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05화 - 원하는 것은 값싼 행복 -
일찍이 대륙을 제압한 정령, 용, 거인
즉, 세계를 수중에 다스린 자들
경악하게도 그들에게 죽음은 극복될 수 있었다
대마, 마인은 물론 색이 짙은 마성을 띤 이들은
어느덧 육체의 죽음이라는 결말에서 벗어나
원전과 영혼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최후는 오지 않았고
시계처럼 순환하는 세계 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을 뿐이였다
그렇게 영원히 인류는 그들을 구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사실일까
날벌레 같은 동물, 인간을 물론이고
나무와 물, 불꽃을 비롯한 자연물조차도 마지막 죽음은 찾아온다
만물이 멸망하도록 정해져 있다면
사물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잉태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 선다면, 대마도 마인도
아니, 마성 모든 것이 죽음을 극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계속 도망가고 있을 뿐이다
열심히, 그 최후를 만나지 않도록
자신을 해체하고 죽음을 정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거인의 목이 성대하게 찢어졌다
폐촌에 많은 피가 쏟아지며, 그의 영혼이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왕 메디크와 마녀 바로누스의 시선이 루기스에게 쏠렸다
눈을 부릅뜨고 호흡을 한 뒤
양쪽 모두 그 참격의 정체를 일별에 해독했다
전자는 마력에 민감하기 때문에
후자는 마법과 술식의 경험 때문에였다
"여기서 끝난다면, 정말 평화로울 텐데"
"과연 제브릴리스는 죽었구나, 경악이군"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바로누스는 지금 이때까지만 해도
제브렐리스는 체구만 잃었을 뿐이며
잠에 빠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그런 생각이 눈앞의 남자에게 베어 지고 있었다
거리를 죽이고, 거인의 완강함을 죽이고
영혼을 죽이기 위한 한 방편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 그의 권능
아마도 거리의 생물을 죽이는 능력을 준 것은 통제자일 것이다
거인의 근력이나 정령의 가호를 체구에 스며들게 한
전투법을 가르친 것은 보석인가 구릿빛인가
뭐 그것이 누구든 상관없어
필요한 것은 이 남자는, 여기서 죽여 두어야 한다는 것 뿐이다
바로누스는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꼭 감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왕 메디크가 마성에 항거하기 위해 인간을 넘었다면
그는 오히려 마성 그 자체가 되어 인간을 넘어섰다
아직도 인류의 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귀찮군,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될 수 있지?"
바로누스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마법을 끌어당겨, 두 마디 영창을 내뱉었다
베어 죽임을 당하고 동작을 멈추었던 거인의 체구가
다시 여섯개의 팔을 구동시키는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거인에게 주었던 영혼은 사라졌고 이제 그의 몸은 죽었다
멸망할 때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마법 속에는 시체를 조종하는 법도 당연히 있었다
엄청난 마력을 동원한 비장의 카드니
단 한 방에 쓰러져서는 곤란하다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여섯 개의 거대한 팔이 각각 팔만큼이나
거대한 망치를 휘둘렀던 것이였다
엄청난 굉음은 원래 느껴야 할 소리마저 잃게 만들었다
인간의 정신 따위는 그것만으로 앗아가 버릴 것 같은 포효였다
하지만 바로누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이런 것은 단순한 위협이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에서 그들이 죽는다면 거인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 증명이 바로 보이고 있었으니
"초월 묘기, 정령 살해"
빛과 같은 초속은 잔상을 남겨두는 법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물론 마성이라고 해도
그것을 시야에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바로누스에게 이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였기에 미지는 아니였다
그러니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있었다
가속은 한 순간이고
정신은 단조로워지지 않는 속도에서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 궤도는 상대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없다
물론,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전제이지만 말이다
초속의 창은 아주 당연하게 바로누스의 가슴팍에 꽂혔다
절명은 면할테지만, 일어설 수 없는 상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누스가 중얼거렸다
"바보 같으니라구"
"오, 그리운 수법이군, 바로누스"
창이 꽂힌 육체가 한순간에 흘러내렸다
그림자가 굳어 만들어졌을 뿐인 인형이
녹아 내려 땅으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창을 날린 모습의 메디크 주위에
수많은 무기들이 덮고 있었다
도망갈 곳을 아예 만들지 않으려는 모양은
거미가 사냥감을 잡는 동작과 비슷해 보였다
"정말 넌 바보야, 메디크
혹시 날 봐주려고 그러는 거야?
말했잖아, 난 마인이며, 인류의 적이야
메디크, 난 너를 베고, 저 대악을 죽이고 승리하겠어"
"뭔가 좀 당황스럽군
그렇다면 이런 문답은 아무 소용없겠지
묻겠다 바로누스, 대체 뭘 할려는 거지?"
"인류의 수를 줄이는 것 뿐이야"
말과 동시에 그림자의 무기가 내려처졌다
그림자 칼날은 반짝임 한 점 없이
잔혹하게 메디크로 쏟아졌다
어떠한 무술의 달인이라도 절명은 피할 수 없는 포위망이였다
하지만 그는 달인도 아니고, 유일한 인간 왕이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두 다리로 강하게 대지를 밟았다
숨도 쉴 틈 없이 창이 몇 번 휘둘러졌다
그리고 그 자세 하나하나가 그림자의 무기를 계속 내려쳐
메디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할 수 없게 만들어나갔다
다만 그녀에겐 이것이 경악의 행동은 아니였다
바로누스라도 이것으로 메디크를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그녀는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그것은 화살이였다
"메디크, 우리의 어리석은 임금... 우리 시대는 지났어
인류는 늘어났고, 도시를 가지고 국가를 갖게 되었지
이것은 언뜻 보기에 자네의 이상세계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달라, 메디크
인류는 결국 마성에 지배당할 운명이야
그렇다면 옛날처럼 살 곳도 먹을 것도 없던 시절보다
선별되어 키워지는 것이 훨씬 행복하지 않겠어?"
