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3화 - 악덕의 주인 -

개성공단 2020. 4. 1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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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루아마리아 보루 안에 존재하는 훈련장에는

활쏘기 표적으로 만들어진 대충 모아 놓은 건초가 여러 다발로 묶여 있었고

병사에 발에 짓눌려 반짝 말라버린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낮이 조금 넘은 이 자리엔 누구 하나 접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을 드나드는 병사들은 기꺼이 훈련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밥을 찾아서 휘청거리며 돌아다니는 법 이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곳은, 천천히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말을 주고 받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고용주... 동료라는게 저 은발 맞지?"

 

그 소리를 내뱉은 입술은 참으로 복잡하게 모양을 일그러뜨리며

손가락을 감싼 채,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브루더의 모습에,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한 순간 공백을 두면서도,

나는 긍정을 표하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브루더가 말하는 은발, 카리아는 나의 동료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엿고

그 카리아가 브루더의 여동생, 베스타리누의 어깨를 가른 것도 사실이였다

그래서 거기에 이상한 감정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였기에

지금 브루더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브루더는 카리아에게 원한에 가까운 것을 품는 동시에

나에 대해선 의리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지라,

그 표정은 복잡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사람이 칼로 베는 것은 전쟁터의 법칙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도 잇지만

 

그런 약삭빠른 핑계로 밀어불일 수 있는 만큼,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그리 점잖지 않은 것이였다

지금 내 앞에서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잇는 것은

내 옛날 친구인 브루더이다.

그런 녀석을 상대로 나는 바보같은 핑계를 댈 상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물론 눈 앞에 존재하는 브루더가 

지난 세계에서 나의 손을 잡아주던 친구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그 때의 브루더는 나를 고용주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표정도 어딘가 부서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브루더에게 도리가 어쩌고, 이치가 어쩌고

그런 말을 던질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브루더는 아랫 입술에 검지를 놓으며, 갈색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래... 뭐... 아가씨...아니, 뭐 성녀님에게 대충 듣긴 했어"

 

아마도 어느 정도의 사정이란 것을 마티아에게 들은 것인가

브루더는 그래서 별 반응 없이 내 말을 받아들인 것이군

하지만 얼굴에는 무엇인가 고민하고 잇는 거 같아

 

나는 옆에 있는 건초 위에 앉아서, 브루더의 말을 기다렸다

 

"......예를 들어서, 그냥 예를 들어보는 거야

내가 만약 저 은발녀에게 바늘을 던진다면, 너는 말릴거야?"

 

아무렇게나 내팽기친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브루더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 만큼은 어디인지 멀리 내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품에서 씹는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아니, 말리지 않아. 그것밖에 수단이 없다고 한다면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취할 수 없다고, 옛날 친구에게 들었었어"

 

씹는 담배를 치아 위에 얹은 채,

입술을 치켜올려서 뺨을 일그려뜨렸다

 

브루더가 마음속에서 감정이 울리는 대로 걷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그 다리를 멈출 수 자격이 있을까? 있을리가 없다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감정의 목을 조르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은

 또한 이제까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이외의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까지는

확실히 할 순 없지만...

 

브루더는 내 말을 듣고 의외인 듯 어깨를 움츠리며

그래, 하고 중얼거리더니 나와 같이 건초더미에 앉았다

그리고 믄득 이쪽으로 손을 뻗었다

 

"담배, 나도 담배 하나 줄래?'

 

그것만은 거절하고 싶군, 애초에 너의 분야는 담배가 아니라 술일 텐데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야

 

하지만 브루더는 결코 손을 당기려고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내 쪽으로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속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씹는 담배 하나를 건내 주었다

 

"술은 어쩌고? 네가 잘하는 것은 그 쪽 아니야?"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씹는 담배를 물려고 하는 브루더를 보면서

눈동자를 일그러뜨린 채, 나는 말을 건넸다

 

예전만 해도 브루더는 담배에 관심을 보이려 하지 않았고,

이런 대화를 할 때도, 술병을 늘 끼고 다니는 인간이였다

 

브루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입술을 열었다

 

"그만뒀어, 이젠 마실 이유도 없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것도 좀 시도해 보려고"

 

그러면서 브루더는 볼을 느슨하게 풀며 

자신의 입술에 물린 씹는 담배를 가리켰다

그래, 네 말은 알겠지만, 적어도 담배는 피지 말라고

 

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봐서인지, 브루더는 입을 열며 웃음을 지었다

그 때의 얼굴이, 예전의 브루더와 닮아서인지

나 또한 덩달아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브루더가 볼을 치켜올린 채, 말을 이어나갔다

 

"야, 고용주, 이것도 예를 들어서 하는 말이지만,

베스의 치료가 끝난다면 시골에 틀여박혀 살 생각이야"

 

브루더는 묘하게 공손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브루더가 용병 생활을 추구했던 것은, 

여동생 베스타리누를 구하기 위함이였기 때문에

현재 브루더는 도시로 나와 용병을 할 이유가 없고,

차라리 시골에서 베스타리누와 단란한 생활을 하는게 더 행복할 것이다.

 

왠지 그 광경이 눈꺼풀 뒤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브루더가 하는 말에 참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재촉했다

씹는 담배가 풍기는 독특한 냄새가 콧구멍을 뚫고 있었다

 

"고용주, 너도 같이 살지 않을래? 분명 나름대로 즐거울거야"

 

그 말에 입술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가락 끝으로 씹는 담배를 끼워 넣으면서

시선을 가늘게 하니, 눈꺼풀 속에 떠오른 정경이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어느 마차도 다니지 않는 시골에 틀어박혀서

브루더와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베스타리누는 고지식한 성격을 가진 것 같으니

그런 우리를 보고 야단칠 게 틀림없어

 

그것을 문득 생각하는 것만으로, 좋은 날이 될 것은 틀림이 없어 보였다

 

"네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갈 곳이 없게 될 거야"

 

브루더는 그 말을 마치면서, 

둥글게 뭉친 양피지를 품에서 꺼내더니

그대로 그것을 이쪽으로 던졌다.

 

양피지에는 엄청난 현상금 액수와

큰 글씨로 써진 문장이 장식되어 있었다

 

'악덕의 주인 루기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어라'

 

이거 너무 심한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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