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7화 - 떠오르는 하나의 싹 -

개성공단 2020. 4. 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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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기스님, 당신은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르그도 안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나는 가볍게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그 말을 들었다

동시에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머리속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네까짓 것이 회의에 나와 봤자, 아무런 소득이 없을 테니

이대로 근신을 계속하라는 무슨 신랄할 말씀인건가?

아니, 확실히 내게 일부러 들린 곳에서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지만 안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원래 그녀는 협조를 제일로 해서, 자리를 어질럽히지 않는 일에 주력하는,

말하자면 조정역 같은 존재였다.

 

나는 입술을 천천히 열면서, 말을 더듬으며 목을 열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그래?

따로 회의에 나가봤자, 별 의미가 없단 말이야?"

 

가만히 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의를 물었다

그녀의 몸집이 작았기에 꼭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 대답에 그녀는 순간 우물거리며, 

말을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듯한, 

전한다고 해도 뭐라 전해야 항지 모르는 듯한 표정이였다

 

처음이군,

남달리 총명하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안이

그런 표정을 짓다니 말야

나는 의자에 앉아, 어깨를 움츠리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

 

 

 

 

"......루기스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아직도 문장교도에서 보면, 객원, 이른바 외부인인 셈입니다"

 

안은 스스로 혀가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말을 하는 순간, 루기스의 반응이 두려워서 

어딘가가 조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힐끗 루기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과연, 이라는 듯이 턱 근처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아, 싫어, 내가 왜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이빨은 덜덜 떨리며, 등줄기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회의는 문장교도로서의 방침을 정하는 것으로

정보는 알려드리겠습니다만, 참가하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안은 외부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입술을 다물었다

다시 루기스의 반응을 지켜보는 동안

안의 내장은 냉기를 머금은 듯, 딱딱하게 굳어선 돌 처럼 되어버렸다

 

일의 발단은, 엘프의 여왕, 핀 엘디스에게 마법을 이용해서

문장교도의 회의에 참가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였다.

우리는 대성교의 침공에 협력을 해달라고 간청했고,

핀 엘디스는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입술을 움직였다

 

"물론 문제는 없어요, 우린 동맹국이니까 기꺼이 협조를 해드리죠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슬슬 맡기고 잇는 나의 기사 루기스를 돌려주시면 안될까요?"

 

그 순간, 안은 자신도 모르게 뺨이 굳어 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그렇다

지금의 용사, 루기스의 입장은 매우 애매하고 불명료하다

문장교에서 보면 루기스는 아직 객원에 불과했다

신도도 아닌, 그저 객원... 잘 말하면, 협력자라는 입지...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 함락의 계기를 만들고,

이번은 용병도시 베르페인이라는 거인의 발밑을 무너뜨렸다

그 공적을 가지고도, 그는 정식적인 지위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안이 그에게 은밀히 압력을 넣어서, 적어도 객장...

될 수 있다면 문장 기사로서의 칭호를 얻어 주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 남자에게 아무리 뭐라고 꼬셔도, 마치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것 처럼

루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겐 그럴 가치가 없다고 단연하며

한사코 부인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그가 지금 정식으로 얻고 있는 자리라고는

핀 엘디스의 직속 기사라고 하는 것 뿐이였다.

물론 가자리아와도 정식 의식 또는 계약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가자리아 내전 때 구두로 약정을 지었다고 들었다

 

젠장, 그건 안돼, 

지금대로라면 핀 엘디스의 말대로 루기스의 정식 소유권은

가자리아에게 돌아가고 말거야,

그러나 이제 그는 문장교라는 조직에서

큰 상징이 되고 있어

 

단지 문장교 확대에서 활약했다는 것 만이 아니라,

루기스가 상실되면, 곧 카리아 버드닉, 피에르트 볼고그라드의

상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이건 안이 믿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 신봉하는 성녀 마티아조차

루기스에 대해 일종의 특별한 감정 같은 것을

겨누고 있었음에 틀림 없었다

 

젠장, 이건 좋지 않은 사태야

 

지금 소집된 회의엔 동맹자로 핀 엘디스도 참석할 것이다

거기에 루기스를 아무런 준비없이 참여시켜 버린다면,

당연히 핀 엘디스는 그를 요구할 것이고,

자신으로서는 그것만은 막아야 할 터였다.

 

나는 문장교도, 문장교의 일을 제일로,

그리고 성녀 마티아를 그것과 동렬로 생각해 왔다

지금도, 이 후에도, 그것을 바꿀 생각은 없기에

문장교를 위해, 성녀 마티아를 위해, 어떻게든 그를 붙잡을 테야

 

순간의 침묵 뒤에, 안은 입술을 억지로 움직이며 말을 했다.

 

"어떻습니까, 루기스님. 괜찮다면 이번 기회에

성녀 마티아로부터 세례를 받을 수 있다면..."

 

"아냐, 그런건 하지 말라고

더욱이, 나는 문장교의 신자도 아니잖아

그런데 세례라니... 신이라면 분명 분노하고 말거야"

 

루기스는 언제나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단언하며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 새끼가 진짜

 

안은 자신의 눈이 뭔가 뭉쳐있음을 느꼈다.

루기스의 말을 듣고, 뺨, 입술, 손끝이 마치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아아, 내가 이제까지 당신 행실의 뒤치다꺼리를 위해서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얼마나 스스로의 정신과 몸을 등에 걸치고 다듬 었는지 알기나 하는가

아직도 내 눈 밑에 난 거뭇한 것을

화장으로 가리질 못할 정도로, 이렇게 당신을 위해 일 하는데

 

당신 멋대로 뛰쳐가서, 공... 그래 공을 세우긴 했다만

하지만, 그 배후에서 진력한 것은 나 잖아

봉사를 한 것은 나 아닌가?

 

그런데도 이 남자는 전혀 나를 보지 않았다

조금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면 안돼나?

조금쯤 이제까지 고마웠다느니, 칭찬좀 하면 안되겠냐고

 

알고 있어, 알고말고, 이것이 추악한 감정이고, 

그저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의 가슴 속에는 수치와 자기혐오가 서로 물고 늘어지며

빙글빙글 돌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동자 끝에 눈물을 머금으면서,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하나부터 모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 들으시고 판단하십시오"

 

어떻게든 꼴불결인 듯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안은 그렇게 말했다.

협상자로서의 안이 이 정도의 수모를 당한 것은 처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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