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92화 -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

개성공단 2021. 4. 2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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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맹금의 눈동자가 저 멀리 그것을 보고 있었다
왕도에 뻗어 있는 수많은 동족들이 마인 쥬네르바의 눈이요 귀였다
휘하의 마수의 눈동자, 그리고 부하의 감각을 공유하면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부하가 상실될 때까지의 자초지종을...
그는 한숨을 쉬고 부리를 벌렸다




"젠장, 안 되겠어, 저 녀석은 적으로 돌아서버렸어"




쥬네르바는 창가를 떠나 라브르의 이름을 불렀다
라브르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은
쥬네르바에게도 알 수 있었다

루기스라는 것이, 마인이 된 것만은 쥬네르바도 인정했다

사고는 인간을 떠나 육체는 순수한 마로 변해
피부가 얼어붙을 정도의 원천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루기스와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쥬네르바는 깨달았다

마인에게 원전이란 유일한 존재의 의의
그것은 마인의 한없는 소망의 현현이며
세계의 이치에서 벗어난 것이였다

그래서 마인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맞서기도 하고, 이빨을 드러내 서로 죽이기도 했다

협조란 말과는 거리가 먼 존재, 그것이 마인

마력을 나누어 받은 주된 대마를 거스르는 경우는 적지만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였다
대마에 반역하다 내부로부터 마력에 잠식당하고도
여전히 따르지 않았던 마인을 쥬네르바는 본 적이 있었다

루기스란 마인도 아마 그쪽일 것이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의 본연의 역할은 심장에 마의 성질과 톱니바퀴를 공급하는 것
오히려 충분하다고 할 정도 입니다
즉각 다음 수를 씁시다"




쥬네르바의 말에서 수초가 훨씬 지나서야 라브르는 말했다
돌아보니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 그 얼굴엔 달라붙어 있었다




"다음 수라니, 설마 저 자를 없애자고?"




마인 루기스는 심장인 여자와 마력적인 접속상태에 있다
아마도 어떠한 계약에 의해 그 선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심장에 일어난 사태는 루기스에게 영향을 주고, 반대도 마찬가지
그토록 대마의 심장이 되기를 거부했던 그녀도
루기스로부터는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마성과 라브르가 끼워진 톱니바퀴를 빨아들였다.

이제 심장으로서의 기초는 충분합니다
라브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즉시 우리 주인의 눈을 뜨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사소한 일에 구애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천성거수 브리간트
아직도 수도 근교의 베핌스 산에서 잠자는 
그의 존재의 눈동자를 뜬다고 라브르는 말했다

하긴 대마 브리간트가 재탄생했다면
이미 마인의 현현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그만큼 대마는 압도적이어서 그냥 마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쥬네르바는 한순간의 환희를 마음속에 떠올리면서도
그러나 곤혹스러운 말을 해 보였다




"우리가 주인의 일은 네게 맡기긴 했다만
지금 깨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야
심장은 어떻게든 했다만, 이 썰렁한 공기는 어찌 하려고?"





일찍이 대마가 군림하고, 마성들이 세계의 패자였던 위대한 시대
세계의 마력은 더욱 농밀하여 마력적 현상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별을 떨어뜨리는 마법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비의도
지금은 잃어 버린 마의 대부분이 있던 신화 시대

하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이 아르티아에게 빼앗기고
또 대마가 없어진 이 시대에 있어서
이제 세계에 잔류하는 마는 조금이였다

브리간트는 물론 라브르 주네르바에 토텔라라스 등
이 시대는 지독하게 엷은 산소 속에서
호흡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전성기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농도를 조정하기 위해
사람들을 다투게 하고, 서로 죽이겠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인간이 몸에 모은 마력은 그 혈육이 튕겨나가는 것으로 공기 중에 환원된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영향은 미미하지만 조금씩 마력이 농도를 더해갔다

라브르는 조각 같은 인형의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두 팔을 벌려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인이 되어 심장이 완성된 이상
다소 무리한 방식을 써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세상의 운명이라고 해석합니다
즉각적인 이해를, 그러기 위해 쥬네르바 당신에게 행동을 부탁드립니다"






