인 루기스
온몸을 달리는 혈액이 끓어오르는 것을 누토는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가 그것을 해냈는지는 이제 분명해졌다
역시 그 옛날 인간이 배신했다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누토는 양 날개를 펼치며 허공을 달렸다
그리고 스스로 그 목을 움켜잡기 위해 마인 루기스에게 접촉했다
"마인 루기스! 역시 쥬네르바님의 우려는 적중한 것 같다, 이 배신자여!"
주위의 마성이나 인간이 그 거구에 압도되는 가운데
오직 루기스만이 상공을 자기 것으로 하는 누토를 노려보았다
마성도, 인간도, 마스티기오스조차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기스의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 본인뿐이기에
"배신한다거나, 그런 일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을 텐데
뭐야, 새대가리... 혼자 불쾌한 생각이라도 한거냐
그냥 그 왕관이나 쓰고 가만히 앉아있지 그래"
"입 다물어라 네놈!
그 마스티기오스란 마인님을 거스른 분명한 우리의 적이다!
그것을 돕는 따위의 일이 배신이 아니라 무엇이란 말인가!"
누토가 당당한 행동으로 날개를 폈다
그것은 그의 임전 태세로 흉악한 갈고리 발톱이
루기스의 목을 겨냥하도록 준비를 취했다
루기스는 어깨에 마검을 얹은 채 코웃음을 쳤다
"그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왜 내가 이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
이상해, 라고 루기스가 말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토는 몰랐다
하지만 그의 진홍색 눈동자 속에 배신감에 따른 죄책감이라든가
아니면 잘 속여주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남자는 신념이 있고 긍지도 있고 의지도 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갈채를 쳐주고 싶어, 정의에 가깝겠지
이 자는 나와는 정반대의 내 적일 거야"
루기스는 어깨를 몇 번 떨면서 긴장한 티 없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이기는 싫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결정할 거야, 내 적이니까"
말도 안돼.... 누토는 경악했다
마인에게는 때때로 자신의 절대론과 감성으로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마인은 아마도 그런 부류 일 것이다
쥬네르바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무언가를 따르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누토는 더 이상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 마인이 힘을 키우기 전에 부하인 자신이 목을 꺾어 놓아야 한다
누토는 귓속을 찌그러뜨릴 듯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손톱으로 허공을 후벼냈다
그야말로 일직선의 선이 그려진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강습으로
설령 아무리 재해인 마인이라 해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래? 그럼 난 그냥 악당이다
그렇다면 내 정의가 한 번 무엇인지 맛 보거라"
하지만 그 순간, 루기스가 조롱하듯이 말한 것을, 누토는 들었다
"정의? 넌 아무리 생각해도 정의롭지 못해
그저 천한 악당이 어울리겠지"
누토의 흉악한 갈고리 발톱이 루기스의 목살을 포착했다
이제는 한순간도 필요없다
단지 다음은 고기를 자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철컥, 소리가 났다
살이 터지고 피가 튀어 오르며
비명이 주위를 온통 뒤덮었다
"너는 나의 적이 아니야, 3류"
마인 쥬네르바의 부하
왕도의 주인, 누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처형대 위에서
고깃덩어리가 되어 죽고 있었다
마검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그 혈육을 흩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