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6장 성녀 마티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23화 - 나의 복음 -

개성공단 2020. 3. 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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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두를 이끄는 왕관이라면,

루기스 당신은 검과도 같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뜸한 베르페인의 대로,

앞으로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퇴근하는 용병들이 쏟아질 터였다.

 

약간의 침묵이 계속되었고

마티아는 어딘가 당황이라도 한 듯한

루기스를 앞에 두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하고는 눈길을 돌렸다

 

이런 말을 하면 

루기스가 동요를 드러내고

말문이 막힐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말이기도 했다

 

마티아가 보기에

루기스는 무언가에 빠져있었다

 

안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기스의 본질을 감지했듯이

마티아 또한 그의 본질에 가까운

많은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루기스는 병적일 정도로 집요하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집착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빠진 부분을 보충시켜주는 것이였다

 

"왕관과 검은 서로 본질은 다르나

각자 한 쪽 씩 권력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 쪽이 무너져버린다면,

다른 쪽도 붕괴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함께 있든지, 아니면 다른 길로 가던지

이 두가지 방법 외엔 없다.

마티아는 몸을 루기스에게 접근하는 동시에

입술을 흔들며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마티아는 뭔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까지 루기스에게

지독한 말투로 독설을 퍼부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달콤한 말로

남을 위로하는 격이라니...

 

또한 성녀는 지금 성녀라는 가면을 벗고

마음이 가는대로, 말을 마구잡이로 뱉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였기에

마티아의 뺨이 석양에 비친듯 물들어갔다

 

"아아.,.. 하지만, 이렇게 와서는 안돼

그리고, 난 혼자가 제일 안전할거야"

 

루기스는 괴로운 나머지

쑥쓰러운 듯한 변명을 내뱉었다

 

"아니요, 당신은 혼자 있는게 제일 위험합니다

갈루아마리아에서도, 가자리아에서도

험한 꼴을 당할뻔 한 것... 잊으셨습니까?"

 

갈루아마리아의 결투,

가자리아의 무모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였다.

어쨌든 루기스의 행동은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

안전과는 거리가 먼 것이였다.

 

"그런가요? 험한 꼴이라...

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지 않습니까"

 

그것을 무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당신뿐이야

...라고 성녀는 말하려다가 입을 굳게 닫았다

무사하다는 것은 목숨이 무사할 뿐

언제나 만신창이로 돌아온 주제에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다

 

루기스가 혼자 바보짓을 하고

상처입고, 피투성이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장교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 상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죽어줬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그러면 나중에 영웅화도 신격화도 해주고

그 유골까지 이용해 먹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였다

 

그러나 지금의 마티아는 달랐다

 

"당신은 너무 위험해요

분명 이 말... 다른 사람에게도 들었지 않았나요!?"

 

마티아는 루기스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충고는 잘 들었어, 말도 고맙기 짝이 없군

나 한테는 아까울 정도야"

 

그렇게 루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어색한 듯이 마티아를 떼어냈다

 

저 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둔감한걸까

왜 자신을 밑바닥인 사람으로 취급하는 걸까

카리아, 피에르트, 그리고 엘디스 까지

기가 막힐 정도로 그를 신임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까 그 말도 그렇다

'나 한테는 아깝다'

 

마티아는 지금 문답을 할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능한 한 베르페인 탈출 준비를 갖춰야 했다.

하지만...

 

"루기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 두 손을 얹고

정면을 향하게 했다.

그러고보니, 언제나 비틀려 있던 루기스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정작 말을 꺼내면 마티아는

부끄러워서 목이 메일 지경이였지만,

억지로 혀를 굴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갈루아마리아에서 제 목숨을 구했어요"

 

그것은 확고한 사실이였다.

그 일에 감사도 원망도 했었으며,

아직도 거기에 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였다.

 

"그것은 문장교 자체가 

당신에게 구원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에 서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나의 복음, 그 자체 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였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이제와서 비하하는 듯한 말을 반복하는 것은

겸허를 넘어서 무례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루기스, 당신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천천히 타일르듯이 그렇게 말을 이었다

 

성녀에게 맞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성녀라고 불리는 몸이라면

이런 때만큼 멋지게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영웅입니다.

루기스, 당신도 슬슬 자신에 자부심을 가지면 어떨까요?"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루기스는 침묵 속에서

마티아에게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색깔은

당황하지도 않고, 동요한것도 아닌

뭔가 다른 색깔을 품고 있었다.

 

해질녘의 가도를 마차가 발굽을 울리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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