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75화 - 눈 덮인 여로 -
한랭기를 어땋게 헤쳐 나갈 것인가
라르그도 안은 작은 입술을 튕기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손가락을 턱 근처에 두며, 눈을 가늘게 했다
한랭기, 그것은 온 세계가 불길한 흰색으로 칠해지고
대지가 인간의 손으로부터 마수의 손에 인도되는 시기
세계 자체가 마성으로 모습을 바꾸는 그런 시대에
나약한 인간의 손으로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적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결국 식량과 필요품을 모아 도시 안에 틀여박혀 버릴 수 밖에 없다
어차피 평시에는 인간의 생존권에 들어오지 않는 마수들이
이때만큼은 제 것인 양 거리와 도시 주변에 얼굴을 비춘다
그런 중 가볍게 밖에 나가면 어떻게 되는 지는
아이이들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예외라는 것도 있지만
예를 들면 욕심이 넘치는 상인은 위험을 알면서도
도시에서 도시를 돌아다니며, 몇 배 이상의 가격으로 물건을 팔 것이고
모험자들도 그러한 상인의 호위로 일과 돈을 벌 것이다
게다가 시민들도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상
어떤 용건이 생기면 모험자들에게 비싼 돈을 치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험자 중에는 일과 돈이 늘어나는
한랭기는 너무나도 멋진 시대라고 말하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난 예외일 뿐이였다
통상적으로 이 시기에는 누구나 도시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국왕이나 영주도 병사에게 눈을 짓밝게 하지 않았다
눈 속에서 인간 집단이 억지로 발자국을 냈다간
마수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줄 알고,
영락업이 눈깔을 뒤집고, 온갖 공격을 들이 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한 두 마리의 마수를 봐도 난리가 나는 법인데
마수가 무리를 지어 거리에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안이 천막 안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도
그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가볍게 입 안에서 입술 끝을 깨물며, 귀를 기울였다
"한랭기에서 얻을 수 있는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여서. 태세를 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갈루아마리와 가자리아를 중심 거점으로 해서, 물자의 보급은..."
연락을 주고 받는 순간, 한랭기가 끝날 즈음의 예측
군 유지에 대해 담담하게 안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간에 카리아나 엘디스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이론다운 이론은 없었기에, 안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연하면, 당연할까
이 한랭기에 엘프나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설령 누가 생각하든 큰 틀에서는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다
다만 안이 하는 말에 귀를 귀울이면서도
뭔가 흐려지는 듯한 끓는 불만이
폐 주위를 쥐고 있는 것도 사실이였다
이번 서니오 전투를 거치며,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문장교와 대성교, 두 세력의 규모차이였다
물자의 양, 병사의 수, 말의 수, 등
일일히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물론 한랭기 또한, 이 격차를 메우면, 어떻게든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그것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채워질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차이를 메우려고 발버둥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질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정말 단지, 한랭기 동안 도시에 틀여박혀
병사나 물자를 비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어쩌면 만약의 일을 대비하고, 군사를 진격해야 하는게 아닐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떠올랐다
여하튼 대성교 놈들은 이쪽을 쉽게 짓밟을 수 있을 정도의 거인인데
나는 놈들의 목을 베기 위한 무기와 그 머리를 으스러뜨리기 위한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문장교와 대성교 사이의 터무니없이 높은 벽
그것을 무너뜨리는 수단이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고 잇는 것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난 아무렇게나 그것을 말하려 들지는 않았다
어짜피, 그런 일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이해하고 있을 것이고
그녀들은 나보다 훨씬 더 총명하기에
마티아나 엘디스에 이르러서는 벌써 눈을 감은 채로
먼 미래의 일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자리의 누구도
대성교를 이길 수 있는가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이루어야 한다면, 그것을 이룰 수 밖에 없다고
도대체 누구의 말이였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결국 이 세상엔 모든 열세를 뒤집어주는 기적의 마법도
만사를 매끄럽게 굴릴 수 있는 수단도 없다
사람도, 엘프도 어딘가에서 영혼을 자르면서
앞으로 손을 뻗으며, 어떻게든 이뤄야 하는 것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란 그런 것으로
모든 것에 손을 내밀어 줄 만큼 상냥하지는 않다
오히려 사람보다 훨씬 잔인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 사치스러운 말을 한다면
적어도 이쪽에게 온정을 준 각본으로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안이 입술을 다물고 말을 끊었다
이제 할 말은 대부분 다 한 것 같았다
그녀의 큰 눈동자는 피곤함 하나 보이지 않은 채
천막을 바라보았다
"또 대성교의 성녀... 마녀라고 불러야 할까요
마녀 알류에노는 이와중에도 순례를 계속하는 모양입니다
갈라이스트 왕국 앞에서 백성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고, 정보가 날라왔습니다"
그 익숙한 이름에
턱을 쓰다듬던 나의 검지가 튀어올랐고
생각이 일순간 얼어붙은 것 같았다
왠지 카리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베르페인의 사건이 끝난 후
나는 안에게 조금이라도 좋으니
알류에노의 정보를 알아봐 줄 수 있냐고 의뢰를 했다
어쨌든 피에르트 왈, 대성교에서는 성녀라고 불리는 존재인 것 같으니
조사하는데 손해는 없다나 뭐라나
뭐, 정보를 잘 파악해서
어딘가에서 알류에노의 손을 붙잡는 그런 생각도
당연히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안의 정보에 의해서도,
결국 알류에노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정보는
그녀가 그 자리를 떠난 뒤에야 알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행선지에는 규칙성은 없고,
듣건대 신의 계시만이 그 여로를 가리킨다는가
그냥 들으면, 보통 사기꾼의 말투 같은데...
차갑고 푸른 초조가 가슴을 감싸고 갔다
베르페인에서 마주한 알류에노로 보이는 인물
그 모습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고
오히려 이상 그 자체
마성이 소리를 내는 듯한 기색조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였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알류에노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이상
알류에노 본인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순간, 가슴속에 품고 있던 알류에노의 손수건이
은은하게 열을 가졌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안이 말을 이었다
"대성교와의 협상 재료라는 의미에서는
가능하면 마녀는 포획이라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아무래도..."
안이 묘하게 미안한 듯이
힐끗 이쪽을 본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꺼풀을 깜박였다
내가 알류에노의 동향조사를 의뢰했던 것이니까
신경을 써 주고 잇는 것일까
무엇보다 책임감이 넘치구나
나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은 첫번째로 베르페인이 있는 지도에 돌을 두었다
그 다음엔 남서쪽, 그 다음엔 북쪽 차례차례 돌을 두었고
그 돌에는 장소나 도시의 규모, 그리고 각각의 거리에
역시 규칙성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나는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살짝 가슴을 두근거리며 안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이냐고
만약 그곳이, 내가 생각하는 대라면, 만약...
"이쪽인가 봅니다"
안의 작은 손가락이 갈라이스트 왕국의 서부를 가리켰다
나는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다시 한번 지도 전체를 보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웅덩이 같은 것이 고이고
몸 전체가 돌 처럼 무겁게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초조일까 기대일까
참으로 신기한 감촉이 머릿속에 있었다
과연 성녀를 낳기 위한 순례였던건가
젠장할... 전혀 몰랐어
아무도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나만 몰랐던 걸까
다만, 이제와서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