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43화 - 어떤 남자의 이야기 -

개성공단 2021. 5. 10.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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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이스트 왕국의 북방 일대를 직할지로 하는 대성교

지금, 왕국과 이 종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합일을 도모하려 하고 있었다

왕도를 잃은 왕국은 대성교의 후원을 필요로 했고
국가 권위가 없는 대성교는 자신에게 권력을 요구 했다

여왕 필로스가 이끄는 신왕국이라는 
외압의 출현에 의해 비로소 양측의 의도는
완전한 합치를 보이려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대두를 나타내는 사람이
대귀족 올리비아 벨루치였다



벨루치 가문은 물론 갈라이스트 왕국 중에서도
대성교와 가까운 위치에 있던 가문
양자 사이를 주선하는 데에는 가장 편리했다

조정자, 절충자라고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벨루치 가문의 위세는
외동딸 올리비아가 성녀 알류에노의 오랜 친구라는 점일 것이다
아직 성녀가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올리비아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알류에노의 방에서
올리비아는 의아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너라면 나를 통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을 거 아냐?"





올리비아는 희한하게도 뒤끝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귀족이라기보다 친구에게 말을 거는 듯한 친밀함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 그렇지도 않아요
순서라는 것은 중요한 거에요
무리를 하면 반드시 알력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성녀 알류에노는 올리비아 앞에서
신발을 벗어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녀의 말에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알았어, 아멜라이츠 폐하껜 군사를 보내도록 건의할게
명목은 참칭자 토벌... 이제와서 명목 같은 건 필요없겠지만 말야"






구왕국과 신왕국은 이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그게 빠르냐, 느리냐 하는 것뿐
창을 겨누는 동기는 얼마든지 있다
그저 알류에노가 원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올리비아의 말에 알류에노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스스로 전쟁을 명령해 놓고도 소녀 같은 천진난만함을 그녀는 보이곤 했다

이것이 성녀라는 것일까
수도원에 다닐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야, 알류에노,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전쟁..."


"물론이죠. 이길 수 없는 전쟁은 벌이지 않는 법이니까요"




가볍게 미소 짓는 알류에노가 올리비아에게는 눈부셨다
그녀가 성녀가 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는 일체의 의심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단지 신도라면 틀림없는 승리를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보다 
알류에노와 가깝게 지냈던 탓이였는지
순순히 그 말을 삼킬 수가 없었다

올리비아는 현실적인 여자
자신의 상황을 객관시해 버릴 수 있는 여자였다
신왕국과 구왕국 측, 지금 어느 쪽에 힘이 센지 따위는
당연하게 깨닫고 있는 상태였다



용과 마인을 죽이고
새로운 여왕을 받드는 신왕국은 절정에 있었다
아니, 앞으로 더 성장해나갈지도 모른다

반면 이쪽은 완전히 망했다
왕도,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남아 있는것이란, 명분과 군병뿐
많은 영웅이 있지만, 그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는 웃돈다 해도 승패는 위태롭다
그것이 올리비아가 내린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승리의 싹이 남아 있다면
이쪽이 성녀를 두고 있다는 점뿐일 것이다

올리비아의 매서운 눈초리를 눈치챘는지
알류에노는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어릴 때부터 말다툼이든 뭐든
루기스는 날 이겨 본 적이 없어, 이번에도 내가 이길 거야"


"음... 미안한데, 알류에노, 다시 한 번만 말해줘"


"루기스는 나를 이겨본 적이 없어"





홍차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만큼 알류에노의 곧은 말이 더욱 두려웠다

루기스라고 하면
이제 대성교 갈라이스트 왕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역자, 대악, 반 영웅 루기스, 용조차 죽이지 못한 자

대성교에게도, 갈라이스트 왕국에게도 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목에는 수많은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아멜라이츠 왕에게 실권이 돌아온 전제에서 말한다면
그것을 죽인 것만으로 가벼운 공작령 정도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증오해야 할 적의 이름을, 열에 들뜬 것처럼 알류에노는 불렀다





"아, 말을 안하고 있었내
루기스와 나는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어
서로 장래를 다짐하는 사이였지


"에,뭐...?"




말문이 막혔다

지금 여기서 농담이라고
웃어넘겨주는 편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그러나 알류에노에게는 전혀 그런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올리비아의 반응을 재미있어하는 반응도 있었다.

