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53화 - 라르그도 안의 영역 -
베스타리누 게르아가 말발굽을 울리면서 입을 열었다
과연, 유창한 교육을 받은 자의 말투였다
아주는 아니지만, 용병의 대장 같은 걸 할 것 같은
그녀의 누나인 브루더와는 크게 달랐다
베르페인 영주 딸로 자라서, 강철공주로 불릴 만 하군
"베르페인의 용병은 싼 물건은 아니지만
그만한 물건 값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어떻하시겠습니까?"
베스타리누는 맑은 눈을 뜨고 내게 말했다
그녀의 뺨에 머금고 있는 미소는 부드러웠다
이번에도 그녀라고 하는 인간은
견고한, 말하자면 딱딱하다는 인간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그녀로서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브루더와의 화해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당연히 답은 하나 밖에 없다
나는 입술을 물결치며, 볼을 들어올리듯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군마를 팔아서라도, 값을 치루도록 하지
근데 브루더는 안보이내, 어디갔어?"
나는 팔을 벌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물었다
내가 아는 브루더는, 전쟁터를 앞에 두고
마차에 틀어박혀 있을 정도로, 얌전한 인물은 아니였다만
오히려, 목숨을 내던지는 그런 과감한 인간이였다
그 또한 베스타리누와의 화해로 변해버린 것일까
어떻게 보면 좋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다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나에게 떠오른 것 같았다
내 말에 베스타리누는 손끝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긴 여행으로 고생하셨는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휴식이라... 브루더가 술이나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고 잇는 것일까
하지만 어쨌든, 믿음직한 호위가 붙은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다시 도시병들을 바라보고, 성벽 위에 있는 로조를 향해 눈을 돌렸다
"자, 로조여,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정말 쳐들어 올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도시병의 발밑을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베스타리누가 쏜 손도끼, 그것에 의해 부서진 두개골의 조각에
놈들은 모두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되면 이젠 틀린 것이다
전쟁터란 놈은 한 걸음만 물러서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니
물론 전술적 후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상대를 유인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는 수단 같은거 말이다
하지만 적의 공격에, 겁에 질려, 아찔한 듯이 뒤로 물러서 버렸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정신 따위는 어이없이 산산조각이 난다
설령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잇었다고 해도
과감함 따위는 이미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싸우지 못한다
로조는 순간 공기를 마시며 말했다
"......좋아, 도망가려면 도망가거라,
사교도 제군, 하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진 말거라"
정말 주술을 뱉는 것 같은 말이였다
멀리있어서 볼 수는 없지만
그의 눈은 타는 듯이 빛나고 있음에 틀립없겟지
나는 곁의 라르그도 안에게, 눈을 움직여 시선을 주었다
정말 이 결말도 상관없냐고 묻는 듯이
안은 나의 시선에 고개를 끄더이며 입을 열었다
그 입술의 움직임은 묘하게 매끄러웠고
아마도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말을 더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로조 님, 필로스 트레이트 님에게 전언을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주변의 누구나가 머쓱해졌다
필로스 트레이트는 문장교와 동맹을 맺은 대가로
시민들에게 돌맹이를 맞게 된 처지였다
그렇기에 전언이나 아무런 용무를 이루긴 커녕
필로스 트레이트에게 전해지는 것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안은 입을 열었다
그 옆모습은 이상하게도 열이 가득차 보였다
"이번 필로스 시민에 의한 적대행동에 대해
문장교는 주모자인 로조의 목을 넘겨
다시 필로스 트레이트 님이 필로스의 통치자로 복벽 시킨다면
이번 일은 없던 것이라고 만들 수 있습니다"
안은 주위 일대에 울려 퍼질 만큼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그런가, 그러고보니 안이라는 소녀는
성녀 마티아의 측근으로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성질이 항상 선량하다는 것은 없을 거야
오히려 뒤틀린 쪽이 훨씬 정상이란 거겠지
즉 안은 로조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닌
주위의 시민 또는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법 만한
모든 인간을 향해 말하고 있는거 같았다
로조의 신병을 순순히 넘겨라
그리고 필로스 트레이트를 복권시켜라
그렇게 한다면, 너희들의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성질이 참 고약하군
늘 웃음을 얼굴에 떠올리고는 있었지만,
하는 짓 만큼은 교활하다...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건가?
아무래도 안은 자신의 궁기를 망쳐놓은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안의 흔들거리는 눈에는
걱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창자가 끓고, 머리속은 분노의 열로 끓었다
물이라는 물이, 몸에서 손실될 것 같은 기분을
라르그도 안은 몸 속 깊숙이서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감정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이것은
단지 광적이라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걱정이였다
그것은 자신을 배반한 로조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고,
그의 어리석음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한심함에 대한 자책이기도 했다
행여 손을 뿌리쳤다면 나중에 죽음밖에
기다릴 수 없는 판에 앞장서서, 손을 뿌리치는 자가 있을 줄이야
아니, 그런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앞에서 녹색 군복을 입고 서 있지 않은가
헌데, 로조도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후회와 굴욕
그것이 안의 심장을 옥죄고 놓지 않았다
왜 못 알아봤는지, 어찌하여 결국은 말뿐인 인간이라고 단정지어버렸는 지
저 문장교의 손을 잡으면서도, 대성교의 간자로 되어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잇었고, 그 동향을 간과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여기서 손바닥을 뒤집어 버릴 줄이야
분노고 있고 후회도 굴욕도 있었다
하지만 안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감정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매우 컸고, 안의 사고를 가득 채웠다
수치, 수치심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안의 뇌속을 돌아다니며
다른 감정과 사고를 짓뭉개버렸다
인심 장악을, 교섭을 능으로 하는 자신이
사람에게 배신당해 궁지에 몰려버리다니
게다가 말이다
하필이면 영웅 루기스 님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볼이 탄 듯 뜨거웠다
자칫 방심했다간, 수치심에 눈동자가 침침해질 지경이였다
망신이다, 망신이야
라르그도 안이라고 하는 소녀는 스스로가 전쟁터나
무기에의 싸움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임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거기서 누군가와 겨루려고 하는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러나 후방에서 사후처리나 협상사 등에서는
비록 성녀 마티아에게도 쉽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왜나하면 만일 어떤 특출난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분명 나는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난,
그냥 문관이 되어버릴게 뻔했기 때문이였다
그걸 사절이야
아직 나는 그녀를 장악하지 못했는데도
끝까지 휘둘림 당하고, 패배한 채 끝나는 것은
결코 단호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렇기에 스스로의 영역에서만은 실수를 범할 수 없었을 텐데
라르그도 안의 혀가 경련하고, 이가 부서질 정도로 맞물렸다
"필로스 트레이트 님에게 꼭 전해주십시오
단 한 사람의 심장으로 모든 것은 확실히 해결 될것이라고"
안은 볼이 일그러질 정도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찬바람이 몸을 부딪치며, 장부는 달궈진 채,
한시도 식으려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