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643화 - 성녀의 신앙 -

개성공단 2021. 7. 30.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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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을 대라고 한다면
이 대륙에서는 두 개의 이름을 들 수 있다

대성교 주신으로서 통치와 행복을 관장하는 아르티우스

문장교 주신으로서 자유와 지혜를 관장하는 오우후르



그 밖에도 과거의 거인이나 정령
용을 믿는 파벌이나, 인간왕 메디크를 신봉 하는 자들도 있지만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우스건, 오우후르건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신이 아니였다

그들은 다만 힘을 갖고 마의 진수와 원전을 얻었을 뿐이였다
대마로서 신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는 하나
남들에 의해 지어낸 신에 불과했다

그럼 진정한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무엇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가



그 기원을 탐구했던 것이 분명 살레이니오였다고
문장교 성녀 마티아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그녀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손끝엔 감촉이 없었다
그저 눈을 부릅뜨면서 성녀와 신령의 이름을 사칭하는 존재를 볼 뿐...




"어머, 옥좌라고 의외로 호화롭지는 않았군요
뭐... 상관은 없답니다"





성녀 알류에노
황금의 머리카락을 누구보다도 빛내며
그녀는 옥좌 근처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만 본다면 가냘픈 소녀처럼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섬세한 손끝은 의복이나 꽃을 어루만질 수는 있어도
도저히 검을 쥘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눈빛도 싸우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온화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마티아와 여왕 필로스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문관과 호위들도 모두 같은 감정을 가졌다

아아... 나는 여기서 죽는 것인가...




알류에노에서 발하는 상상을 초월한 악의
마법에 익숙하지 않을지라도 피부로 느낄 정도의 마력의 파동
그녀는 반드시 뺨에 띄운 미소 그대로
아이가 벌레를 잡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애당초 옥좌까지 이르기까지는
천이 넘는 군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냈는가...?
그것은 답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성교 성녀 알류에노, 왕도에 오신걸 환영하오
하지만 이 옥좌에 오는 것은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되지 않소?"





여왕 필로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직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목소리에 위엄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왕통의 피라는 것일까?

알류에노는 꽃도 부끄러워 할 미소로 대답했다





"글쎄요, 옥좌는 원래 저의 것일 텐데요
되돌려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요?"


"그런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로군"





필로스와 알류에노의 문답에 주위 사람들이 겨우 정신을 차렸고
호위병들은 검과 창을 겨누며 알류에노를 에워싸듯 움직였다

그런 모습에 알류에노는 꼼짝도 하지 않고 필로스만 쳐다보았다




"당신은 루기스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물음이였다
하지만 그 가냘픈 목소리엔 묵직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필로스는 루기스의 이름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눈꼬리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원수이자
나를 옥좌에 앉힌 장본인이지
글쎄... 많은 것을 빌려준 빚쟁이 일지도 모르겠는걸"


"그런가요"





알류에노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황금빛 눈엔 도사린 감정엔 한 가지 강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성으로 변해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세련된 동작으로 소리를 냈다




"당신이 바로 루기스에게 싸움을 강요하고 있는 장본인이군요"





오싹한 목소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
필로스는 발을 움츠러뜨렸고
옥좌에서 일어난 모습 그대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필로스를 지키라고 나선 것은 호위병과 마티아
마티아는 스스로 싸울 듯한 의지를 보이며
다부지게 두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성교와 문장교의 성녀가 
여기서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과 모습을 인식했다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투로 말이다




"당신이 문장교의 성녀...
당신도 루기스를 전쟁터를 몰아넣은 장본인이군....
당신들 같은 사람에게 루기스가 이용당하고 있었다니"


"대성교의 성녀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신앙을 위해 손을 잡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가 우리 곁에 있는 것은, 당신의 신앙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서로 신앙과 감정을 상충하고 있다는 점만 본다면
전혀 차이가 없었다

