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22화 - 감옥의 마성 -

개성공단 2020. 5. 1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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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벨라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두드리면서, 전방으로 시야를 돌렸다.


거창한 요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인원은 간수와 허드렛일 하는 사람을 포함해
기껏 수백 명에 그쳤고, 묘하게 시설 안은 고요했다

 

으레 새어나올 사람 사는 소리보다 

감옥 주변 해자가 요란하게 떠드는 소리나 

바람이 부는 소리가 훨씬 요란할 정도였다.

 

"신기하네요. 여기 물은 한랭기에도 얼지 않는군요"


공기에 누워있던 긴박감을 깨듯이, 베스타리누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분명, 귀를 들리는 물이 흐르는 소리를 가리키고 있는 거겠지.


갈라이스트 왕국은 대륙북부에 영토 대부분을 차지한 탓인지, 

하천이나 호수 대부분이
한랭의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얼어붙은 대지 그 자체로 모습을 바꿔나갔다.


동방과의 국경이자, 갈라이스트 왕국 최대급의 하천인 오거스 강조차,
이 계절에는 얼어붙어 그 모습을 얼어붙은 대지로 변모시킨 것이였다.


그 와중에 극히 일부의 예외가, 

이곳 매장감옥 벨라의 얼어붙지 않는 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해자는 무척 기묘하게도 한랭기에 이르러서도, 

물이 얼어붙는 일 없이 넘실거리며 계속 흘렀다.


여하튼 원래 이곳은 죄수를 처넣는 감옥이 아니라, 

전선과의 사이를 잇는 중계 보루였다
막상 적이 들이닥쳤을  때, 해자가 얼어붙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건축왕이라 불린 선왕은 그리 말하며, 

마법기능의 정수를 담아 얼어붙지 않는 해자를 만들어냈다고 전해졌다.

 

아마 그 대부분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왕이 지은 건축물에는 영락없는 열과 확실한

재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고, 한눈 봐도 기이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왕이면, 

그런 재주로 이런 보잘것없는 것을 만들어 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나는 살을 깨무는 한기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떨었다

 

"물이 얼어붙지 않도록, 누군가가 휘젓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니, 참으로 불쌍하군"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그런식으로 대답했다. 

베스타리누는 딱히 기분이 상한 모습은 없었지만, 

질린듯이 한숨을 내쉬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나의 농담에 상당히 익숙해져버린 건가

 

자연의 소리를 귀에 주워 담으며

때때로 간수의 피를 흘리면서 북쪽 탑을 향해 발길을 돌렸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째서 이리도, 간수들은 수가 적은 것일까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만나는 간수들은 묘하게 뜸했다


이렇게 쉽게 감옥 안을 배회할 수 있는 건가

조금만 더 감시의 눈이 있어야 되는게 아닌가?


운이 좋다고 말하면 되겠지만. 

하지만, 난 행운의 여신의 눈 밖에 났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근거없는 오한이, 내 등줄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드디어 눈 앞에 북쪽탑으로 이어져있는 복도가 비쳐지기 시작했다. 

이곳을 건너면 이제 그대로 교도소장실을 향해
북쪽 탑을 그저 밟고 지나가기만 하면되는, 딱 그런 지점이었다.


그 순간, 다리가 멈추었고, 순간 손가락 끝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베스타리누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고지식해 보이는 눈이 왜 그러냐는 듯이 나에게 묻고 있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일체 신경쓸 틈도 없고. 

난 허리춤의 보검을 향해 손가락을 미끄러져 내리게 했다.
숨결의 열기가, 하얀 아지랑이가 되어 허공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나에겐 무엇인가의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지금 이 복도에서 큰 입을 열고, 우리를 기다리는 녀석이 있다


복도에는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지만 장렬한 혐오감이 나의 가슴속에 기대어 오고 있었다 


이전에도 여러번 맡아본 냄새가 복도에 만연해 있었다
그래, 용병인 베스타리누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건, 틀림없이 마성의 냄새야.


그것도 콧구멍으로 파고들어, 끝내 머릿속을 잡아먹을 정도로 농밀한 것...

 

모험가 시절,

지난 세계에서 몇 번인가 느낀 적이 있었고, 너무나 역겨운 냄새였다

 

하지만 이렇게 지금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성장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나 스스로가 어딘가 변질되어 버린 것일까.

 

부들부들 떨리는 보검을 움켜쥐며 한발자국 나아갔다. 

 

그래... 이곳은 이계야

그야말로 마성의 배 속 그 자체...

 

마치 물 속을 할퀴며 나아가는 듯한 답답함. 

