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95화 - 인류군의 영웅 -

개성공단 2021. 4. 2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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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놈들은 바보들의 모임이라고 들었다
물론 나도 그래, 너희들은 어때?"

루기스의 격려는 그런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격려인 것 같지도 않고, 대본도 모두 무시한 말들이었다

고지대에 선 루기스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당당한 모습으로 목을 울렸다
그것은 목소리가 크기만 한 가벼운 소리로도 들렸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루기스가 내팽개친 양피지는 바람에
휘말려 이제 종잇장이 되어 바닥에 그 몸을 눕혔다
그것을 일부러 주워 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사들은 모두 루기스만 쳐다봤다



과거로부터 그를 아는 사람
전해 들은 적이 있던 사람
동경했던 사람
누구나 영웅을 그 눈동자에 담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루기스는 천천히 사이를 두고 병사들을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마인을 상대하겠다는 목숨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어
너희들 모두 내일이면 모두 죽어도 이상할게 없을 것 같은데"




루기스의 말에 많은 병사가 숨을 삼켰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번 싸움이 상당히 가혹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르는 사람도 영웅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까지 말한다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사들 속에 웅성거림이 일어나고 파도처럼 동요가 퍼져 갔다
누구나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은 바보들뿐이야...
인간이 마인과 싸우면 어떻게 되는 지, 너는 알고 있나?"




불운한, 혹은 운 좋은 병사가 루기스에게 받침대 위에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병사는 순간 목이 메어 콜록거렸으나
주위를 힐끗 쳐다본 뒤 목청껏 응수했다
그 말에는 결의 같은 것조차 어른거렸다




"대부분 죽겠습니다만, 그래도 저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그것 뿐이잖아"



루기스의 말은 빨랐다
받침대위에서 그병사의 눈을바라보고 말을 계속했다

군사를 얕본 듯한 태도로 보였을 것이다
일순간 에일린이 분통을 터뜨리며 자리를 떴지만
가까스로 하인드에게 짓눌리는 것이 보였다




"답은 둘 중 하나다
그냥 죽을 것인가, 마인을 죽이고 인류의 영웅이 될 것인가"





병사의 눈을 바라본 채 루기스가 말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이번에는 군사들이 수런거리지 않고 말을 하는 일도 없었다

모든 병사가 루기스의 시야를 파고들었다
병사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결국 너희들은 모두 자살지원자이자, 영웅지원자, 바로 바보들이란 거다
기분이 어떠냐? 지금 너희들은 역사의 최전선에 있을 텐데!"



기분이야 따지고 물어도
분명 지금의 루기스에게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단지 대마, 마인을 상대하려는 인간이
이토록 많은 것에 가장 흥미가 있었다

 싸움에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영지일까, 막대한 금전일까, 힘일까

분명 그 어느 것도 없을 것이다
설령 이 볼버트라는 국가를 구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명예 뿐
그것도 일반병이라면 그저 위험이 많은 전쟁에 휘말릴 뿐일 것이다

도망치고 등을 돌리고 통상적일 것이고
그것이 루기스가 아는 일반적인 감성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쳐 마땅한 이 상황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한 것일 것이다

왜소하고 나약하다
마인 루기스의 인간관은 바로 이것이였다
라브르가 말하는 올바른 운명의 길목에서
루기스라는 영혼은 인간의 미덕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악덕이야말로 번영하는 것이 세상사
루기스는 자신이 좋은 사람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들이 있었다
죽기살기로 싸우려는 큰 바보들이 마인들을 앞에 놓고
아직도 도망가려 하지 않는 무리들이 이 정도나 있었다

루기스는 눈을 떴다
처음으로 아름다운 걸 본 기분이었다



"너희들이 못 죽인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죽여주마
하지만 너희의 생애는 누군가의 발판이 아니잖나?
그렇다면 죽이는 것은 너희들이다
마인의 상대조차 할 수 없다면, 인간이 멸망하는 게 나을 테니까!"



문장교병들이 숨을 삼켯다
평소와는 다른 직접적이고 과격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이 때만큼은 무언가의 열이 있었고
그것은 병사들 너나할 것없이 속의 감정을 울려퍼지게 해주었다

군사라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러면서 죽음에 맞서야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일반 시민이었고 마법나 마법장갑병들이라고 해서
꼭 상위 귀족 출신인 것만은 아니였다

먹고 살기 위해 군인이 된 사람도 허다했다

비록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이 죽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죽으면 먹을 것도 없고 욕심을 채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적이 강대하면 두려움을 보이고 등을 보인
그것이 통상의 병사라는 것



그렇지만 그런 평범한 병사가 어느 때엔
싸움터에서 진정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도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럴 때 병사는 적의 커다란 검도, 창도, 기사의 돌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입김이 뜨거워졌다
진지를 구축하던 병사들도 어느새 루기스를 쳐다봤다

루기스는 무심코 마검을 어깨에 얹고 그리고는 허공을 참획했다
새가 우는 소리가 났고, 정찰하러 온 것 같은
마조 한 마리가 정면으로 양단되어 떨어져 갔다
핏방울이 하얀색으로 가득찬 하늘에 깨끗하게 흩날렸다




"간단하게 말하지, 고작 한 판 지면, 그냥 시체
이긴다면 너희 모두는 마인을 죽인 인류 최강이 된다
하루 이틀만 버틴다면 결과는 금방 나오겠지"




그렇게 루기스는 말했다
마검이 피를 머금고 그 보라색을 빛나게 하며 주인에 동조하듯이 더 빛났다

병사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흥분에 의한 허위인지는 이제 그들만이 알 수 있었다



"그럼 영웅 용사가 되러 가자!
너희들이 의지의 체현자인 한, 불가능이란 말은 이 세상에 없다
안심해라, 정 안된다면 내가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남은 건 결과 뿐이다!"



 
잠깐의 침묵, 후에 큰 소리로 병사는 루기스에게 응했다
너나없이 주먹을 치켜들었고
그의 진홍색 눈동자가 잠시나마 예사로운 빛깔을 되찾는 듯했다

흥분과 전의, 그리고 전쟁터 특유의 광기가 병사들 속으로 소용돌이쳐 갔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갈며 지급된 술을 입에 머금었다
그저 버틸 궁리만 하던 눈망울에
적의 목숨을 노리는 사나움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루기스는 고지대에서 눈을 가늘게 뜨며
병사들과 그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검은 파도가 되어, 가도를 밀려오는 것들
그것은 하늘과 지상을 기어가는 그 마성 무리들이였다

마군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진형을 갖추고 이쪽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원래 마인 루기스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누구의 편도 아니었고 그에게 있는 것은 적뿐이니까

그래도 지금만큼은 기분이 조금 좋았다
좋은 걸 봤어, 아주 좋은 걸 본 거야
하찮은 명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군







역사서나 전문을 통해
전해지는 루기스라는 인간은 그 인물상이 명료하지 않다
때때로 모습은 변화하고, 사람들이 말한 내용에도 차이가 크다

특히 이 볼버트 수도에서의 격려는
다른 사람의 일화가 혼재된 것 아니냐는 설이 많다
늘 거론되는 용모나 말투와는 다르고
그 내용도 다른 것들과는 색달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누구든
이날 아르티아 이래의 인류군을 이끈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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