쥬네르는 라브르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라브르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 가능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분명 최적인 상황을 고집하는 성질
왜 그런 그녀가 지금, 여기서 그 방침을 바꿨는지 쥬네르바는 알지 못했다

아니, 그정도로 루기스의 마인화는
그녀에게 있어서도 상정 외의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뭘 해야 하느냐고 쥬네르바가 묻자 라브르는 발끝을 튕기며 말했다





"인간들은 결집을 하지 않습니까
가능한 한 많은 인원을 가지고, 우리에게 대항하려 하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뭉쳐 있으면 그것을 정면에서 부수는 겁니다
단지 그것 뿐입니다, 많은 죽음으로 인해 마력 농도가 높아질 것이고
그 즉시 심장을 주인에게 이식하는 겁니다, 그럼 깊은 잠에 빠지진 않을테죠" 





게다가 지금 세계의 마력 농도가 희박한 것은
세계가 그것을 통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령왕 제브렐리스, 용왕 브리간트
과거의 신의 두 기둥이 완전한 재탄생을 이루었다면
한번 게으름을 느꼈던 세계도 다시금 그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쥬네르바는 라브르의 말에, 어깨를 펴고 날개를 드러냈다

사람을 모으고 난 뒤 그것을 때려눕히기만 하면 된다
쥬네르바로서는 하품이 나올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몇백 년 전부터 마인으로 군림했던 자신이
신품 마인에게 패배를 당하리라고는 쥬네르바는 생각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얼마나 필요하지?"


"대략 나라 하나 정도의 피가 필요할 것 같네요, 즉각 이해를"





◇◆◇◆





적동룡 샤드랩트는 가슴속에 곤혹을 품고 있었다

마도장군 마스티기오스의 탈환과 병들의 구출
그것은 이미 명확한 반란에 속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압을 위한 마군은 한두 차례의 무력행동이 성공하지 못한 시점에
병사들에게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 요인의 큰 부분은 인간측에 마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다른 생각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구릿빛 용 샤드랩트는 파악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반드시
마인 쥬네르바나 라부르가 그 무거운 허리를 들 것이다
만약 인간들이 결집해 태세를 갖춘다면 기회는 지금 이 순간뿐일 것이다

그래서 샤드랩트는 당황했다
지금 시대 자신의 근거지이자
반쯤 주인으로 모시는 카리아 버드닉의 은발을 그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숙소라고 정한 시설 안에서
카리아는 마인 루기스에게 딱 기대듯이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굴은 매우 행복해 보이는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는 지키는 것 같긴 해도
샤드랩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다른 암컷을 접근시키지 않기 위한 시위 행위였다
과거 용족 사이에서도 비슷한 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이럴 때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그들을 따라가도 괜찮은 건가?
샤드랩트는 가슴으로 밀려오는 우려를 깨물며 뺨을 찡그렸다




"……카리아님"




머리가 희끗희끗한 소녀 레우도 카리아의 모습에 약간 겁먹은 듯 보였다
왠지 샤드랩트의 발밑에 숨어 있었으나
오히려 숨고 싶은 쪽은 샤드랩트였다




"자, 얘기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마인과 거인이 모두 모인 가운데
말참견을 한 것은 마스티기오스의 부관인 하인드였다
아직 그 얼굴과 팔에는 아픈 마력상이 남아 있었지만
간이적인 치료로 끝냈다

이 자리에 앉는 마스티기오스와 부관 에일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볼버트군에 무사한 자는 아무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상했던 형태와는 다르지만, 우리는 수도 합류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군이 피해를 본 이상, 재편성은 필수이겠죠
시간은 꼬박 하루가 걸리겠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에일린이 과거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오른팔은 붕대를 감은 채 힘없이 무릎 위에 얹혀 있었다

쥬네르바를 만났을 때
그 독극물 한 조각을 맞은 영향으로
더 이상 오른팔에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를 감싸던 마법짐승이 온몸이 녹아내려
절명한 것을 생각하면 행운이긴 했지만 말이다




"운용 가능한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되지, 에일린?"