허용량을 가볍게 넘긴 마력이 위 속에 처박혀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두 걸음... 세 걸음...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폐는 기능을 상실한듯이 호흡을 정지하고, 피부는 질릴 정도로 따가웠다.


 걸음,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일곱 걸음, 여덣 걸음...왔다.
형태 없는 그 눈은, 내가 아닌 베스타리누를 향하고 있었다.

 

호흡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베스타리누를 밀어젖히고 팔을 뿌리쳤다.
관절로 달리는 듯한 강렬한 통증을 물리쳐 보랏빛으로 선을 그리게 했다.

 

짙은 보라색이 허공에 명멸하며, 

눈 앞에까지 치달은 그것을 반항조차 용납치 않고 격퇴한다.
베스타리누의 눈이 당황함으로 크게 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카,카캉'


기분 나쁜 잔향음이, 귀를 찔렀다.  이것은 

철과 철이 서로 스치는 소리 만큼은 결코 아니였다.
손에 남은 감촉은 뭔가 부드러운 것을 만진 것 같은 기분 나쁨이 있었다


뭐야 이건,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거리를 좁히듯이 반보 앞으로 나오면서, 보검을 비스듬하게 고쳐 잡았다.


위협의 정체는 이미, 눈 앞에 와 있었다. 

마치 바닥이나 천장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말하듯이,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이 복도 위에 서 있었다.

 

"그런 적의를 드러내진 말아주세요

그래도 기분 좋게 미련 없이 죽을 수 있도록 조정을 할려 했는데

그거를 인간이 쳐낼 줄이야, 아 이건 칭찬입니다."

 

자리에 걸맞지 않게 명랑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뱉는 것은, 커다란 뿔을 달고 잇는 아이였다


아니, 아마도 아이라는 것은 겉모습만 그럴 것이다

그 본질이 어떤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겠지

 

그도 그럴게 그 목소리 하나하나는 묘하게 

근심 어린 어른 같아서 어린아이가 내보이는 

천진난만함 같은 것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뿔같은 형태 보면, 

인간으로부터 거리가 먼 존재인 것은 확실했다.


마성이, 실로 신기한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 인간이야, 형은 틀림없이 인간이야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솜씨인걸?"

 

 

"그래? 그럼 박수라도 쳐주지 그래?

될 수만 있다면 경의를 표하고, 길도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가벼운 농담조로 말하면서, 보검을 움켜쥔 채 더욱 반보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만으로도 내게 주어진 중압감이, 더욱 밀도를 증가시킨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이것은 분명 실제 상황이겠지

 

뿔이 난 마인이 시선을 비틀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이 정말 나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는 전혀 상관없지만 말이야

감옥장님은 너희들에게 너무 화가 나신 것 같아"

 

나와 비교해서 상당히 작은 체구가 맨손인 채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위험 같은 것은 없어 보이는 아이 밖에 보이지 않지만


막상 이렇게 대면해보면, 잘 알 수 있었다.

 

그 마디마디에서, 

마인 특유의 흉악한 의지가 넘쳐흐리고 있었다. 

눈 가에서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압박감을 내뱉고 있었고

짧은 몸 그 자체가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잇었다

 

보검을 기울이며, 곁에 있는 베스타리누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베스타리누, 아마도 귀찮은 패거리에게 눈길이 간거 같아

미안하지만, 먼저 뛰어들어가서 감옥장의 목덜미를 잡아 줄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마인이 말한 내용도 전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여기 둘 모두 발목을 잡혀버리면, 

그것은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다


지금까지 무기력하게 굴던 간수들도 

무슨 일이 있어도 요란스럽게 싸워대면 필사적으로 달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검을 휘두른들 의미가 없다. 

이쪽의 전력은 2명, 상대는 수백, 말도 안되는 싸움이 되는 건 명백했다.


그렇다면, 얼른 목적을 끝내야만 할 것이다

감옥장의 신병을 구속한다면,
상황이 어찌되든 어느 정도 교섭이라는 것도 이쪽에 유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베스타리누는 내 말을 듣고도, 그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내친 듯한 분위기마저 불러일으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루기스 님"


그렇게 말하면서 베스타리누는 전쟁도끼를 휙 돌려서

어깨에 매도록 고쳐 먹었다

 

 


해자가 뭐냐면 성을 방어할 수 있게 주위에 둘러싼 물 웅덩이 같은 겁니다

 

대개 이 물을 건너다가 적의 원거리 무기에 얻어맞는 꼴이 되기 십상이였죠

물론 겨울이 되어, 얼어버린다면 취약해져 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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