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4장 엘디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86화 - 엘디스 라는 여자 -

개성공단 2020. 3. 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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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까매지고, 평형감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몇 번의 깜빡거림과 같은 감각을 거치고,

눈이 열렸다.

 

눈동자에 비친 그것은, 아주 낯익은 광경이였다.

엘디스는 손가락 끝에 힘을 줘서, 자신의 몸 인것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환영을 만들어내고,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감각은 정말 알 수 없다.

때로는 정말 이것이 자신의 몸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없어져 가지만

 

어쨌든, 시키는 일은 완수했다.

엘디스는 살짝 볼을 풀었다.

격렬한 표정은 아니였지만, 얼굴은 조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것으로 그도 만족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에서 몸을 내렸다.

 

문득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진 듯 막 튀어있고,

옷차림은 남장이라지만, 약간의 흐트러짐이 눈에 띠었다.

속눈썹이나 안색도 여느 때와 비교해서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디스는 거울 속의 자신을 잘 관찰하며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옷도 각을 잡기 시작했다.

 

엘디스는 이왕이면 빗질도 하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버리다가, 문득 뺨을 물들고 말았다.

 

예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옷차림이나 얼굴 같은 것을

딱히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뭐하고 있는 건가

 

엘디스는 사춘기의 소녀처럼

커다란 눈동자를 흔들며, 거울을 쳐다보았다.

 

어짜피 만날 상대라면, 인간 루기스 일텐데..

나는 뭐하러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로 통하는 문에 손을 대었다.

 

삐걱 거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돌아왔어. 

적어도 눈가리개를 쓴 채, 싸울 필요는 없을거 같아"

 

그것이 누구의 공적인지는 밝히지 않고

다소 겸소한 목소리를 목구멍에서 뱉었다

 

그러나 잠시 기다려도, 

기대했던 목소리는 방안에서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원래였으면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며 방안을 들여다보니,

녹의의 그림자는 의자에 주저 안은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엘디스는 천천히, 소리를 내지 않으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장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깊은 숨,

열리지 않는 눈꺼풀... 

루기스는 의자에 주저앉은 채,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엘디스는 불만을 드러내듯 눈빛을 강하게 떴다.

원래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였지만,

지금 그 모습에서는 분명 언짢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지시받은 대로 환영술로 정찰활동에 나섰는데,

정작 그 지시를 내린 사람은 잠에 빠져 있다니...

지시를 내린 이상, 결과까지 지켜봐야 하는게 의무 아닌가?

엘디스는 루기스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며,ㅏ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었다

 

아, 잠깐... 하고 엘디스는 눈을 깜빡이며 다시 생각했다.

 

그는 어젯밤, 나를 지탱하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었다.

아, 그랬었지 ...하며 엘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나

 

인간의 몸이란 그리 튼튼하지도 않고,

내구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고 들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잠시 수면을 취하는 것 정도는 

봐줘야 할 것이다.

 

엘디스는 슬그머니 의자에 놓인 그의 손을 쓰다듬었다.

특히 이 자는 나의 기사니까

그 정도는 용서하는 것이 위에 선 자로서의 아량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이미 엘디스의 마음 속엔 불만감 같은 것이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그를 칭찬하려는 심정만이 샘솟고 있었다.

 

별로 그에게 마음을 준 것은 아니고,

진심으로 믿는 것도 아니였지만...

 

그녀는 속으로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진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서로 연민하는 듯한 동정심에서 였다.

 

하지만 루기스의 의지와 긍지를 지켜보면서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은 변모 되어갔다.

 

루기스의 잠든 얼굴을 계속 쳐다보는

엘디스의 뺨에서 미소가 새어나왔다.

 

루기스는 그야말로 자신의 은인이였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이 탑에서 서서히 미쳐갔을 수도 모르는 것이였고.

그가 없었다면, 나는 이 탑을 나갈 용기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루기스의 축 늘어진 손가락을 잡아서

자신의 손가락과 겹쳐나갔다

 

"엘프라는 것들은 아주 집념이 강해...

한번 품은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엘프는 장수하는 습성인지 몰라도,

사고방식과 습관, 감정 모두, 변질되기가 어렵다.

가벼운 일상이라면 몰라도,

깊이 새겨질수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그리고 자신은 그와 계약을 맺었다.

동화 속 공주와 기사 같은, 그런 계약...

 

마음을 완전히 허락한 것은 아니지만,

루기스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약속을 지키겠어

스스로의 긍지를 걸고 말이야"

 

아직도 숨소리를 내는 루기스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엘디스는 중얼거렸다.

 

제 4 장 엘디스 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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