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00화 - 완전한 행복을 -
살갗을 얼음덩어리가 기어가는 기색이 있었다
그것은 손발 안쪽을 통해, 서서히 몸 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춤추듯, 노래하는 듯한 쾌활함으로
결코 걸음은 멈추지 않고 꿈틀거리는 얼음 덩어리
그것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 것 같았다
몸속을 산이라도 오르듯 튀어오르면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다
머릿속, 즉 뇌다
머릿속 자체가 얼어붙어
신경이 굳어가는 것으로 변해지는 촉감에
피에르트 볼고그라드는 두 무릎을 붙이고 열을 찾았다
위는 철처럼 차갑고, 무거워지며 오로지 온몸을 단단하게 만들어갔다
사지 자체, 체구 자체가 얼음으로 변해버린 듯 했다
그리고 이 냉기가 머릿속을 지배하에 두는 것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그런 묘한 확신이 피에르트의 사고를 가득 채웠다
차가워, 좁아, 아퍼, 무서워
열을 원해, 조각만 해도 좋으니
차가운 건 너무나도 싫어
아무래도 그 시절이 떠오르는 듯 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의 나,
노력을 해도 재능에 뒤쳐져, 평범하게만 도달하지 못했던 나 자신
남들이 하지 않는 노력을 하며, 이가 깨질까 싶을 정도로 악물고
그래도 누군가의 키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나
비참했다. 굴욕이엿다
왜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어째서 나만 이런 비참하게 얼굴을 숙이고 걸어야 할까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해 봤을끼?
이 차가움은 그 무렵의 것이다
손을 내밀어 주는 자도 없고, 무엇 하나 얻지 못했던 나
바위에 달라붙어 억지로 일어나려고 발길지를 쳤다
차갑고, 춥다
그러나 무엇도 만질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붙어서 얼어 죽을 것 같다
"안심해라, 내가 너에게 구원을 채워주겠다"
감미롭고 상냥하며, 끝없이 가슴과 귀에 울려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영혼이 녹아내릴 것 같은 심지를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돌로 내려 앉았던 손끝이, 약간 열을 가져 그 환희를 전했다
행복이 거기에 잇다
구세라는 개념이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곧 그것은 빛 자체였기에
피에르트의 가는 손가락이, 완만한 몸짓으로 빛으로 뻗어 갓다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갈 수 있게 해줘
단지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말야
그것은 이미 암시 따위라고 하는 안이한 것이 아닌
하나의 숭배와 신앙의 형태였다
그렇게 해서 그 결과로 구원받는다
항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존재는 직접 머릿속을 삼켜,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침범했다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만큼의 일을 해버리는 압도적인 힘 하나가 그녀에게 있었다
구제신 아르티우스
압도적인 위광이 피에르트의 눈 앞에 있었다
시야에 비친 광경 자체가 희미하게 스쳐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고, 오직 안녕만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좋다고, 무언가가 말했다
어짜피 전부터 하던 짓이니까
손가락이 뻗어갔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 끝에 검은 것이 보였다
동시에 피에르트의 귀는 하나의 음을 포착하고 있었다
먼 곳에서 실려온 듯한 그리운 목소리
그러면서도 깊은 무게감마저 느끼는 목소리가, 검은 눈을 뜨게 했다
"몇 번이고 고뇌를 핥고 모멸감을 내뱉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긴 하지, 아무튼 난 가진게 없는 놈이니까"
어디서 들은 목소리였지?
주위를 뒤덮는 빛이 약간 흐리고
그림자가 몸을 우스꽝스럽게 감쌌다
밤의 파편이 거기 숨어들고 잇는 것 같았다
맞아, 밤이야, 그날 밤 갈루아마리아에서
"그럼 갈 길은 하나밖에 없어"
루기스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어둠이 빛을 받아 튀었다
"없는 자는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고,
그 팔다리를 자신의 피로 씻을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익숙한 길을 걸으며,
체념과 타성에 젖은 나날을 보내는 것은 이제 싫어"
그렇고 말고, 그날 밤 루기스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느 새 모든 것을 꼬집듯이 그림자는 빛을 짓밟고
그리고 피에르트 옆에 서 있었다
그림자의 윤곽은 약간 그를 양산시켰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볼이 솟아오르고 잇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가슴속에 품고 잇던 행복감은 안개처럼 흩어져 잇었다
그러나 오직 휘황하게 타오르는 열만은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차갑지 않아
그렇고 말고, 나는 가지지 못한 자
그렇다고 가진 자의 키를 지켜보는 인생 따윈 질색이야
있는 정의로 주어진 행복으로, 어찌 만족할 수 있겠는가
손가락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 살을 도려 낼 정도로 손톱히 박혀 있었다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무엇을 버리고라서 갖고 말겠어
이 피에르트 볼고그라드가 원하는 것 하나
이 손에 쥐지 못하겠는가
아니, 그럴리가 없어!