압도당할 것 같은 악의에 마티아는 입술을 꼭 다문 채 맞섰다
문장교의 성녀라는 직함은, 단지 모셔지는 것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였다
직접 신자들을 거느리고 박해의 악의를 삼키며 아로새긴 것이였다

그런 마티아였기에 알류에노의 볼에 맺힌 미소가 변질됐음을 깨달았다
이제까지의 미소였지만, 어느 쪽인가 하면 그것은 순진한 미소에 가까웠다





"내 신앙 말이야?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루기스는 나를 사랑하거든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굳건한 감정이고
무엇보다 뭘 믿거나 한다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루기스를 믿고, 루기스도 나를 믿는 거야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루기스 뿐이지..."





무서울 정도로 순진한 눈동자였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의심이 가지 않는 음색이었다
마티아는 이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광신
미쳐버릴 정도로 숭배하는 것

그래서, 라고 알류에노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야... 그러니까 상관없어"


"...당신이 신앙하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니라 그 남자라는 것입니까?"




마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무나도 이상한 알류에노노의 광신에 압도된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알류에노는 마티아의 말조차 비웃듯 말했다





"그래, 신을 믿는 일에 관심은 없어
왜냐면 내가 배고픔에 울부짖어도, 고통에 눈물을 흘려도
폭력에 의해 얻어맞아도... 신은 도와주지 않았어... 지켜보지도 않았지

    ....그러니까, 세상이 어찌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루기스만은 아니었다고 알류에노는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신과 구원해준 소꿉친구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지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알류에노의 말도, 모습도
모든 것이 곧바로 루기스에 대한 생각에 불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티아는 알류에노의 말에
모종의 경악과 동요를 느끼고 있었다

전쟁의 원흉이라고도, 요인이라고도 불리는 성녀 알류에노
지금 이때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마력과 악의를 현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신념과 신앙
그리고 의지는 보다 초연한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는데...

하지만 아니였다
이것은, 단지 구원받지 못한 소녀가
자기를 구원해 준 그에게 사랑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수한 생각이 뒤틀려 그녀는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였다



마티아는 적이면서도 알류에노의 기구한 운명을 저주했다
만약 아무 일도 없이, 그저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녀가 전쟁터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티아는 그녀의 일그러진 생애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서로 그런 운명만 없었다면....
한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적으로 만난 이상
마티아는 알류에노를 배척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호위병을 한 걸음 앞으로 내밀었고
할 수 있는 일은 시간벌기

레우나 루기스, 혹은 카리아 등이
이곳에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충분히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티아의 머뭇거림과 사고를 알 필요 없다는 듯이
알류에노는 자신의 말을 계속해나갔다




"하지만 신에게도 두 가지 감사한 것이 있지
하나는 루기스를 만나게 해준 것, 그리고..."





순간 마티아의 시야가 반전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을 당한 건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시야가 매우 흔들릴 뿐이였다
심한 구토감과 복부의 격통도 몇 초 뒤에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알류에노의 말이 들렸으니...





"나에게 신비한 힘을 준 것"





성녀 마티아를 포함한 전원이 뭔가에 침식되어 있었다
안쪽으로부터 마력이, 썩어 없어져 가는 것 같은 기묘한 감촉
여왕도 균형을 이기지 못해, 엎드려 버렸다

그 중에 알류에노만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잘 자, 그리고 잘 있어"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듯 알류에노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발끝이 또 한 걸음 옥좌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옥좌가 자신에게 힘을 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강하게 알고 있었다
아르티아가 이렇게 말했다
그 옥좌는 자신의 것이자, 네 것이라고

이제 루기스를 구할 수 있어




또 한 걸음, 알류에노가 옥좌에 다가서는 순간... 작은 소리가 났다
그것은 날카로운 무언가가 공간을 날카롭게 배고 지나가는 것이였다

알류에노는 자신의 시야에서 은빛의 반짝임을 보았다


대성교의 성녀는

신에 대한 믿음 따위는 없었고

오직 루기스의 사랑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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