마스티기오스는 에일린에게 배려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군인이라면 상처를 입는 것은 각오해야 하고
무엇보다 상처에 기인한 배려가
얼마나 에일린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인지 마스티기오스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확인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만, 많아야 5천으로 보입니다
일부 수도의 마법사나 잔류해 있던 오일란트 병장이 이끄는 병사를 합치면
대강 6천 쯤에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인 쥬네르바의 내습에 의해 군의 대부분은 녹아내려
생명이 남아있던 자들은 대략 1만 정도
하지만 그들 가운데 병력이 될 수 있는 자는 더욱 제한될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마인과 맞서 더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는 뜻이였다

때로는 작은 벌레도 거대한 동물에 맞설 때가 있지만
인간은 벌레보다 겁도 잘 먹고 약삭빠르다
인간의 한계 이상의 것을 알고도 싸울 수 있는 자는
어딘가 미치지 않은 자들일 것이다

마법사란 본디부터 삐뚤어진 존재라지만
그래도 어디까지 전력이 되겠는가
에일린은 엄살을 떨지 않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엄청 불안감에 차 있었다




"내 생각엔, 졸병 따위는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마군도 좀 있으면 마인들이 나올테고 말이야
마인이 어떤 존재인지는 다들 보았겠지요?
재앙이에요, 재앙... 아르티아 정도는 불러와야 겠지"




마안수 도하스라는 방치돼 있던 소파에 드러누운 채 말했다
루기스가 없는 동안에는 따르는 의미도 없다며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던 그였지만 루기스가 있는
지금에 와서는 얼굴을 내밀 마음이 생긴 모양이였다

도하스라의 말에 에일린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녀라고 해서 결코 그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군사가 쓸모없다고 한마디로 잘라 버리기는 꺼려졌다

만약 그렇다면

마인 쥬네르바와 전투하면서 
잃어버린 1만여 병사의 죽음은 모두 헛일이 되고 말 것이다
자신을, 그리고 수많은 동료를 철수시키기 위해
흩어져간 병사들의 목숨이 무의미해진다는 말이다

마스티기오스가 가볍게 팔을 들어 말문을 닫았다




"네 말도 맞다
하지만 군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도 많지
저쪽도 군을 쓰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건가요? 저들의 대장이 마인이라면
우리도 일단 마인을 써야겠죠?"




도하스라는 쌍각을 천장으로 향하고 누운 채 루기스를 쳐다봤다
루기스는 진홍색 눈동자를 깜박거리더니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잘 모르나본데, 난 딱히 너희들 편이 아니야
네가 불완전하다고 했으니, 그냥 기다리기만 해주겠어
별로 도와줄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루기스는 마스티기오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히려 그 시야에는 마스티기오스와 옆의 카리아밖에 없는 것 같았다
마스티기오스는 가늘게 시선을 보내며 작게 손가락을 떨었다

루기스가 인간일 때와 다르다는 사실은
적어도 이 자리의 존재 이외에는 은닉되어 있었다

어차피 문장교의 영웅이자
마스티기오스 탈환의 일등공신인 그가
진정으로 마인화했다는 등의 말을 하면
사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이번 작전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사기에 도움이 되 것이다



장안의 시선이 일제히 루기스를 응시하다가, 카리아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은색 눈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나는 루기스가 그렇게 말한다면 상관없어
그러나 루기스, 기억을 잃기 전 너는 대마도 마인도 먹어 치울거라고 했어
이제 그런 기개는 더 이상 네게 없는 건가?"




게다가 동료도 사로잡힌 채라고 카리아는 덧붙였다



카리아의 말에 루기스는 다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몇 번의 말을 주고받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루기스는 자신과 같은 피가 통하는
카리아에 직감적인 가까움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그것이 물리적으로 주어진 피인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그 동료란, 검은 머리의 여자인가? 등까지 나 있는 검은 머리"


"그래, 기억나?"




얼굴을 들여다보는 카리아에게
루기스는 마검을 기울이며 어깨를 움츠리고 대답했다




"아니, 그냥 궁궐 안에서 봤다
하지만 뭐……네가 말한다면 그렇겠지
너는 내 여자였나?"


"응? 아... 나... 나는 네놈의 방패였다"




그 자리의 여러 사람이
특별히 개의치 않고 그 말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표정을 조금 굳힌 것은 마안수 도하스라와 그리고 레우뿐이었다



두 사람은 생각했다
제발 이 일이 다른 데 드러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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