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76화 - 거인의 침상, 프리슬란트 -
오른손이 저리고, 볼을 떨었다
신체 마디마디가 묘한 게 아픈 것을 느끼면서
카리아는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자신의 몸을
혼신의 힘을 다해 땅에 묶고 있었다
대지도에 손을 붙이는 루기스의 옆모습을 보는 은빛 눈동자가
때때로 혼탁한 빛을 섞으며, 젖어갔다
심장은 스스로 터질 정도로 쿵광거렸고
당장이라도 뾰족한 송곳니를 내밀어 버릴 것 같았다
아, 젠장, 참기 힘들어도 유분수지
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선을 돌려서
이 광경을 보지 않게 해버리고 싶어
그러나 카리아는 하지 못한 채
오직 시야에 루기스만을 붙잡고 잇었다
저 녀석의 따뜻한 표정...
저 녀석의 눈동자 속엔 사모의 정 조차 떠올린 것 같아
그것은 거울을 보았을 때, 내 눈동자에 떠 있는 것과 똑같잖아
무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설령 다른 무엇을 버리고서라도
거기에 손을 뻗고 싶다고 그렇게 바라는 표정
그 감정만 있다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향한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충만하고 희색으로 가득 찰 것인가
행복 같은 쉬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테지
하지만 말이다. 지금 녀석의 시야에 떠 있는 것은, 결코 자신이 아니였다
카리아는 그것을 지겹게 이해하고 있었다
루기스는 지도 위에 눈을 기면서
마음속으로는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조차 없는
소꿉친구를 떠올리고 잇는 것이였다
마녀 알류에노
그 말이 라르그도 안의 입술에서 흘러나왔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루기스였다
평소에는 주름잡혔던 눈썹이 그 때만큼은
크게 튕겨져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여기 있는 다름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애초에 눈치조차 못 챌 터겠지
루기스가 그 마녀에게 작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음을...
하지만 나는 알고 말았다'
카리아는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은빛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하나 하나 구부리듯이 하면서
세게 주먹을 쥐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루기스의 측면을 알고 잇다는 것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기묘한 고양심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미친 마음은 허구한 날, 자신의 심장을 관통했다
갈라이스트에서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부터
짧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 루기스의 마음은 지금도 나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소꿉친구를 향한 채였다
가끔씩 변덕을 부린 것처럼 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곧 또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이 얼마나 지독한 놈인가
차라리 한 번도 외면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엇을 텐데
".....행방이 묘연한 마녀를 찾아도, 소용 없을 것을 것이다
본래 땅에 발을 붙이지 않은 채로, 하늘을 잡을 수 없는 법이니"
카리아는 무심코 화제를 잘라내듯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떨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입술을 누르고 있는 듯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여린 소녀 같은 목소리라도 낼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 꼴 사나운 짓은 드러낼 순 없어
그 말에 동의하듯 안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마녀 알류에노의 화제는 보충품으로 덧붙인 거였을 것이다
그녀는 카리아의 말에 개의친 기색은 없는 듯 했다
살았다고 솔직히 카리아는 생각했다
더 이상 루기스가 소꿉친구를 그리워 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가능하면 언제까지 과거에 젖어 있겠느냐고 질책까지 해 주고 싶었다
카리아의 가슴속이 떨리듯 저렸다
은안이 아직도 지도를 보고 있는 루기스를 파악하고 있었다
소꿉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그 소꿉친구가 네놈에게 무엇을 해주었던
네놈의 여행을 따라다니며, 함께 싸운 것은 바로 내가 아닌가
네 손을 잡고, 검을 휘두르고, 방패까지 되겠다고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라리 루기스에게 매달리면서 그렇게 말해버리고 싶었다
창피고 뭐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편할까
하지만 카리아의 입술은 아무것도 발하지 않고, 굳게 닫혀버렸다
가자리아에서 생각하게 되었을 때부터, 몇번이고 생각한 마음에 그린 그 광경
그러나 그런 흉내를, 아무리 생각해도 카리아는 할 수 없었다
그런 흉측한 짓을 할 수 없다는 카리아의 타고난 천성이기도 했고
또 가슴속에 품고 있는 하나의 감정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말이다
다 잊고 날 보라고 그렇게 말했다가
만에 하나 거절당해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리아는 자신의 뇌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눈 앞은 명멸하고, 등줄기에 차가운 무언가가 기어갔다
그녀는 두 손을 깍지끼며,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천막 안이 갑자기 불편해진 기색이 역력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가락 끝에는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루기스님
한랭기 동안 거주지에 대해서입니다만..."
