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26화 - 집착은 심하고, 의존은 한탄하고, 속박은 웃는다 -
눈을 크게 뜨니, 벽안이 작게 흔들리며, 몇 번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공중정원 가자리아의 여주인 엘디스는 낯선 천장을 보고
여기가 어디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적어도 가자리아의 자기 방은 아니였고
가구와 세부도 엘프가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멍하게, 엘디스는 아름다운 수정으로 착각할 눈을 움직이며,
주위로 시선을 둔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아아, 맞다 아직 자신은 괴뢰도시 필로스에 몸담고 있는 것이였다.
머릿속에서 그것을 떠올린 순간,
사고에 반응하듯이 신체의 뼈가 둔한 통증을 일으켰다.
온몸에 마디란 마디가, 전부 뒤틀려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엘디스는 머리맡에 준비된 물에 입술을 적셨다.
그럼에도 머릿속 부근은 열을 띠고 있었고, 시야는 휘청거렸다
어쩔 수 없는 대가라고, 엘디스는 생각했다.
프리슬란트의 대신전에서 일어난 일련의 행동을 생각하면
오히려 잘도 이렇게 다시 눈을 떴다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정도 였다
자신은 과거 대군주에 반기를 들고,
그리고 가슴속의 열기를 나오는 대로 휘둘러서
기원주술을 자신의 손에서 이끌어냈다.
그걸 생각하자니
그 대신전을 인생 최후의 침상으로 삼았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게 정상적인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곳에서 느긋하게 수면에 빠져 있다는 것은
바로 행운 그 자체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아냐, 혹시 불운한 것일지도 몰라
엘디스는 문득, 눈을 가늘게 뜬다.
그대로 기원주술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집어삼켜져 버렸다면,
분명 그대로 루기스의 영혼까지 휩쓸어 궁극적인 소멸을 이루었겠지.
그렇게 서로 허무 그 자체에 붙잡혀
영원히 허공을 떠도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운 일이기도 한거 같아
엘디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열고, 목구멍으로 물을 들이켰다
그것만으로 목구멍에서도 무엇인가를 깨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요 며칠, 아니 의식을 되찾고 나니 늘 이런식이었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밤도 있는가 하면
잠이 든 곳에서 등뼈가 부러지는 듯한
감각에 억지로 눈을 뜨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그 탓에 눈을 뜨게 된 걸거라고,
엘디스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심장이 강하게 울렸다.
전신의 혈류가 묘하게 술렁이며, 왠지 모르게 뜨거웠다.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알 수 없는 이 열기
그러고보니 루기스는 몸을 일으켰을까?
자신을 시중들던 하인에게선
아직 혼이 빠진 듯이 침대에 누워있다고 들었다.
그래, 아무튼 그 대신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몸을 혹사시켰다
자신의 육체건만,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서서는
과연 어디까지 가 볼 수 있을까하고, 시험해 보는 것처럼...
그러니 그리 일찍 움직일 수 있을리가 없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말이지...
엘디스는 벽안과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정령술을 발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정령갑주는
루기스의 영혼을 묶어두기 위한 색을 강하게 했지만
그래도 아직 제 역할을 잊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를 구속하고, 그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그를 알기 위한 것이다.
그와의 연결이 완료된 순간 에르디스는 이빨을 세게 깨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이 저택... 아니, 애초에 이 주변 일대에서 루기스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아
그 뿐만이 아니라,
뇌리 속에 흘러들어온 정보 속에, 정령은 명확한 이상사태를 알려주었다.
루기스에게 무언가의 일이 일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방심했다.
에르디스는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면서, 그런 생각을 가슴 속에 털어놓았다.
루기스의 성미는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쉬게 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타인에게 기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매우 둔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이라면 얼마든지 깎아내,
내던지듯이 행동하기까지 하는 것이였다.
알고 있었다.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기에 기원주술로 영혼을 속박하고, 이 손안에 굴러 들어가게까지 했다.
