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1장 순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85화 - 엘프의 재앙과 검은 머리의 망설임 -

개성공단 2020. 5. 9.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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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뭔가가 등골을 핥아갔다

그것은 얼음 덩어리를 그대로 피부에 바른 듯한 기분

 

엘디스는 목구멍에 심하게 까칠한 것을 느끼면서도

벽안을 부릅뜨고 정령술을 발했다

나타난 것은, 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 가라앉을 정도로

귀신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무거운 안개의 소용돌이

 

장엄한 고요함마저 느끼게 하는 프리슬란트 대신전

그 흰 벽을 엘프의 검은색이 뒤덮고, 억지로 마구 짓밟아 갔다

그 기세는 공간 자체를 바꾸어 먹을 것 같았다

 

이것은 저주, 인간을 굴복시키기 위한 저주의 안개였다

 

저주에서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인간, 일찍이 정령의 밑을 떠난 자 같은 경우

엘프의 주술은 모든 인과를 뿌리칠 정도, 강하게 작용한다

 

인간을 잡아서, 인간을 해치기 위한 기술

 

사실 본래의 정령술에서, 한참 이상한 곳으로 와버리긴 했지만

현재의 상황에선, 이 저주야말로 정령의 은혜라고 할 만 했다

엘디스의 벽안이 대복도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눈 아래에서는 흰옷을 입은 대성교 기사들이

하나 둘씩 검은색에 휩쓸려서 사라졌다

죽이지는 않았지t만, 의식을 빼앗긴 채, 몸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성당 기사라는 이름은 듣자니, 거창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단지 인간임에 틀림없었기에, 엘디스에겐 잡병과도 같았다

 

저들의 제압은 현재 매우 순조롭다

자신의 정령술은 틀림없이 적을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키고 있다

 

카리아가 가르라스라는 자와 시야 밖으로 날아간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아직 대세에는 영향이 없다

카리아가 적의 수괴를 끌어당겨 주기만 한다면

최종적으로 기사단의 모든 것을 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 문제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단언하는 엘디스의 가슴속은 이상하게도 움츠러들었다

마치 신체 내부에 단단한 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엘디스의 몸은 전체가 얼어붙은 것처럼, 어딘가 차가워져 있었다

그녀의 한숨 소리가 서서히 거칠음을 더해가고 있었고

숨 자체에도 열이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물론 이 혹한의 대지가 엘프의 몸에 걸맞이 않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여기서 정령술을 사용하면, 

이 정도의 변화가 일어설 거라는 건 예상하긴 했었다

 

그래서 엘디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였다

 

엘디스의 심장은 격렬한 두근거림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고양심이나 신체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닌

오히려 정반대의 것이였다

 

겁, 공포로 불리는 존재가

자신의 심장을 심하게 뛰게 하고 있다

 

정체는 알 수 없다

왜 자신이 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엘디스에게는 지금 자신의 심장과

온몸을 뒤덮고 있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뭔가가 있다

 

엘디스는 이 대신전에 발을 디디었을 때부터, 뭔가를 느끼긴 했었다

마치 그것은 아득히 먼 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중압감...

 

그 압박감은 사지에 볼에 추를 단 것처럼 

자신의 볼을 경련하게 할 정도의 기색이 들었다

 

그 기색은 엘디스가 정령술을 불러일으킨 근처에서

더 깊고, 더 짙어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자신의 기분을 읽었다는 듯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엘디스는 그것이 뭔가 꺼림칙했기에

필사적으로 눈을 옆으로 피했다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감정

더운 계절이 아닌데, 그녀는 이마에서 땀을 흘렸고

지금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싶다고조차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곳에서 그런 꼴을 차마 드러낼 수 있을까

 

카리아 버드닉은 적의 수괴를 끌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피에르트 볼고그라드 또한 루기스와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둘 다 적잖이 그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어찌 나만 그런 꼴을 보일 수 있겟는가

 

엘디스는 카리아나, 피에르트 또한 

루기스에게 일정한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본래 엘프가 인간에 대해 갖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기애애하게 양보해버리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그에 관한 것은 누구보다도 앞서고 싶은 심정

 

벽안히 형형한 빛을 띠며 빛났다

 

나는 조금만큼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카리아, 피에르트

시조의 거인을 이 손으로 쳐죽이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을거야

 

 

 

 

 

*

 

 

 

 

 

피에르트 볼고그라드의 검은 눈은

일단 멍한 듯이 그 광경을 포착하고 있었다

 

엘프의 재앙, 신화시대의 저주라고 불리는 그것이

지금 눈 앞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대성교가 자랑하는 성당기사들이 가슴을 누르듯 하면서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속담이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죽지는 않았겠지만, 너도나도 칼끝조차 뽑지 못하는 형국이라니

 

참으로 멋져, 마법의 원형이라고 불리는 정령술은...

이제는 그 근원조차 갈라졌지만, 지금 그 진수가 여기에 나타나다니

 

지혜와 이치는 피에르트가 받아들이며, 원하는 것이다

눈 아래 펼쳐지는 광경의 모든 것이 피어나는 광경을 매료시켜

검은 눈을 한 없이 끌어당겼다

마법사로서는 이 광경을 본 것은 틀림없는 행운 일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가슴 언저리에

와들와들 떨림이 있음을 피에르트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추악해서, 도저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감정...

 

피에르트의 가슴속에 질투라는 감정이 온몸을 태울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를 흔들며, 침을 삼켰다

 

나의 마법은 이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정도의 제압력으로 적을 방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쉽게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을까?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채워져가는 동시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왜 루기스는 자신에게 부탁하지 않았을까?

왜 나의 마법에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 정말 답은 간단하잖아

루기스는 적어도 내가 이런 짓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거야

 

분하다

 

비록 어렵더라도, 그가 말한다면,

그것을 모두 이루어보려고 하고 있는데 말야

가자리아 내전에서도, 베르페인 소요사태에서도 그렇게 해왔잖아

 

그래서 이번에도,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꼭 루기스가 말하는 것을 해내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런데 이게 뭐야

엘디스는 루기스에게 종자 같은 역할을 요구하고

루기스 또한 쉽게 응해 버릴 줄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피에르트로서는 자신에게 없는 관계를

눈 앞에서 직접 목적해 버리니, 뭔가 가슴속에 답답함을 느낀 것이였다

 

여하튼 말이다

그녀와 루기스 사이의 관계를 말해보라고 하면

피에르트는 솔직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고용주와 모험자였고, 지금은 동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관계라고 한다면 어떨까

일단 서약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영혼을 깨문 자신의 마력은, 

아직도 거기에 쐐기를 박고 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뭔가 말로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카리아처럼 그의 방패가 되거나

엘드스 처럼 그를 기사로 삼은 것도 아니기에

 

그걸 생각하자니, 점점 더 비참한 상상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만

그 생각을 물리치려 할 수록, 다시 가슴속에서부터 샘솟는 것이였다

 

나는 그를 황금으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가 황금이 되어버린다면,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피에르트는 그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생각에, 이를 갈았다

옆에는 루기스가 눈을 반짝거리며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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