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6장 성녀 마티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08화 - 황금의 열량 -

개성공단 2020. 3. 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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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서로 맞붙는 소리가 들렸다.

 

검과 검이 접합하면서,

그 철의 소리를 울리는 소리가 몇번이고 들렸다.

갈라이스트 투기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곳은 서로의 호각을 칭찬하거나

칼이 겹치는 접전을 즐기는 곳이 아니였다.

 

어느 쪽의 피가 허공을 물들이는 가

언제 투기장의 모래가 붉게 물들이는 가

그것만을 기대하는 곳이였다.

 

그 추악한 함성 속에서

황금색의 머리가 출렁였다.

 

상대의 거구로부터 수없이 내리쳐지는

대검을 받아서 쳐내버렸다.

 

거구의 상대는 당황하며 겁에 질린듯

안정을 취하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려하지만

 

금발의 검사는 일말의 시간도 허용하지 않은 채,

그 거구의 상대에게 일격을 날렸다.

 

'캬아앙'

 

바람을 어루만지는 소리였다

단지 칼이 공기 사이를 통과한 것 같은 소리...

이 한번의 일격만으로

격렬했던 공방전은 깨끗이 결말을 맞았다.

 

대검을 휘둘렀던 거구한 체구의 남자의 목덜미에서

피가 몸에서 도망치듯이 솟구쳤다.

 

"승자, 헤르트 스탠리!"

 

투기장이 환호성으로 넘쳐 흘렸다

 

 

 

 

*

 

 

 

 

"헤르트, 네놈은 그 몸을 돌볼 줄 모르는구나

너의 취미는 잘 알겠지만, 외삼촌은 반대다"

 

갈라이스트 왕국의 투기장, 그 대기실에

버킹엄 스탠리의 모습이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괴짜라는 말은 들었어도

설마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삼촌, 이것은 일탈적인 행위가 아니에요

게다가 좋은 훈련이 되기도 한다고요"

 

그러면서 헤르트는 가볍게 볼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 모습에 버킹엄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의 함락으로

스탠리라는 가문은 의지할 곳을 잃었다.

 

가문 뿐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행방이 묘현했고,

차기 당주인 자신은 왼쪽 눈을 다쳐서,

한때는 의식 조차 아예 잃고 있었다.

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후에는, 

투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검을 휘두르다니...

누구든 작은 아버지의 속마음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였다.

 

현재 이렇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외삼촌의 덕분이였다.

그는 삼촌의 마음에 보답하여 성실한 생활을 해야 했으나

 

헤르트는 자신을 뒤흔드는 오열에 가까운 감정을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투기장에서 검을 휘둘러서라도,

감정을 어떻게든 묶어나야 했다.

 

헤르트와 버킹엄, 어느 쪽도 입을 열지 않는 

조금의 침묵이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버킹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침착함은 과거의 농담같은 어조를 잃게 했고,

당주대행으로서의 위엄이 걸맞는 듯 했다.

 

"네 놈에게는 전해 둘 것이 있다.

마침내 우리가 고향을 더럽힌 놈들의

목을 비틀 때가 왓음을 말이다.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투기의 열기가 식고, 그저 벽돌만이 가득한

이 어둑어둑한 투기장에서

버킹엄 혼자 열기를 내뿜으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 기쁘기 짝이 없구나, 내 조카야!!"

 

"숙부님, 착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죄송하지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습니다."

 

헤르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버킹엄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릅뜨며, 헤르트를 응시했다.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런 일로 죽지 않을 것을"

 

그를 죽인다? 개소리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가 그런 일로 죽을리가 없다.

마녀로 불리는 여자면 몰라도...

 

밖에 나가기 위해, 외투를 어깨에 걸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밖은 상당히 추웠지만, 몸 속의 피는

그 추위에 반발하듯이 상당히 뜨거웠다.

 

이 열기는 그날 밤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었다.

 

분명 오늘 투기장에서 싸운 상대는,

그보다 날카롭게 검을 다루어서, 그보다 힘있게,

그보다도 싸움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가 더 강했다.

 

이것은 나의 손과 나의 왼쪽 눈이

기억하는 명백한 사실이였다.

 

"헤르트... 네 말의 의미를 모르겠구나

마치, 그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비는 것 같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니?"

 

버킹엄은 신기한 듯 입술을 흔들었다

헤르트의 말하는 어조가 소망은 커녕,

확신적인 울림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헤르트가 어깨를 움츠리며

오른쪽 눈을 반짝인 채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할까...

그는 틀림없이 적입니다.... 네, 맞습니다."

 

맞다. 갈루아마리아 공방전애서

그는 분명히 자신의 적이라고 말했고,

다른 세계의 자신과 만난듯, 그런 이상한 말을 했다.

 

과연 그게 사실 일까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는 그와 어떤 사이였을까

목을 노리는 적이였을까, 아니면 어깨를 맞대는 아군이였을까

그것 만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소망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루기스라는 남자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과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자신을 따라잡으려는 사람또한 없었다

 

하지만, 루기스라는 남자는 달랐다

자신을 따라잡기 위해서 

검을 거듭하며,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던 존재

 

분명 나는 그를 친구로 보고 있었던 아닐까

가슴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피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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