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25화 - 뱃속의 이물질 -

개성공단 2020. 5. 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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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아가씨도, 당신도 여기서 죽는 겁니다

어떤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버리는 거죠"

 

마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숙이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말 마디마다, 핏방울이 튀어오를 것 같은 악의가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강철공주 베스타리누 게르아보다도, 

고작 나 같은 걸 통과시킬 수 없다니. 과대평가가 너무 심한 것이다. 

즉시 다시 정정해 주기 바라고 싶었고

등줄기에 묘한 가려움마저 느껴지려고 하고 잇었다

 

나는 마인의 말을 씹어부수면서 그 두 눈과 뿔을 보았다.
그것들이 내뿜는 것은 불길한 녹색빛 마의 극왕은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싶어져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들은 지난 세계의 그 여정 속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재수가 없군, 가능하다면 두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그걸 시야에 담은 것만으로도, 그런 말이 속에서 기어나왔다. 

오른발을 반보 뒷걸음질 치며 백색검의 칼끝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마수란 호칭은, 사실 한 종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였다.
그저 마성의 힘을 가지고 

인류의 숨통을 조이는 자, 유린하는 자를, 다 합해서 마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중에는 학자도 학을 뗄 정도로, 멍청하기만 한 종족이 있었다


짐승의 모습을 한 것도 있는가하면, 무기질의 모습을 본뜻 것도 있고,
사악한 기운을 토해내는 녀석도 있고,  독을 뿌리는 녀석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극광을 내뿜는 놈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녀석을 시야에 넣은 시점에서 그 인간의 운명은 죽음에 가까웠고
그런 것이기에 모험자 중에서도 

이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놈이 토해내고 있는 마의 극광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아주 먼 옛날부터
마력을 몸 속에 쌓아왔다는 가장 큰 증거이며.  

그리고, 질색할 정도로 인간을 몇번이고 잡아먹어왔을 증거 그 자체였다.


그렇지 않으면, 마수는 저렇게 까지 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된 존재는, 

더이상 마수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건 사실상, 짐승의 가죽을 벗어던지고,  더욱 순수한 마성으로 변모한 것.
마체화라던가, 마의 현현이라고 불리는 존재. 

나는 무심코 입안에서 혀를 차고 있었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나는 그 후회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까 한 순간이 두 번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쾌한 예감이 등골을 덮치고 그대로 뼈에 스며든들었다


놈의 피가 철철 기어가며 복도를 발로 두들겨 검끝을 흔들었다.
형형한 극광이 나를 관통하며 빛내고 있었다.


그 꼴은 마치, 사냥감이 뱃 속으로 들어올 것을 기다리는 거미와도 같았다.

 

앞으로 다리를 뻗어선 안됀다고,  이성이 고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무턱대고 돌격하는 짓을 했다간, 잡아먹혀 버릴테니깐


물론 하지만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생명을 팔아넘길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조금만 있다가 와주면 안돨까? 도울 사람과 할 일이 있다고"

 

적어도 내가 아는 영웅이라면 이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안면을 창백하게 하는 어떠한 기색도 없이

물러나는 일 따위는 조각도 머리에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방법으로 눈앞의 마인을 베어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아아 아니, 그저 한번에 모든 것을 끝냈으려나

 

뺨이 일그러졌다. 

머리카락이 치밀어 오르고, 

심장 주위를 강하게 무언가가 내리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기에 떨어야 할 손끝이 묘하게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렇고 말고, 적어도 내가 아는 녀석은 그런 인간이였고

귀한 혼과 비길 데 없는 웅장함을 늘어놓았던 영락없는 영웅이였어


그렇다면 이제 나도 이런 곳에서 더 이상 후퇴는 할 수 없어


태양 같은 영웅을, 무엇보다도 애태웠던 존재를 이 손으로 베었단 말이야

그런 내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이다니

 

그건 곧 그 놈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 뿐일거야

아아, 내 이름을 아무리 더럽히더라도, 그것만은 사양하겠어

 

그러니까 이젠,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닥을 부술 듯한 기세로 두드려, 발목을 비틀었다.
움직인 허리가 백색검을 보다 날카롭고, 보다 신속히 끌어당겼다


바라건대 나의 영웅, 헤르트 스탠리 같은 일격을...