안이 약간 긴장한 듯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녀의 시선은 망설이는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루기스의 거주지
요점은 문장교의 요지인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인가
엘프의 왕국인 공중정원 가자리아인가
그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카리아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안의 목소리를 귀에 울리고 잇었다
성녀 마티아와 여왕 엘디스 사이에 얽히는 시선이라는 것이
어딘지 딱딱하게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두 사람은 이제 성실하지 않다
내가 루기스에게 가슴을 태울 정도의 집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녀석들 또한 뭔가 다른 것을 가슴속에 품고 있을 것이야
그것이 나쁜 짓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단언할 수 없지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그런 식으로 카리아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
그리고 마티아와 엘디스가 목소리를 내기 직전
루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듯이 말했다
"아주 오래 전에 결정했지
북쪽, 프리슬란트 산맥으로 가겠어
문자 그대로 불타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바람 좀 쐬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카리아는 그 순간 직감했다
그것은 그녀가 선천적으로 가졌던 날카로움 보다는 좀 달랐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달카닥하고 소리를 내며
맞물린 것 같은 그런 감촉...
루기스는 지금 카리아도 피에르트도 아닌
단지 지도 끝에 있는 누군가를 부르듯이 말한 것이다
자세히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루기스는 지금
소꿉친구 놈의 손을 잡기 위해
북쪽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한순간 카리아의 은빛 눈이 혼비백산 해졌고
선천적의 가열함을 되찾은 듯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
북방산맥 프리슬란트
본래대로라면 그곳은 사람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 다니는 길도 없엇고,
지도도 대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곳이였다
애당초 사람이 끼어들 땅이 아니니 당연하긴 한데 말이다
여하튼 거기는, 아직 사람의 영역이 아닌
그리고 마수의 영역조차 없는 곳이였다
한마디로 사람도, 마수는 물론 엘프도 없는 장소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드넓은 북쪽 산맥을 근거지로 만들어 두고 있는가
그것은 요컨대 사람도 마도 아닌 시조의 거인이였다
프리슬란트 산맥의 통칭은 거인의 잠자리
신화시대에 남겨진 유물이 잠자는 장소라고, 누구나 그렇게 불렀다
그렇다고 해도, 평소에 거인이 출몰하는 그런 건 없었고
소문상으로는 시조의 거인은 산맥 그 자체보다 거대해서
만약 돌아다닌다면, 인간의 왕국 따위 한 방에 날아간다고 한다
거인은 그저 스스로의 잠자리에서 편안히 눈을 감고 있을 뿐
스스로의 잠자리에서 세상의 끝까지 깨지않는 꿈을 꾸고 잇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거인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그리고 이 새상을 끝내 버리지도 않도록
북쪽으로는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전설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정말 시조의 거인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겟고
거인족의 대부분은 사람과의 교제를 거치며,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프리슬란트 산맥에 마수가 접근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고
또 인간도 마수가 없다고는 해도
살기 힘든 대지의 혜택도 없는 산지는 손대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 결과 시조의 거인은 자신의 잠자리를 더럽히지 않는다는 것...
뭐 만약 그 거인이 실제로 있다면
뒤척임 하나로 침입자등을 물리쳐서 버틸 수 있는 것이겠지만
지난 세계에서도 그런 존재는 소문으로만 듣는 정도였지
만나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본래라면 그런 땅에 일부러 다가가는 사람은 없고
나라고 이유 없이 발길을 돌릴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그래, 여기 프리슬란트 산맥은, 아주 잘 기억나는 땅이다
그리울 정도로 눈에 선한 광경이 떠올랐다
눈밭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다리를 절었던 나날들...
손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단지 굴욕과 체념만을 핥았던 그 날들...
대지도에 새겨진 알류에노의 여로는
마치 그 꺼림칙한 나날을 그대로 그려낸 듯 했다
그리고 지난세계와 같다면, 다음에 이르는 것은 틀림없이 프림슬란트의 땅
내 눈썹이 일그러지며,
차가워야 할 한숨이, 묘한 열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래도, 난 아직 그 날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가는 것 아닌가
예전의 구세여행...
그렇고 말고
과거란건 도망쳐도 진흙처럼 베어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직접 가보는 것도 방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