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2장 피에르트 볼고그라드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6화 용자의 각성과 성녀의 물음

개성공단 2020. 2. 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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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으로 느껴지는 냄새는 물건이 탄 냄새 였다.

나도 모르게 코로 숨을 들이마시니, 폐가 묘하게 아팠다.

목을 여러번 울려보지만, 신체의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가래가 조금 올라왔을 뿐이였다.

 

"그럼 용사여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의 신이 우리의 신과 같은지,

아니면 다른 가면을 쓴 거짓된 신인지"

 

호흡조차 아직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청량함을 유지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러 퍼졌다.

 

잠깐, 잠깐만 나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잠이라도 하룻밤만 쭉 자면 좀 나아질텐데

그런 푸념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려서, 눈 앞의 인물을 올려다 봤다

 

그 목소리를 한 사람은 주변이 불씨가 아직 꺼지지도 않은 곳애서

일절 그 표정을 바꾸지 않는 대담함을 보이며

홀로 주위의 공기를 변질시키는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곳에서 성녀로 불리는 자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이는 빛을 내고 있었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머리를 보면, 상급층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르는 것이였다.

동시에 그 몸짓이나 근엄한 분위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할 수 없는 큰일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바라게 하는 것이였다.

 

과연 성녀로 추앙받을 만 했다.

사람을 이끌만한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그 카리스마라고 부르는 것인가?

엉겁결에 코를 벌렁 거렸다.

 

"자..잠깐만 나 지금 살아 있는거 맞아?

당신 저승사자면서 나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야?"

 

품애서 담배를 꺼내려고 가슴팍에 손이 갔지만,

담배는 이미 옷과 함께 불타버린 후 였다.

 

에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가늘게 뜨었다.

아마 그녀의 질문에 즉답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상대를 성녀 혼자가 아니라, 이쪽에 살기를 띤 신자만 수십명이다.

모두가 우리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눈은 독수리에 비유할 만 했다.

반면, 이 쪽에 있는 것은 카리아와 헤르트 스탠리 그리고 기절해 있는 피에르트 뿐...

 

곤혹 또는 고뇌의 깊은 한숨을 내쉬자, 폐가 따갑게 아팠다.

 

나는 분명 죽었어야 했는데, 왜 살아있는 것일까?

신이시여, 존재한다면 대답 좀 해주세요

 

 

 

*

 

 

 

과연 나는 천국으로 갈까 지옥으로 갈까 고민 하던 찰나에,

내 눈동자에 빛이 비쳤다. 아, 여긴 천국인가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시야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멋진 은발과 장검을 들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카리아 였다.

 

뭐지? 왜 이 개년이 있는거지?

여기서 죽는 것은 더해봐야 피에르트 정도 일건데?

원래 저승사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비치는 건가?

 

"언제까지 누워 있을 것인가? 

네놈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흉내라도 낼 셈인가?"

 

뺨을 짖궃게 들어올리면서 입맞춤이라도 해줄까 하는 

카리아의 모습에 나는 이렇게 납득했다.

 

저것은 카리아 그 자체다

지옥의 차사는 아예 사람 자체를 본따서 나오게 하는 것인가

차라리 그러면 알류에노가 나와 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눈앞의 카리아가 모방이 아니라 진짜라고 한다면?

나는 살아서, 내 몸으로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된다.

 

어라? 난 왜 살아있는 것일까?

분명 난 내 몸에 불을 질렀고, 몸속의 장기까지 다 타버렸는데..

보통 인간이라면, 그 결과는 죽음 뿐 이였을 것이다.

 

멍하니 눈을 뜨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뭐 감사의 뜻이라면, 저 놈에게 말해 두거라, 

네 놈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저 놈의 공이다. 그리고 나의 보검도"

 

어딘가 힘겨운 목소리를 내면서 카리아가 가리킨 끝에는

헤르트 스탠리에게 간호되어 바닥에 누워있는 피에르트의 모습이 보였다

 

피에르트의 마법을 통한 회복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가정한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저 여자는 영락없는 천재가 맞을 것이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듯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내 짐작이 맞다면

화재 현장에서 그 능력을 발휘 했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나를 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세계에서는 피에르트는 나를 길가의 돌 같은 취급을 했었는데ㅡ

이 시대의 그녀에겐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었을 지도...?

 

'탁, 탁, 탁'

 

방 전체에 울려 펴지는 발소리가 이쪽으로 가까워 지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명의 발자국 이였다.

 

이 쪽에는 전투 불능 하나, 그리고 나 또한 깨어나지 얼마 안되서 인지

몸에 후유증이 남아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남아있는 것은 카리아와 헤르트 스탠리 이 둘 뿐,

그 마저도 싸움이 계속 될 경우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둔한 속도로 생각하는 동안

다가오는 발소리의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한 여자를 비롯한 무장한 십여명의 병사였다

 

"그 용기에 칭찬을 해드리죠.

지자와 용자는 존중해야 하며, 그 의리를 본받아 저도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겠어요.

 

성녀라고 불리는 그 여자는 조금 전 예배당에서 들었던 노성에 가까운 소리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나의 몸은 그 말투에 반사적으로 뼛 속까지 차가워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소름이였다,

나에게 공손한 말이라는 것은 배짱이 낀 사람만이 쓰는 것이였다.

왕궁에서 귀족들이 악의로 찬 말을 반어법으로 돌리듯이,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에게 아첨하고 그 몫을 노리듯이 말이다.

 

이 여자는 뭔가 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호위라고는 너무 과분한

십수 명의 병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이런 화재 현장에서 인사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저는 성녀 마티아 라고 합니다.

성녀라고 불릴 자격이 제게 있는 건지는 모르갰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확실히 맑음을 겸비하고 사람을 매료시키는 듯 하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청렴함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무서움을 느꼈다.

이 목소리로 얼마나 많은 구교도 신자를 끌여 들였을까

 

"저희도 영광입니다. 그럼 성녀님하고 마주하고

이번 소동도 마무리 지은 채, 저희도 갈길 가고 싶습니다만"

 

농담조로 더듬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순간 성녀의 눈 가장자리가 움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처음부터 이 가슴속에 분노란 없었습니다.

문장교도에 있어서 모든 생명과 물품은 신에게 돌려주는 것 이기에

이미 타버린 물품도 모두 신에게 바쳐질 것입니다.

즉, 없어진다는 자체가 모두 신의 뜻 인 겁니다.

그걸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겠습니까?"

 

카리아가 말없이 맞장구치듯 턱을 끄덕였지만,

아마 그녀와 헤르트도 알아채고 있었을 것이다.

 

성녀의 저 말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성녀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고,

손발의 떨림은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 였고,

아마 그녀의 속내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위기는 아지 가시지 않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저희는 당신들의 목적조차 듣지 않았었군요.

그럼 용사여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신은 우리와 신과 같습니까? 아니면 거짓으로 점철된 신이신지요?"

 

아무런 악의도, 선의도 없는 것처럼.

단지 당연한 것을 묻는 듯한 말투로, 성녀 마티아는 그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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