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96화 - 거룩한 체구 -
위에 달라붙는 무서움과 눈의 뒷면을 파헤쳐지는 듯한 격통
느닷없이 주어진 그것들에, 엘디스는 발밑을 무너뜨리며 쓰러졌다
두 다리는 탈진에 그 역할을 포기했고,
두 손 또한 저림을 일으켜서 무력 그 자체가 되었다
벽안에 크게 떠지고, 원래부터 뽀얀 그 피부는
이제 병적으로 생각될 정도로 창백하게 물들어 있었다
목구멍에서 뿜어져나오는 숨만이 어디까지나 열이 있었다
가슴속이 삐걱거리며, 엘디스는 바닥을 기듯이 경련된 손가락을 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지금 나의 몸은 어떻게 되어 잇는가
엘디스는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몸속을 흐트러뜨리고, 정신을 억지로 찢는 것 같은 충동
그리고 어디까지나 차가운 몸... 그것은...
공포
지금 내 속은 공포라는 이름의 굴레에 묵여있다
그것을 직시하려고 하면 그것만으로 호흡은 거칠어지고, 입안은 말라갔다
무섭다, 그저 그만한 감정으로
엘디스의 몸이 저리고, 정신은 공황에 일으키고 잇었다
그 근원이 어디에 잇는 지도 알고 있었다
혼을 관통하는 그 기색이, 어디까지나 강대하다고도 할 수 있는 종족
엘프들이 종속할 수 밖에 없던 종족, 그들의 기미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사실인지, 아니면 기분탓인지 하는 의심은 할 수 없다
진위는 엘디스 자신의 혼이 말해주고 있었다
진짜다, 지금 여기, 이 신전에 그것이 있다
입에 담기에도 황공한 시조의 거인, 프리슬란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엘디스의 머릿속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갔다
당연한 일이였다. 그렇게 엘프라는 종족은 형성되어 있으니까
지배자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도록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주된 종족에게 일절 항거할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이 엘프라는 종족이니까
그것이 비록 오래 전 일이지만, 선조들의 기억은 영혼에 박혀 있다
여기서 정신을 잃고, 모든 것을 의식 밖으로 내던져 벼리면 얼마나 편할까
그저 고개를 숙이면 얼마나 편할까
적어도 통상적인 엘프는 그렇게 할 터였다
아니, 그래야 한다. 보다 빨리, 보다 빨리, 그렇게 해야해
그것이 좋고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엘디스는 반사적으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입가에 희미한 빨간색이 새었다
살이 빠진 아픔이 엘디스를 억지로 제정신으로 되돌렸다
그녀의 벽안엔 격분기가 떠있었다
화가 나
누구에게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신하게 한 것이였다
엘디스는 부끄러운 기분이 든 채, 손가락을 대지에 짓눌렀다
자신들이 종속이었던 일 따윈, 아주 멋 옛날의 얘기
그야말로 신화시대까지 말 할 수 있는 시대의 일이다
아무리 옛것을 선한 것으로 여기는 엘프라고 해도 꺼림칙한 과거까지
추앙한 적은 없다
그것을 왜 새삼스럽게, 규정에 따르려고 하는 것인가
까불고 있는 것도 정도가 있지
게다가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는 쪽 자신이
옛 저주에 얽매여서 어떻게 할 줄 모른다고 하는 건가
그녀는 아직 엎어붙인 채의 몸을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다리는 어디까지나 갸날펐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그대로 멈춰버릴 것 같은 걸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엘디스는 한발, 한발 다리로 돌바닥을 걷어찼다
엘디스의 가슴속애는 또 하나의 공포가 싹트고 있었다
그것은 지배인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엘디스의 정신을 일깨웠다
조금 전부터, 정령갑주에서의 반응이, 상당히 약해져 있다
자신의 분신인 그것은 본래
장비자인 루기스의 상태를 자세하게 전달하진 않는다
착용자의 장소나 그 움직임을 전하는 정도의 것
그렇다고 그 반응이 약해지는 일은 결코 없다
확실히 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엘디스는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이였다
그 반응이 약해지고 있다
그것은 즉 거의 갑주와 같아진 루기스의 존재가 없어지려 한다는 것
목덜미가 시린 듯한 통증이 있었다
엘디스는 또 비틀거리며 한 걸음을 내딛었다
만도 안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설령 깨어있다 치더라도, 죽게 내버려둘까 보냐
설령 그 영혼을 이 세계에 묶어서라도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엘디스는 벽안을 번쩍 떴다
대신전의 제전이 보였다
*
프리슬란트의 대신전의 제전
어둑어둑하고 근엄한 풍기는 그곳에 지금 하늘이 있었다
푸르고 끝없이 맑은 하늘
하늘 높이 허공을 방불케 하는 하늘
비유도, 공상도 아닌 그것이, 이 제전에 나타나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이계와 같이, 푸르고 끝없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하늘 아래에 그것이 있었다
