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60화 - 너무 작은 관 -
나는 어둠 속에서 눈꺼풀을 벌리듯이 하고 눈을 부릅떴다
검은색으로 물든 지하감옥 안이 내게는 낮처럼
구석구석까지 훤히 들여볼 정도기에
사람을 고문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그런 기구
게다가 쇠사슬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가운데
단지 늠름하게 눈에 빛을 내고 잇는 필로스 트레이트가 있었다
그녀의 몸의 마디마디엔 머리카락 같은 것이 붙어 잇었기에
그 광경으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잘 알것 같았다
"여기서 죽여라, 아무튼 난 당신 편이 아니니까"
입술을 억지로 벌리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문장교 진지에서 들은 소리와는
전혀 다른 듯 했다
뒤따르던 베스타리누 게르아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등불을 잡으며 말했다
"루기스 님, 그녀는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고문이나 모진 처벌을 받은 사람에겐 흔히 있는 일이죠"
그러니까 너무 자극을 주지 말라고
베스타리누는 고지식한 투로 말했다
그렇게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이렇게 말해버리는 것도 조금은 그랬지만
실로 베스타리누 다운 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상황 파악에 능하고, 지극히 올바른 판단을 그 자리에서 내릴 수 있다
용병의 대장으로서 이토록 든든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반면 난 베스타리누와는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니까 분명 나에게는 용병의 대장 같은 재목은 될 수 없는 거겠지
그때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전쟁터에서 만났을 때, 그 목을 꺾어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필로스 트레이트는 이런 고통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굴욕을 맛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도시 필로스의 통치자로 죽어 갈 수 있었는데
정말 미안하게 되버렸둔
나는 띄엄띄엄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이제 어떻게 할까?"
그것은 베스타리누의 목소리에 응한 것은 아니였다
나는 남자의 목에서 뽑아낸 칼에서 피를 닦고
눈을 부릅뜬 채, 필로스 트레이트만을 시야에 넣고 있었다
그녀를 스스로를 죽이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은 무엇인가 간곡한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내버리고 싶다, 이런거
그것도 그럴 수 있는게
도시 필로스의 통치자인 그녀의 존엄과 긍지라고 하는 것은
이미 땅에 닿아버려서, 빛 따위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였다
가장 믿고 사랑했던 시민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 기억은 언제까지나 그녀의 영혼에 상처를 남길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도, 편하게 삶을 구가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물었다. 아무래도 괜찮아졌느냐 하고
아직도 모든 걸 내팽개치고 싶은지
만약 그렇게 되어버리고 싶다고 하면
여기서 죽여 주마, 분명 그 편이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살아있다고는 볼 수 없었고
죽기 않은 시체, 그런 거라 할 수 있었다
나는 피를 완전히 닦아낸 칼을 손으로 돌리며
필로스 트레이트의 하얀 눈을 들여다 보았다
문장교 천막 안에서 바라볼 때마다, 훨씬 더 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순간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을 뱉었다
"괜찮을 수 있겠느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필로스 트레이트를 다시 보았다
무슨 의미일까, 아무래도 의미를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파도 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필로스를 위해서, 이 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 지도 모르는 주제에
얼만큼의 굴욕을 가슴에 담아왔는지도 모르면서"
그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 이야기를 하는 듯한 행동이였다
탁한 눈 속에는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과연 이건 순전히 나의 말이 경솔한 것이였다
필로스 트레이트에게 있어서 필로스라는 도시는
스스로 공들여셔 길러온 아이 같은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로부터 배신당해, 지면에 부딫혔다
그 심정을 제멋대로 헤아리는 것은 아마 예의를 저버린 거갰지
필로스 트레이트는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몸을 휘청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그녀를 사슬로부터 풀면서, 그 몸을 지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와중에 베스타리누가 투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문장교의 군세가 필로스를 둘러싸고
로조로부터 통치권을 당신의 손으로 되돌리게 할 것입니다
이젠 감정을 자제하세요"
그것은 분명히 상냥함 또는 배려에서 나온 말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필로스 트레이트라고 해도, 그런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서 그녀는 그녀 나름의 이치에서
스스로를 죽이라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대우는 고맙지만, 그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
당신들의 도움을 받고, 손을 잡고, 모든 것이 만사가 잘 됬습니다
하는 끝은, 나는 질색이야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매듭 짓고 싶어"
베스타리누가 당황한 듯 입술을 쩔쩔맸다
스스로의 말을 달라붙을 성도 없이
물리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 것이다
그런가, 그녀는 이런 성질인가
어딘가 자랑스러우면서, 어딘가 완고하다
일찍이 봤을 때는 아직 좀 더 부드러움이 남아 있던 것 같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그녀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던 거야
고귀함과 고집이 세다
그 두가지가 필로스 트레이트란 자의 본질이다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담담하면서도, 고집을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내 손으로 결말을 낼 수 없다면
나는 무능한 통치자로서, 여기서 당신에게 죽임 당하는 것이 좋을 거에요
그 편이 훨씬 알기 쉽고, 더 나을 것입니다"
그 하얀 눈은 탁하고, 어두컴컴한 불빛을 흔들면서도
어디까지나 똑바로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
베스타리누 또한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나에게 시선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뺨을 흔든 채, 어깨를 움츠리고 입을 열었다
"흠... 결국, 내 손으로 끝을 낼 수 밖에 없다... 라는 건가?"
나는 쇠사슬을 풀어도 여전히 몸을 휘청거리는
필로스 트레이트를, 그대로 어깨 위로 안아올렸다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그녀가 날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맙군, 그렇다면 입도 다물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약간 짐 취급 하는 것 같겠지만, 기분 탓으로 눈 감아주길 바래
나는 베스타리누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미안해 베스타리누, 짐이 하나 생겼는데, 이대로 일단 가자
그리고 지금보다 어두운 길을 지나갈 것 같아
아, 걱정하진마, 내가 길잡이 역할을 해줄테니까"
내 말을 듣고, 베스타리누는 제정신이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거 너무 한거 아니야? 난 언제나 제정신인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사람에게는 사람 나름대로의 인생 결말짓기라는게 있다
나 또한 그랬던 것처럼, 필로스 트레이트도 자신의 결말이 나지 않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도움이라곤 할 수 없지만, 무대 정도는 다듬어 주는게 인정 아닐까
"떼어라, 나를 어디까지 깔봐야, 적성이 풀릴 것이냐"
나는 비록 날뛰지는 않았지만, 어깨위로 끝없이 떠들어대는
필로스 트레이트를 향해 말했다
"깔보다뇨, 오히려 경의만 있다고
어쨌든 네가 죽기엔, 이 필로스라는 관은 너무 작아"
적어도 갈라이스트 왕국 마냥
모두를 집어삼킬 만한 크기는 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