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20화 - 쌓이는 원한 -
식량보관고에서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철과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코를 가볍게 만지기만 해도
코를 찌그러뜨리게 만드는 역겨운 냄새였지만.
그러면서도 일찍이 맡은 기억이 있던 향이었다.
그리고 귀에는 신음소리처럼 땅바닥에서 울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왔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말이다
정말로, 얼마나 음침하고 심한 장소일까 변변치않은데도 정도가 있다.
감옥 등 어딜 둘러봐도 비슷할지 모르지만.
이곳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울적한 감정이
배 밑바닥에서 기어오를 것만 같았다.
도저히 오래 있고 싶지는 않은데다.
본심을 말하자면 아에 접근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곳이였다.
과연 문장교도의 원한을 쌓게 하고 과거부터 악명 높은 곳으로 불릴만했다.
나는 폐에서 거칠게 무거운 숨을 내쉬고, 건너편 복도를 발로 두드렸다.
"베스타리누,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기다리는 게 좋을 거야,
정말로 여기부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리 숨을 몰아쉬어도, 폐에 달린 추 같은 것은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병사들에게서 떼어낸 간수복을 입으면서, 베스타리누는 말했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겉치레라고 해도 착용감이 좋다곤 할 수 없는 옷
그런 것이라도 묘하게 잘 입는 것은
베스타리누가 발하는 분위기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신사 같은 말을 하시다니"
베스타리누는 조금 비꼬는 듯이
귀에 잘 남는 목소리를 바람에 실었다
그것은 잠시나마 귀에 울리는 신음 소리를 멈추게 해주었다.
"그래, 인간이란 건 의외로 신사인 척하고
그러면서도 악당이 될 수도 있는 거지"
어깨를 움츠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베스타리누는 표정을 움직이지 않았기에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만 그녀의 목소리는 묘하게 딱딱하게 들렸다.
"루기스 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립니다만
저는 이래도 수백 명의 용병대장 입니다
이대로 물러선다는 건, 제 용병들 얼굴에 먹칠을 칠하는 셈 입니다"
그러니 그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식으로 말하며, 베스타리누는 가는 어깨에 전투 도끼를 올려놓았다.
농부처럼 성실하다고나 할까.
나와는 마치 성질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한마디였다.
훌륭하기 짝이 없군
그렇기에, 이런 감옥 같은 곳에 접근시켜선 안되지만,
이곳은 베스타리누의 기질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이였다
베스타리누는 목소리를 죽이며,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가
수많은 죄수를 풀어줄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기다리는
베르페인 용병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공작을 이룰 것인가
그녀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열성이 담겨 있었다.
냉정한 것처럼 보였지만만,
베스타리누 또한 초조함이라는 것이 다소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적지 한가운데서 단 둘이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기세를 억누르듯, 연거푸 말을 늘어놓는 베스타리누의 입을
억지로 손으로 막으면서 대답했다.
"화려한 행사는 일단 뒤로 미루자구
베스타리누, 어쨌든 이쪽은 상대에게 들키는 일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어
그럼 우선 상대방의 멱살부터 잡아보자구""
아아, 그렇고말고.
죄인을 해방시키든, 용병들을 안으로 끌어들이든,
우선 정리해야할 일이 있다.
무대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배우들을 불러들일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다.
어짜피 곧 날 뛸 무대이기에, 그걸 위해서도 몇 가지 미리 할 일이 있다
게다가, 지금 죄수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 일 것이다.
아마도 죄수들 또한 이쪽이 하는 말 따위 제대로 듣지도 않겠지
그 뿐만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역으로 간수측에 붙어먹을 가능성조차 있을 것이다.
죄수는, 간수에게 복종하는 법. 그런 장소인 것이다. 이곳은
마른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북쪽 탑의 꼭대기층을 응시했다.
분명 감옥장이 있는 방은 그곳일 것이다.
우선 그 놈의 목덜미를 잡으러 가볼까
지하 밑바닥에서, 여전히 진저리를 칠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손가락이, 눈 앞에서 터졌다.