비록 지금 여기보다 더 멀리 있다 하더라도 잡아 주겠어
그것이 나의 완벽한 행복이니까
*
피에르트는 너무나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열었다
마음을 다잡고 있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잠의 바닥에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대신전 석상이 눈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내가 의식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발은 마법장치로 묶여 있어, 차마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가, 나는 뒹굴고 있던 거엿나
어라?
눈을 흔들자, 눈 앞에는 카리아의 은발이 튀고,
그 바로 안쪽에 엘디스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머리로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고받는 말을 듣고보니, 그들은 여기서 탈출할 생각인것 같았다
피에르트의 어리석은 생각은 유연한 발걸음으로 그 기억을 더듬어 갔다
그래, 나는 성녀와 대면해서 루기스가 그녀를 붙잡으려 하길래...
'나는 신령 아르티우스, 너에게 절대적인 행복을 주겠다'
그 놈을 만나서...
그래, 그 위협을 만나, 나는 이렇게 묶였어
겨우 정신을 차린 순간, 볼이 절로 수치에 상기되는 것을
피에르트는 느낄 수 있었다
눈동자는 촉촉하고 이는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뭔가, 나는 적에게 감쪽같이 잡혀, 의식까지 잃었단 말인가
꼴사나워, 얼마나 꼴사나운 일인가
루기스의 결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양양하게 적의 눈 앞에 섰다는데
적의 말에 동요를 드러내긴 커녕,
실신해서 이제는 마법구장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아마도, 카리아나 엘디스 중 한 사람에게 구원받았을테지
하지만 그 사실은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피에르트의 피부를 붉히게 했다
나는 루기스의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동료의 발까지 잡아당겨버리는 신세가 되버리다니
지나친 수치에 피에르트의 검은 눈동자가 가늘어져 갓다
한심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어둠을 파고들 생각이라면
차라리 그곳에 틀어박혀버리고 싶어
마법구속 장치가 아직 팔다리에 얽혀 떨어지지 않는 것도
피에르트의 정신을 한껏 몰아넣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카리아나 엘디스의 시선을 돌리기라도 하듯
피에르트는 대신전 안쪽을 쭉 훑어보았다
그 가장 안쪽으로 제단이 보였다
확실히 루기스가 검투의 무대로 삼았던 곳
거기에 지금은 검은 무엇인가가 진좌하고 있었다
흑구체라고 할까나, 사람을 그대로 삼키고 남을 만한
구체가 크기를 유치하고 잇었다
그 검은 색은 낯이 익었다
그래, 엘디스의 검은 안개다
그렇다고 해도, 피에르트가 본 것은 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지금은 확실한 형태를 이루고, 거기에 있었다
저 만큼의 저주를 가지고 다질 만한 상대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대체...
순간, 그 존재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찢어질 듯한 뭔가가 피에르트의 전신을 덮쳤다
흑구체가 조금 찢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빛의 일섬이 보이고 잇었다
피에르트는 저 안에 무엇이 잠재되어 있고
무엇이 억제되어 잇는지, 이미 알 것 같았다
직감 같은 것이었지만, 빗나가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 몇 순간도 지나지 않아
저것은 저 속에서 기어 나올 것이다
피에르트의 피부는 주위의 분위기가 극한까지
팽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걸 다시 밀어 넣는 건, 지금밖에 없어
그러니까 피에르트는 카리아가 엘디스가 몸을 돌리기보다
훨씬 더 빨리 일을 실행했다
어쨌든 근처에는 그가 있는 것이다. 오명은 벗어야 해
상체를 살짝 일으켜, 마법장치에 묶인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두 손에서는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고
잔가지 하나 떨리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마법을 행할려 해도, 마력 하나 분출되지 않았다
그래, 마법구속 장치 때문인가...
마법구장으로 구속된 사람은 통상 마법을 행해도
마력이 빨려 올라가, 그 의미를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마법구장이 마력을 무산시키는 기세를 넘어
마력을 방출해버리면, 수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진지함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는 역발상
터무니없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생각이였다
거기에 마력을 굳이 쏟아 붓는 것은
스스로 상처를 입고, 피를 토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발에는 터질 듯한 강력한 통각이 흐르고,
가슴속은 역류한 마력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피에르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그것을 이루었다
어짜피 어디선가 날라온 말들이, 귓속에서 울려퍼지고 잇었으니까
가지지 못한 자는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고
그 피로 자신의 파다리를 씻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이루자
마력이 전신을 달려는 감촉이 피에르트의 손 안에 있었다
팔다리의 혈관이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마법주조....전장 마법
선명한 빛이 검은 구체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