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3장 복음전쟁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3화 - 흔들리는 감정 -

개성공단 2020. 2. 19. 15:19
반응형

라르그도 안이 정보를 가져온 며칠 후,

반란에 대한 소문이 갈루아마리아로 들어왔다.

 

도시 내 혼란을 막기 위한 함구령이 내려졌지만,

소문은 이미 도시 전체로 뻗어 나간 후 였다.

 

- 문장교도의 반란으로 영주가 죽었고,

여러 영주의 목이 갈라이스트 왕국의 성문에 내걸렸다

 

...라는 왜곡된 소문이 갈루아마리아 시민들을 크게 열광하게 했다.

 

열광? 그렇다. 그들에게는 강 건너의 화재 일 뿐이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불구경은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 위협이 퍼지더라도 이 성역에는 불이 미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

역사상 한번도 함락을 당하지 않은 성스러운 도시

 

 

 

*

 

 

 

그 날, 카리아의 존재는 

위병단에서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잡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갈라이스트 왕국 기사의 몸이면서도, 

지금은 위병단에서 손님 신분으로 대우 받고 있었다.

그녀의 용모는 마치 예리한 검같은 단정함과

그녀의 검술은 여자가 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누구나가 동경하는 기사 그 자체 였다.

 

손님 신분이라고 불리면서도,

평대원들은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아마, 연모 였을 것이다.

 

카리아가 위병단을 거점으로 삼은 이래,

그녀의 일은 크든 작든 단원들의 소문이 되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기분은 괜찮으십니까, 카리아 님"

 

그 남자가 한 말에, 카리아는 창가에서 돌아보듯이 말했다.

 

"저는 손님 신분일 뿐입니다. 존칭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카리아의 말투는 날카로웠지만 ,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 같은 남자가 어떻게 감히..."

 

카리아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고, 은발을 흔들었다.

 

이 남자는 아무래도 권위주의자는 아닌 것 같지만,

격식에 따른 예의범절이나 관습을 남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 사내의 영향 때문인지, 위병단의 대다수가 카리아에게

존칭으로 부르게 되어 버린것 같다.

 

작은 숨을 몰아쉬며 파충류처럼 

꿈틀거리는 눈을 한 남자에게 말을 계속해서 건넸다.

 

"그런데, 그 턱은 왜 그러십니까? 부대장님.

어딘가에 부딫히리가도 하신건가요?"

 

그 남자의 모습은 기묘하다고 말해도 좋았다.

도마뱀 같은 눈동자, 그리고 갈라진 턱을 받치듯

입가에 스카프를 매었고, 말을 할때는 손으로 턱을 받쳐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말을 잘 할 수 없는 건가?

 

카리아의 말이 끝나자 마자, 실내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신경을 쓰지 말라? 카리아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위병단의 부대장이 순찰 중에 턱이 깨져 돌아오다니

전대미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동행하고 있을 대장, 헤르트 스탠리도, 그 부하들도

모두가 마치 짠 듯이 아무도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사실 위병단 내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렇게 돼 잇었다.

 

사내가 완고하게 아무 말도 하려들지 않자,

카리아는 그 모습에 질려서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았다,

그러자 사내가 다시 손으로 턱을 받치면서 말했다.

 

"카리아님은......무엇 인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화제를 되돌리려는 것 같았다.

자기 얘기는 하기 싫은 건가, 아무튼 여잔하군"

 

다만 그녀도 이 질문이 싫은 것은 아니였는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좋은 일 말인가?

어제 아버지에서 편지가 왔다내.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받는 편지는 매우 기쁘단 말이지"

 

다시 빗장을 풀고, 카리아는 창가에 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남자도 더 추궁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오히려 요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던

카리아의 심정에 섣불리 발을 들여놓아

기분 좋은 것을 해치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 눈치였다.

 

사실 카리아의 기분은 어제까지 최악의 초조함을 보였다.

 

특히, 문장교도의 반란 소식을 들은 뒤부터 두드러졌다.

주위에서는 모두 고국에서 이단자의 반란이

카리아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였다.

 

그녀의 가슴 속을 날뛰며 쥐어뜯은 것은 초조함 이였다.

 

막은 이미 열렸고, 배우는 속속 단상에 올라와 있는 가운데,

자신은 역할 하나 부여 받고, 가만히 객석에 앉아있는 듯한

감각이 그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역할은 던져 버리고,

무대 위로 뛰어 오르고 싶은 감정만 이였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나의 손에 편지가 건네졌다.

 

편지는 버드닉 가문의 휘장을 본뜬 것이였지만,

위장이였고,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딱 한명이였다.

 

루기스다. 루기스가 편지를 보낸 것이다.

 

카리아는 그 편지를 본 순간의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편지의 내용을 기대하며 끓어 오르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 자체는 단순했다.

 

현황과 향후 방침을 전달하는 정도,

비록 가문의 봉랍을 붙였다고는 하지만, 검열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카리아는 완곡한 표현에 숨겨진 진실을 천천히 주워 모았다.

 

위병단과 문장교도 세력끼리 서로 맞붙게 함으로써,

양쪽을 피폐하고, 끝내는 문장교도들을 와해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대개 그런 내용이 편지에 적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문장교도들을 와해시킨 공을

그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이였다.

 

편지에 담긴 의도를 알아차렸을 때, 카리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녀석다운 엉성한 계획이란 말야

 

업신여기거나 비웃는 감정은 아니였다. 오히려 흐뭇한 감정이였다.

 

그리고 편지를 가슴속에 넣었을 때,

잔잔하다고 할 수 있는 표정은 

미소를 띤 채 너무나도 예리하고 차가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천사와 악마가 섞인 듯한 미소였다.

 

바보 같은 놈.

네가 이 곳에서 얼마나 공을 이루든, 

이름을 날리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꺼 같으냐

 

카리아는 그런 그를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뚫리는 듯 했다.

 

이 세상은 태생이 전부다.

기사로 태어난 자는 기사로,

귀족으로 태어난 자는 귀족으로,

서민으로 태어난 자는 서민으로,

빈자는 빈자로...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였다,

그것을 불변으로 여기는 작자들이

왕이나 귀족이 되어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으니까...

 

카리아는. 오히려 위에 서는 자이기에, 

루기스가 아무리 공을 세운들 

세계는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모험자로서 공을 세운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가난한 귀족만큼의 땅도 못 얻을 것이다.

 

아아, 루기스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동경을 해 왔을까.

많은 노력 끝에 영광에 손을 뻗치더라도,

어느 세상에 그를 인정할 만한 곳은 없을 것이다. 

 

카리아는 그럴 루기스를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렇다면 루기스, 네놈은 이 세계 자체를 변혁의 소용돌이에

삼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카리아는 자신이 보는 사람을 녹이는 듯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세상은 네놈이 무엇을 하든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영광을 차지하기는 커녕, 손 끝 하나 만질 수도 없을 것이야.

 

하지만, 안심해라

 

내가 영광으로 가는 길을 지켜봐 주마.

내가 네놈을 높은 곳에 올려다 주겠다.

 

다만, 그 때 네 옆에 있는 것은

검은 머리의 마법사도 아니고

너의 오래전 소꿉친구도 아닌

내가 네 곁에 있을 것이다.

 

카리아의 눈동자가 그 의지를 보여주듯 반짝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