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3화 - 밀약자의 교제 -
라르그도 안이 방을 나가서 얼마가 지나서야, 적당한 때에 입을 열었다.
방 안에서는 필로스 트레이트가 무척 있기 불편하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떨고 있었다.
"말한대로, 네가 협조해 줬으면 좋겠어
갈라이스트 왕국에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내 말을 들으며, 필로스 트레이트는 얼굴을 들며
하얀 눈을 부릅뜨고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입을 크게 벌렸다.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요
당신, 나를 종복인가 뭔가로 착각하고 있는 거야? 루기스 브리간트""
내 부탁을 그대로 땅에 내동댕이치는 듯이,
필로스 트레이트는 입술을 들썩였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수많은 거절의 의사표시
물론 조금은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까지 강하게 반발해올 줄은 몰랐다.
스스로 붕대를 감으며,
어째서냐고 그 이유를 물었고
필로스는 뻔한 걸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다.
"말한 대로야, 나는 당신의 종복이 아니고, 완전한 아군도 아니야
그저 일시적인 동맹자이자, 포로 같은 존재지""
뭐, 고분고분한 포로라면
간수의 요청에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법이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한번 말을 끊고, 필로스는 날카롭게 눈을 뜨며 말을 이어갔다
"너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고마움을 표하고
필로스 시민들을 위해서라면, 그 통치에 협력도 하겠어
하지만 당신들을 위해 고분고분 따르는 꼭두각시는 하지 않아"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사람 밖에 없게 된 방에서,
필로스는 망설임없이 그렇게 당당한 듯이 말했다.
그 이외의 행위 따위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의 말의 뒷면에 있는 뜻은 명확했다.
즉 필로스라는 도시의 안부를 걱정하는 것이였다.
사태가 어떻든 간에,
필로스 트레이트가 도시 피로스의 통치자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
그렇다면 그 인간이 문장교의 동맹자가 된 이상,
만약 그 계략에 동조해 갈라이스트 왕국에 대한 적대의사를 내비친다면
그것은 스스로 파멸 속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거대한 용인 갈라이스트 왕국을 향해 칼을 겨누면,
그 미래가 어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필로스라는 도시는 강한 자에게 거스르지 않아왔기에,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대의사를 내비치면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틀림없이 갈라이스트 왕국은 도시 피로스의 자치권을 강탈할 것이다.
때로는 무력을 동반해서라도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일시적인 문장교와의 동맹조차 충분히 위태로운 일이다.
설령 그녀가 개인적으로 맺은 일이라 할지라도,
저쪽에서 어디까지 들어줄지 모르는 일이였다.
필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동맹을 맺는 것이 수용할 수 있는 마지막 선,
그 이상은 발을 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거겠지.
필로스의 말을 듣는 사이,
그녀는 자신의 붕대를 여전히 감아주고 있었다
나의 가슴 속에는 감탄조차 떠올려 버렸다.
그녀, 필로스 트레이트라는 사람은, 배신당한 몸이다.
로조라는 선동자가 있었다곤 하나,
도시 필로스의 시민들이 그녀를 팔아넘기고
쇠몽둥이로 구타를 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
그렇다면 그 가슴 속에 조각큼이라도 증오나 원한이란 것을
가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시민을 나락의 구렁텅이 내몰고 싶다는 어두운 감정이 있어도 될 터였다.
설령 성자라고 불리는 인간이라도 같은 일을 당하면
눈꼬리에 어두운 감정이 깃들게 될 것이다.
아니, 아마도 그녀도 그러한 감정을 당연히 가지고는 있는 거겠지.
다만 그걸, 스스로의 어리석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율심으로 속박하고 있는 것일 뿐...
그야말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몸만 괜찮다면, 당장이라고 하고 싶군
말을 입 속에서 한번 머금으며, 말했다.
가능한한 그녀가 받아들이기 쉽도록, 조금 과장되게 말이다
"꼭 갈라이스트 왕국을 물어뜯어 달라는 게 아니야
그저 몇 명에게 인사식으로의 편지를 써주면 돼, 그것 뿐이야"
내 말에,
필로스는 의심스러운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이쪽의 의도를 읽지 못한 것이리라.
반면, 나는 뺨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계속했다.
안쪽에는 고인 진흙 같은 것이 달라 붙어 잇었다
"갈라이스트 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탐색전 같은 걸 하고 싶어"
이곳 필로스라는 도시는, 지금 갈라이스트 왕국에 있어서
가장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문장교의 점령하에 있어서,
시민들은 그 통치에 우호적인지, 아니면 반항적인지.
통치자인 필로스 트레이트는 대성교와 문장교 어느쪽에 붙을 셈인지.
그 정보들을 캐내기 위해,
한랭기에 들어와서도, 적지 않은 첩자들이 이 도시에 잠입해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당사자인 필로스에게서 인사라곤 해도 편지가 날아오면,
당장 무언가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반응을 보고, 적 진영을 탐색하고 싶은게 내 의중이였다.