대성교의 성녀와 적대세력의 실질적 정점이 
깊은 관계에 있었다는 등 도저히 드러내놓고
좋을 일이 아니었다
아는 것 자체가 위험할지도

침을 꿀꺽 삼키며 올리비아는 물었다





"그거 나 말고 누가 알까?"

"너 뿐이에요, 올리비아"





역시나 하고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알류에노는 우연히 입을 잘못 놀린 것이 아니다
굳이 루기스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폭로한 것이욨더

올리비아가 지금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에 교란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 내게 태도를 정하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혀를 내두를 만큼 빈틈이 없었다
알류에노의 황금 눈동자가 올리비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단번에 결단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확신이 올리비아에게 있었다





"...이제와서 네 친구를 말릴 생각은 없지만
이왕이면 가르쳐 줬음 하는데, 루기스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깊게 숨을 내쉬며 올리비아는 알류에노 옆에 걸터앉았다
알류에노는 역시 나이에 걸맞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






루기스는 어떤 사람일까

올리비아의 그 물음에
알류에노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팍을 만졌다

당신에겐 어떤 사람이였느냐...?




"말할 것도 없지
그는 마인을 죽이고 용을 죽였어, 하지만 영웅도 용사도 아니지"



목소리의 주인은 신령 아르티아
성녀와 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 것
인간과 마를 초월한 존재

그 신은 흔들리듯 말하면서도, 흥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렇게 묻자 아르티아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최근, 그런 기회가 증가하고 있는 기분이 알류에노에게는 들었다
어쩌면 스스로와 동화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를 것이다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하지, 알류에노
내가 과거에서 경험했던 여로에서 다른 사람들은
마치 내가 중심이였던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아니야
그 남자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였고, 모든 것의 중심이였어"





아르티아는 그리워하듯이 말했다
자신의 기억을 알류에노에게 새기려는 듯이 말이다

아득한 과거에 남자는 말했다




"이 바보야, 포기하지 마!
이 세상에 불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어!
세상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그는 바로 미치광이었다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마성이 대지의 패자였고
인류 등 그들의 가축이자 음식일 뿐이던 시절
무엇 하나 의심치 않는 눈으로 사내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모두들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려들지 않도록 그에게서 멀어져 갔고
결국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믿고 있었다




"나는 결코 지지 않아
어떤 환경이 닥쳐도, 도망가지도 않을 테야!
살아가자! 사는 건 고통이 아니야, 삶은 증오가 아니야!"






이윽고 남자의 말에 끌리는 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물을 훔치기만 할 줄 알았던 도둑

의심으로 가득차 있던 구릿빛

그리고 사랑을 몰랐던 소녀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어느덧 그를 중심으로 모든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가 자신을 돌아볼 줄을 몰랐기 때문이였다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 통증이나 상처는 모르는 몸짓으로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해내곤 했다
평소의 그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열량으로
그런 그를 아무도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남자는 몇 번이나 말했다




"이 세상엔 불가능이란 없어,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남자 주위에서 영웅 몇 명 또는, 용자가 태어났다
그는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소녀에게 있어서의 희망이었다
소녀는 그 재치로 위대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소녀는 남자야말로 위대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정말 불가능한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처음에 불가능의 벽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자의 육체였다

남자는 영웅도 용자도 아니었다
영혼은 평범하고 육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였다




본래 우리 몸은 계속 나아가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그렇게 해서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는 양식을 얻곤 했다

잠자는 시간도 쉬는 시간도 내팽개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악덕이지 미덕이 아니였다

고통에 허덕이는 육체를 짓누르고 걸음을 내딛는 것은 
광기였고, 결코 용기는 아니였다

남자는 분명, 그것조차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였다





"걱정하지마, 내가 죽은 곳에서
또 다음, 그리고 다음 누군가가 내 역할을 해낼거야!
난 끝까지 행복했어, 마지막까지 너희들 곁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





분명 그때였다
사랑을 모르는 소녀가 사랑을 알고
남자를 구하고 싶어한 것은...
그래서 지금 이 때도 두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서로를 구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였다
그 길이 결정적으로 엇갈린다 했더라도 말이다




"결국 루기스란 인간도 그 남자와 다르지 않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결국엔 부서질 운명에 처 해있... 아니, 한 번 고장나 버렸군"





아르티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류에노는 알아듣지 못했다
고장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걸 따지기도 전에 아르티아는 말을 이었다.





"그도 역시 혼자 절망해 죽을 수 밖에 없을 거야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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