백색검이 궤적과 함께 공기를 단절한다. 

두 뿔의 마성, 놈의 머리를 그대로 부숴버리기 위한 일격

오로지, 마를 죽이기 위한 그것.

 

하얀 쇳덩이가 두 뿔의 머리 위로 떨어짐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식간에 눈 앞의 광경이 주홍색으로 물들였다

 


옆구리와 어깨, 아니 온 몸에 둔탁한 색의 무언가가 관통하고 있었다

 

 

 

 

 

 

*

 

 

 

 

 

 

파수꾼, 수호인, 그런 이름으로 이 땅에 매여 그렇게 불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원래 존경을 받던 칭호는 사라지고, 어느덧 불릴 이름마저 잃었다

 

뭐, 파수꾼 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름인 것은 분명했다

딱히 불만은 없었고, 어짜피 나를 부르는 건 혼자밖에 없으니 문제는 없었다


파수꾼은 신의 목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자신의 유인에 걸려들듯이 백색검을 높이 쳐들은

검사를 보며, 속으로 한가지를 맹세했다.

 

그것은 마수에게 있어서 원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맹세

 

그는, 반드시 이곳에서 죽일 것이다

그 용맹함과, 찬란함조차 느끼게 하는 굽히지 않는 정신성을 높이사서,
친히 죽여주도록 하겠디


사실상 이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월을 살아온 마수로서의 본성이, 

체내에서 하나의 그 맹세만을 속삭이고 있았다.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도리라면섯 말이다


신중함과 두려움을 방패로 발을 물리는 인간은 괜찮다.  

그것들은 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교섭이 통하는 상대다.
마수의 위협성을 외치며, 그저 힘없이 벌벌 떠는 존재다.


함정을 함정이라 알아보지 못하고, 만용을 부리는 인간도 괜찮다. 

그건 어차피 간단히 죽어버릴 수 있는 상대다.
말도 안되는 용기를 자랑하며, 적당히 죽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럼에도 용감함을 보이는 인간은 사실상 죽일 수 밖에 없다.


마수의 위력에도 굴하지않고, 그렇다고 쉽게 죽지도 않는다. 

이건, 인간 중에서도 최악의 부류다.
일찍이 숨통을 끊어두는 게 상책이다. 

그런 녀석을 살려둔 들, 좋은 일 하나 없었기에


마수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이야말로 살아남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녀석은 죽이자.  

그는 분명 마수와, 그리고 자신의 주인의 적이 될 거다.
그렇게 더 이상 살릴 이유는 없어졌다고, 파수꾼은 그렇게 판단했다

 

본래 파수꾼의 작은 신체에 있을 수 없는 피가

복도를 달리며, 마루판을 뿔뿔히 더렵혀 갔다

당연히 그것들은 흘리고 싶지 않고 싶었던 것이였다

 

하지만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피라는 것은 목숨, 영혼이나 다름없는 것.  

때로는 존재 그 자체이며,  때로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대가가 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두 뿔의 마인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  

그럼, 그에 걸맞게 그 손에는 보수가 쥐어지는 것이 도리인 것이기에.


두 뿔의 극광이, 녹색빛을 빛내며 뿜어대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자신의 육체가 준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손끝에 힘이 실렸다.


"이 감옥은 내 몸 자체다, 이 말입니다. 당신은 이미 내 뱃속인 셈이에요"


마수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 혼잣말을 하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 눈 앞의 검사를 그의 두 눈동자 속에, 비추었다.


순간 벽과 바닥에서 송곳니 혹은 뼈 같은 것이 둔탁한 빛을 띠며 솟구쳤다

그것들은 산산히 겹쳐지면서, 단지 하나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이물질을 하나 제거하기 위해

본래 끼어들지 말아햐 할 것을, 자기 배에 삼켜버리기 위해

그것들은 단지 하나의 점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성의 뼈와 이빨이 웅장한 자의 몸을 꿰뚫었다

 

여기서 반드시 죽인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그렇게 속삭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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