적어도 나인즈에겐 그렇게 보였다.
유쾌하게도, 그 광경에 한순간 시선을 빼앗긴 탓에,
잠시동안 고통이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혈액이 사방으로 튀고, 자신의 뺨마저 더럽혀갔다.
귀빈용 죄수실과는 달리, 어둑한 심문실 안에는 묘하게 피가 어울럈다.
그리고 그 직후
손가락의 신경을 억지로 끌어내,
그것을 정중하게 빗어 울리는 것 같은 절망적인 통증
그것이 쉴새없이, 몇번이나 손끝에 달려들었다
손가락을 조이는 고문기구를 간수가 철퇴로 내리쳤다.
또 다른 손가락이 터졌다.
산산조각으로 피가 솟구쳐, 부서진 뼈가 안쪽에서 살을 도려냈다.
나인즈의 목이 터져나갈 정도의 충격과 함께, 소리없는 아우성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되었다.
"죄수번호 2066
빨리 자백하는 편이 훨씬 편해질 거야
이상한 고집을 부려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간수의 묘하게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귀에 달라붙었다.
나인즈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뺨에 붙이고
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날카롭게 세우며 말을 뱉었다.
"...미안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말해주겠어?
난폭한 짐승과 대화하는 그런 특이한 취미는 가지고 있지 않거든"
쇠사슬로 묶인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나인즈가 말했다.
동시에 다시 폭력적이기까지 한 강렬한 통증이 손가락에 닿았다.
이로써 오른손의 손가락은 모두 망가졌다.
약간의 촉각은 있었지만, 전혀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오른손의 뼈라는 뼈가 모두 산산조각 난 통증이 들었다
간수인 남자는 초조해하며 철퇴를 휘두르고 말했다.
"네 입장을 알고나 말하는 거냐?
네 동료가 이미 자백을 했다고
너는 구교도야, 처형 방법까지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조금 아양을 떨면, 최후는 부드럽게 해줄 수 있다고"
뚜렷히 노기가 실린 말에, 속이 너무나 뻔해보여서
나인즈는 순간 웃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구속된 채로 있는 왼손에, 다른 간수가 고문기구를 끼웠다.
못쓰게 된 오른손은, 피를 계속 토해내며 허공에 내던져졌다.
나인즈는 보랏빛 눈을, 크게 부릅뜨고. 눈 앞의 간수를 응시했다.
남자의 어깨가 들썩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너희들은 알기 쉽구나, 참으로 어리석어
날 갑자기 모함하려는 이유도 잘 알 수 있겠군"
헝클어진 보라색 머리를 흔들며 코웃음 치듯 나인즈는 말했다.
"어짜피 대성교 안에서 누군가 실수라도 저질렀을 거야
그래서 마침내 백성의 시선을 피해가기 어려워지자
기껏 악인을 하나 만들어서, 방패로 쓰자는 거겠지
누가 생각한 것인지, 참으로 알만하ㄱ.... 윽!"
그 말이 이어지기 전에, 나인즈는 뺨을 세게 얻어맞았다.
간수의 주먹이 나인즈의 광대뼈를 무너뜨리며 피를 토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간수는 죄수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곳의 죄수들은, 다들 알아서 복종하기 때문이었다.
제 역할을 다하는 연기자처럼, 흐린 눈으로 죄수라는 역할을 해낸다.
그것들은 마치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런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간수는 나인즈의 턱을 억지로 붙잡고 정면을 보게해, 보랏빛 눈을 응시했다.
"이 개년아, 난 네놈의 그 눈이 싫어
죄수라면 죄수답게 죽은 사람 같은 눈을 하란 말이야
이 짓 계속 하고 싶은거냐, 응?"
간수는 상대에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저 떠들어대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었다
그 말을 듣고 나인즈는 온몸을 덮치는 고통에 이를 삐걱거리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인간의 언어로 말해달라고"
그저 그것만을 말하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