바로누스는 손끝에 마력을 집중해
순식간에 그것을 튕겨나가게 했다
그림자 무기로 메디크의 시야를 메우며
그 발밑에 마법진을 전개했다
안쪽의 것을 얼려버리고
영혼조차도 굳건히 동결해 보관하기 위한 마법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은 하위진 마법 중 하나지만
눈의 시기라면 이것만으로도 대형 마수조차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냉혹하고도 차가운 시선으로 인간왕이 말을 흘렸다
"어이 어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바로누스!"
눈동자가 얼어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말과 달리, 메디크의 표정은 불타오르듯 열을 띤고 있었다
그는 마법에 신체의 일부를 굳히면서
창을 크게 휘둘러 계속 사출되는 그림자를 떨어뜨렸다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건 알고 있어"
얼음과 그림자를 두고 메디크는 창을 겨누었다
유례없는 노기가 얼어붙은 눈동자를 태우며
위풍당당하게 바로누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인간이 가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섭리야
메디크, 이것은 네가 시작한 길이야
대마 아르티아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어
그렇다면 인류는 그 비호 아래 지내야 할 거야"
"그러니까,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이다
못 알아듣겠어? 난 그것을 결말로 받아들일 거야"
"메디크"
바로누스는 우는 듯한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인류 누구나 너나, 나처럼 될 수 없어
그것은 이미 천 년전에 알고 있었잖아?
너도 인류의 강인함을 포기 했기 때문에 죽은 거 아냐?"
내가 뭔가 잘못된 말을 하고 있는걸까?
바로누스은 마인의 가면을 떨어뜨리고
자신이 인간이었던 시절을 떠올린 듯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며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네가 말한 적이 있었지, 머지않아 인류는 모두 스스로 일어 난다고
그저 우리는 그날까지를 이어나갈 뿐이라고 말이야
사실은 누구나 너처럼 싸울 수 있었어
하지만, 누구 하나 네 곁에 서지 않았지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네가 죽은 뒤에도 말이야
대다수는 단지 강자에게 매달릴 뿐
마성에 맞서 승리한 것은 단지 한 사람이였어
그것이 아르티아야 메디크
마성에 빠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 논리가 상식을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거야
그녀는 비뚤어진 성격이긴 해도, 인간을 사랑해, 어때?"
"그렇지 않아, 인간은 강해
그리고 나는 체념하고 죽은 것이 아니야, 바로누스
다음 세대에 맡기기 위해 잠깐 목을 벤 거지"
물론 메디크도 절망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고
때때로 후회할 만한 일이 있긴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서는 것은 그가 인간의 왕이자
인간을 불타오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자였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마라, 바로누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어
반드시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사는 날이 올 것이야!"
"그것은 강자의 이치야, 메디크
오늘 굶어죽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숭고한 이상이 아니라
그저 당장 눈 앞에 오는 값싼 행복이야
네가 죽고 나서, 내가 천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해?
인류를 그냥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박정한 인간이고, 부도덕하며
다른 사람의 목숨도 돌멩이처럼 걷어찰 수 있고, 사실 그렇게 했었어
하지만 너의 이념을 신망했던 내가 너가 죽고나서
바로 마성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바로누스의 눈동자에는 이제 빛이 없었다
시야는 그림자처럼 어둠에 물들어 있고
차가운 빛만이 눈동자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로누스가 진심으로 심취해 그 이상을 함께한 인간왕 메디크
그녀는 결코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메디크만은 진정한 선이라고 믿었다
그의 사후조차도 그 말과 사상을 바로누스는 버리지 않았다
비록 이치는 다르지만 부도덕하더라도
언젠가 당도하려고 마력을 높여 마수를 분해하고
인간국가의 붕괴를 바라보면서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천년이란 세월은 인간에겐 너무 긴 것
신념은 풍화되어 메디크의 목소리의 감촉조차 귀에서 사라져나갔다
치명적인 것은 인간을 위한 국가를 이룩했을 대영웅이
대마가 되어 인간의 지배로 방향을 튼 것이였다
인간왕 메디크든 대영웅 아르티아든
바로누스가 보기에 나중에 같은 인간이 나타나든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였다
지고한 영웅들, 그러나 그들도 아무소용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삼 희망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무리라며, 손을 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메디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희망은 있어, 바로 여기에 강한 인간이 태어났잖아!"
"이 녀석은 마성이야, 인간이라고는 부를 수 없지"
"아니야"
얼어붙은 대지를 짓밟으며 메디크는 일어섰다
눈동자는 역시 불타는 듯 뜨거웠고
죽은 자일 텐데도 생기가 넘친 듯, 메디크는 창을 치켜들었다
"그 녀석이 인간이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난 그것을 믿기로 했다"
메디크의 창이 바로누스의 살점을 튕기며, 굉음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