위대한 하늘조차도 작게 느껴져 버리는
세계, 그 자체가 일어선 것 같은 거구
그 두 눈에 혼돈을 판듯한 혁혁한 눈동자가 있었다
그것이 발하는 압력은 어느 쪽보다 컸다
신성한 덮게를 무너뜨려, 아버지인 땅도 짓밟을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듯 했다
신령은 그런 압도적인 위세를 앞에 두고, 말했다
"환상이라고는 하지만 오랜만이내, 프리슬란트
시조 또는 마지막 거인, 내가 너를 잠재운 이후 인가"
담담하게,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가벼움으로
알류에노, 아니 아르티우스는 말했다
거구를 앞에 두고, 아직 그 본연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은 듯 했다
거인은 그 황금을 이제야 깨달은 듯 소리를 냈다
그게 정말 그의 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의사같은 것을 나타낸 것만은 사실이였다
"동족의 목소리가 난 것이다
인간의 왕, 귀화는 우리 영지에 무슨 일로 발을 들여놓으신건가
오만인가, 불손인가?"
공간이 그 자체로 요동쳤다
거인의 호흡 하나로 신전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이 자리의 인간에게 의식이 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이색적인 존재이건 분명했다
아르티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인의 왕, 오만과 불손은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망한거 아나야?, 아니면 한 번더 같은 길을 걷고 싶은건가"
아르티우스는 말을 잇듯, 소리를 거듭하여 말했다
눈동자에 비친 색깔은 모멸까지 의미했다
공간이 갈라지듯 삐걱거렸다
"귀하도 이제 살은 제대로 없어졌겠지
빌려 입은 옷으로, 우리를 상대할 생각이냐, 인간의 왕?"
거인의 큰 손에는 엄청나게 큰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마치 거인의 의지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는 것 같았다
그 망치엔 산맥을 파쇄할 만한 힘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결국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다고 해도, 거인의 왕의 힘이 여기에 있었다
세계가 양측의 힘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바람은 없고, 소리도 없는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만이
이 공간을 덮치고 있었다
아르티우스는 그래도 이상한 듯 말을 더듬었다
무슨 소리냐는 듯이
"예를 들어,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인생을 하고
그렇게해서 같은 힘이 담겨진 인간은 어떨거라고 생각하나?"
아르티우스는 허겁지겁 두 손을 떨치고, 거인에게 물음을 던지듯 말을 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져, 우물을 베개로 삼았다
고아원에서 가슴에 고독을 키우고, 수녀로서 고통의 찬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이를 악물고, 성녀 후보까지 올라가
가혹한 순례를 계속하는 여로도 답하하고 있었다"
아르티우스는 사랑스러운 듯 자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거기에는 과거 몇 번이나 움켜쥐었을 흔적이, 몇 번 남아있었다
쓰라린 고생을 모른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흔적이
손, 팔, 알류에노의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황금의 입술이 흔들렸다
"이 모습은 과거 내 인생을 본뜬 것이다
그래, 각본을 그렸던 내 몸에 맞게, 나와 동일해지도록"
그 빛깔이 없는 음이 약간 자랑스러운 기색마저 감돌고 있었다
각본을 그린 것은 사실, 그렇게 아픈 것도 사실
그러나 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만능인건 아니다
때때로 어린아이가 하는 발작적인 행동은 멈출 수 없다
아르티우스는 그래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계속했다
어떤 이들은 가끔 아기인 채로 죽었다
우물에 버려질 때 뼈가 으스러진 자도 잇었다
고아로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자도 있었다
곤궁하게 죽은 자, 남자에게 몸을 기대다 죽은 자
병에 걸려 죽은 자, 닥치는 대로 폭력을 온 몸에 당해 죽은 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성체가 되기 전에 죽어버렸다
그러나 이 알류에노라고 하는 딸은 모든 것을 잘 이루어 죽었다
잘 살아나고, 고통을 참았고, 그래서 더 나아갔다
전보다 더 훌륭하다. 고생해서, 자신의 몸을 만들어 주었다
멋지다고 노래라도 하는 것처럼, 아르티우스는 말했다
거인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떴다
"짐승만도 못하군"
세계도 깨뜨릴까 하는 큰 덩치가, 쳐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