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20화 - 영원히 돌아가는 톱니바퀴 -

개성공단 2021. 5. 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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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어지고 영원히 계속되는 투쟁
그래서 계속 돌아가는 톱니바퀴
용의 심장인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는 한 광경이 보였다

그것은 대마 브릴리간트가 보는 광경이였다

부분적으로 대마와 동일화를 이룬
피에르트는 그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브릴리간트의 가슴속에 켜져 있는 것은 타는 듯한 증오도
뜨거운 분노를 토하는 격도 아니고, 오직 정복이라는 개념뿐

아, 검은 용은 정복과 멸망밖에 모른다
분명 그의 용은 눈앞에 문명이 있는 한 그것을 마구 먹어치울 것이다
지배나 통치라는 말은 희박, 정복만이 전부



틈을 가지지 않는 파멸이야말로 브릴리간트의 본질
하늘 끝에 있는 것을, 지평 앞에 있는 것을 그의 용니로 깨물고 싶은 것이다

그는 분명 영원히 그것을 반복할 것이다
멸망을 주는 것이 자신의 존재의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브릴리간트는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정의는 없고 악조차 없다
오직 영원한 투쟁과 시들어 가는 멸망만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세계를 새롭게 만들게 하기 위한 톱니바퀴와도 같았다



피에르트는 그 의지의 중추에 자리잡고, 희미한 생각을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지금 그 영원한 톱니바퀴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기분 좋은 욕조에 몸을 담그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유한한 그 자체로 무한의 일부가 되려 하고 있다
눈꺼풀이 무거웠고, 호흡하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였다

이 완만한 어둠 속에서 잠들면 나는 그대로 영원할 것이다

너무 엉뚱한 발상이었지만 현실감이 넘쳤다
꿈인가, 현실인가, 피에르트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무 생각 할 필요도 없을테니까

이 생각이 몇번이나 피에르트의 머릿속에서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매우 감미롭고, 아름답고 훌륭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그것은 어떻게 해도 머릿속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누구나 익숙한 길을 가면서
체념과 후회에 젖은 나날을 보내는 것은 이젠 싫어
어떻게 생각해, 우리 공범자님?"




수많은 소리와 말, 그리고 아주 익숙한 목소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무거워진 눈꺼풀이 다시 슬쩍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싶지만
그러나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내가 어딘가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문답이 몇 번이나 계속되고 있던 와중...






짙은 어둠 속 가시 돋친 극광이 피에르트와 주위를 비추었다
피에르트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빛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고, 그저 잠들고 싶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영원과 같아지려 하고 있는데
이 빛은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혐오스러운 표정이 피에르트의 얼굴에 떠오르고 등줄기에 열을 올랐다

무음이었던 지평 안에 목소리가 메아리쳐졌다






"어머? 수십 년을 자신을 구부리고 사는 것을 싫다고 말했으면서
꽤나 제멋대로이고 오만해졌군? 피에르트 너 이거 추태인거 알아?"





자신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귀에 익은 목소리, 하지만 지금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점, 그 녀석이나 너나 마찬가지야
아 역시, 인간은 오래 살면 안 되는 것 같아
말만 번지르르하고 그걸 실천하지 않는 건 최악의 종류인 것 같은데
피에르트, 넌 어때? 넌 어떻게 생각하지?"





시끄러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마
사고가 혼란스럽고 머릿속에 그런 말이 난무했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피에르트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반발의 감정만 뒤섞여 있었다




"피에르트 일어나, 루기스도 기다리고 있어"




피에르트는 손이 뻗친 것을 자각했다

이것을 거절해야 한다고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이 손을 잡으면 안 된다, 그것은 영원으로부터의 괴리를 의미한다

이대로 잠들어 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영원이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 본능과는 달리
손에 무엇인가의 감촉을 피에르트는 기억하고 있었다
보들보들 따뜻해... 마치 감싸는 듯하군

어느새 피에르트는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일체의 사고가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의 몸이 떠오르고, 눈동자가 느슨해졌다
이제 피에르트는 자신이 영원한 존재로부터 
이별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와의 동일화, 그것은 마법사의 궁극이라 해도 좋은 선택일텐데

그러나 피에르트는 그 모든 것을 버렸다
그 밖의 길을 택한 것이다,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그녀의 눈꺼풀이 열렸다
검은 머리가 시야를 가렸고
누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안녕 피에르트, 깨우는 방법이 거칠었을까?



당당하게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하는 아가토스가 시야 끝에 있었다
피에르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빛만이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눈부신 빛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까 가시 돋친다고 생각한 것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말이다

피에르트는 부드럽게 입을 열며 말했다
말에는 어딘가 명량함이 있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단지 영원한 건 아무 가치도 없어
고마워, 아가토스, 근데 루기스는 안 왔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삐진 듯한 내색을 하는
피에르트게 아가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피에르트도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역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는 표정이였다

아가토스는 허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신에 대한 걱정을 먼저 하는 거 아닌가?




"그 녀석은 밖에 있어
바보처럼 브릴리간트와 칼로 맞대고 있지
이대로면 곧 죽고 말거야, 피에르트 저 녀석을 돕고 싶지?
내 말을 똑바로 듣고 행할 생각 있어?"



"초조하게 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누구의 손이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야
마인이고 뭐고 말이야"




아가토스는 피에르트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볼을 풀었다

그녀의 체구는 피에르트가 전에 본 것보다
훨씬 피폐해 보였지만 자신감을 넘치는 몸짓만은 여전했다

아가토스는 몸을 일직선을 펴며, 말했다





"그럼... 다 뺏어버리는 거야, 다 가져가자고!"





뺏는다...?
무심코 그렇게 되물은 피에르트에게
아가토스는 마성의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빼앗는 것만이 득이 되는 천성룡에게서
이번에는 모든 것을 빼앗가자는 것이야
걸작이지 피에르트?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는 인간과 달라, 지고의 방자함과 최고급의 오만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므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빼앗더라도 가져가는 법이라고"



아가토스는 오래간만에 유쾌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목을 울리고 그 뺨에 요염하게 주홍색을 띠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피에르트가 보기에도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할 정도였다

피에르트는 그것에 응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아가토스 너와 같아
나도 갖고 싶은 것은 빼앗더라도 갖고 싶은 자야
그리고 마지막엔 그 옆에 있으면 그만이지"




자, 그럼 뭐 할까?
피에르트 또한 감정에 목소리를 실으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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