눈 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 반응 속도
대재해의 징후인 마수 무리가 갈라이스트에 밀려들어왔다면
그 대응에 쫓겨 반응은 늦어지게 되겠지.
만약 마수가 몰려온게 아니라면, 반응은 신속하게 될 것이다.
알고 싶은 것은 그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필로스에게 전달했다.
뭘, 간단히 인사만 해두는 거라면, 적대로든 뭐로든 여겨질 일도 없을 거다.
그러한 취지를 주장한 내 말에,
필로스는 턱주변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굳은 표정을 떠올렸다.
꽤나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나는, 가슴 속에 떠오르는 씁쓸한 기분을 삼키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말을 약간 낮추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그럼 거래라는 걸로 하자구
향후 만약 문장교가 도시 필로스에 상처를 남긴다는 결론에 이를 경우
나는 가능한 한, 너의 편의를 조성 해주겠어"
내 말에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라고 덧붙이면서,
품 속에서 씹는 담배를 꺼내며 머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이야기를 내멋대로 꺼내버려도 되는 건지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 정도는 귀엽게 봐줄 것이다
필로스는 그 말에 일순 백안은 깜박이며, 입술을 움직였다.
"편의를 봐준다는, 그런 애매한 말은 곤란해
만약 나와 문장교가 대립 관계에 빠졌을 때,
반드시 내 편을 들겠다고 한다면 협력하겠어, 루기스 브리간트"
일순, 피로스와 시선이 얽혔다. 서로 호흡이 멈춘 것 같았다
씹는 담배의 풍미가 묘하게 농후하게 콧구멍을 지나간다.
반드시.. 인가, 머릿속으로 곱씹으면서, 대답했다.
"알았어, 배신이 될 수 없는 범위에서라면, 너의 힘이 되어주지
이제 우린 지금부터 밀약자끼리인 셈이야"
씹는 담배를 입에 머금은 채로, 필로스의 손을 잡았다
받은 인상과는 달리 꽤나 작은 손이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의자에 앉아 양피지에 잉크를 떨어뜨리는
필로스 옆에 서서 보내야 할 상대, 써야 할 내용을 차례로 말해 갔다.
그것을 귀족다운 말로 필로스가 글을 변환해 주었다
무엇 하나 지장이 없는, 인사 이외의 의도가 보이지 않은 문장.
편지로서의 의미조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필로스도 몇번인가, 정말 이것만으로 충분하냐고 확인했지만,
상관없다고 그리 대답했다.
그렇고말고 내용 같은 건 뭐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까놓고 말해서, 아까 그녀에게 대답했던 반응 속도가 어떻든 간에,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그녀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명을 양피지에 쓰는 단계에 이르러서,
순간적으로 떠올렸다는 모습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가능한 한, 처음부터 의도했다는 것을
상대방이 눈치재지 못하도록 말이다
"필로스 트레이트의 이름을 적어버리면, 통치자의 이름이 되버리잖아"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입술 끝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물고 있었다.
수치다. 그래, 수치스러운 일이고 말고.
지금 자신은 자기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녀를 속이고,
이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였다.
사기 거래를 가져와, 그녀 자신을 돌아오지 못할 곳까지
발을 디디게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악덕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였다.
참으로, 대성교 놈들은 본성을 꿰뚫어보는 게 특기인 모양인 것 같구만.
이후에 이 몸과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더라도,
일체의 항변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 또한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입술을, 벌렸다.
"네 본명이 따로 있을 것 아냐, 서명은 그 이름으로 해주겠어?"
편지를 보내는 곳은, 일찍이 첩에서 태어난 왕녀를 찾아내
갈라이스트 왕국의 실권을 쥐려고 했던, 야심에 찬 귀족들...
필로스 트레이트는 자신의 혈통을 모르지만,
그들은 첩의 자식인 왕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곁에, 일찍이 그 이름을 버렸을 필로스로부터,
본래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게 하는 것이였다.
무언가 배경을 상상시킬 재료로선 충분하고도 남겠지.
적어도, 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야심을 자극시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자 그럼, 이대로 일이 순조롭게 잘 굴러가면 좋을텐데 말이야...
바라는 바는 몇가지 있지만
결과로서 조금이라도 정치판이란 것이 끓어오르고,
아수라장이 오갈 정도로의 자리가 돼 준다면, 충분할거야
그리 하면 반드시, 군의 움직임도 흐트러질 수 있을 것이다.
바다와 같은 마수군에 맞서기 위한
국군과 귀족의 사병의 연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갈라이스트 왕국이라도,
적지 않은 출혈을 입는 것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뭐, 어차피 희망론적인 관측에 불과하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척척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밖에도 손은 충분히 써야 할 것이다.
어쨌든 갈라이스트 왕국의 마수에 대한 대응은 전부 늦출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갈라이스트라는 대국이
마수떼가 닥쳤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각국과 연대할리는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전 세계에선 그랬다.
놈들은 반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이 사태가 자신들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결국 인간이란 녀석은,
뼈가 갈리고 궁지에 몰리지 않으면 스스로 몸을 지키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겠지.
설령 그것이 성대한 출혈을 동반한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