하지만, 말하자면 그렇기에 방심한 걸지도 모른다.
엘디스는 억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신체 곳곳이 본래 있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지금 몸을 움직여선 안됀다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아아, 알고있다마다. 하지만, 그런 건 알 바가 아니다.
현재, 엘디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실상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던 영혼이, 자신의 곁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건 분명한 잘못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찌그럭'
저택 안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그것은 뭔가를 부러뜨린 듯한 소리.
엘디스의 긴 귀가 무심코 반응한 듯 떨렸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루기스! 그 어리석은 놈...!"
엘디스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느슨하게 했다
은발의 검사이자 거인의 후예.
프리슬란트를 계승한 자의 목소리가 저택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저 여자도 그닥 제정신이라곤 할 수 없을 입장일텐데 말이다
그 목소리는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확실한 초조함에 젖어 있었다.
엘디스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음을 확신했다
가슴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노기와,
가슴속을 가득채우는 초조함과, 그것들 전부를 웃도는 욕구.
나의 감정인데도, 전혀 고삐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날뛰는 말 같은 흔해 빠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피에르트 볼고그라드의 목소리까지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 증발할 정도의 마력은 에르디스의 뺨에도 전해져왔다.
물론 당연하고 말고,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 남자니까
그런데도, 모르는 척 하며 견딜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눈 정도는 맞추고 간다면 모르려만
애초에 카리아나 피에르트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꽤 말을 잘 알아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고 말고, 루기스가 아무 말도 듣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라고 그렇게 지시한다면, 그것을 믿고 기다리는 거야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썩을 때까지, 몇 년이라도..
하지만 그것조차 없다고 한다면, 해야 할 것은 단 한 거자
엘프의 여왕으로서, 그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엘디스가 전신의 선렬한 통증을 억누르면서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카리아와 피에르트는 이미 짐까지 다 꾸리고 그곳에 있었다.
서로간에 전혀 다 낫지 않은 상처를 감싸면서도,
그 혁혁한 영혼만은 어디까지나 고귀하며 그 빛을 잃지 않는 듯 했다
그녀들 두사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운 나쁘게 마주친 건지. 하인 한명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그녀가 말하길,
루기스는 금방 몸을 돌려 돌아올테니,
적당히 편히 쉬면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인은 척 보기에도 연민에 떨면서,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며 입술을 떨었다.
그녀는 분명 우수한 하인 일것이다
보통 사람과는 동떨어진 존재감을 빛나는 인간을 앞에 두고
명확하게 그 남자의 말을 전했으니...
하지만, 그래선 전혀 의미가 없다.
계단 아래로 내려온 엘디스에게 한 순간을 던지면서도
카리아가 날카로운 입술을 벌리며 말했다
"말을 전한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지
하지만, 내가 녀석의 말을 듣는 것은, 녀석이 직접 말했을 때 뿐이다
그 이외를 듣는 귀 따위는, 나는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런 싼 여자가 되어버린 기억도 없다"
피에르트도 마찬가지로, 그 길고 화려한 흑발을 묶으면서 말을 이았다.
"게다가, 루기스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단 말야
언제나 그렇게 말해놓고선, 스스로 재앙 그 자체에 발을 내딛었었지"
그렇기에, 더이상 멈출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검은 눈이 일순간 하인을 응시했다.
하인은 그 말에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길을 터주었다
용케 그 직무를 다 했구나,
엘디스는 벽안을 빛내며, 입술을 느슨하게 했다.
자, 루기스
이번에 너는 어떻게 우리를 억누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다리느라 죽을 것 같아
만약,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그때는 간단한 이야기다.
이제 두번 다시,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들 뿐.
그것도 그거대로 좋은걸?
오히려, 황홀할 지경일거야
엘디스는 마성에 가까운 미소를, 표정에 붙이고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속으로 그 발을 들여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