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32화 - 변해가는 자들 -

개성공단 2020. 5. 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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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을 세게 걷어차며, 앞을 향해 몸을 날랐다

어깨에 올려놓았던 백검이 하늘을 베며, 씩씩하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한순간이다. 

그것으로 매듭을 짓는 것이다, 이제 시간은 더 이상 없다


도약한 기세 그대로,  백색검을 아래로 내려쳤다. 

혁혁한 극광을 방출하는 두개의 눈과 뿔을 그것들을 떼어내듯 

마수 도하스라의 정수리를 깨뜨렸다.
마수의 피가 내 뺨에 물들었다

 

방금전처럼 목을 찢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부터 턱까지 관통해, 그대로 등골까지 때려부쉈다.
동시에, 숨도 쉬지 않고 백색검을 빛냈다

 

사리는 몰라도, 목덜미가 절단되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마수이기에
대체 어떠한 장치로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한다


칼끝을 잡아당겨, 상대의 피투성이가 된 몸을 차올린 채로, 허리를 움직였다.
옆으로 휘둘러진 백색검은 

자신의 중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마수의 살을 도려내고 

그대로 복부를 양단했다

 

"이제는 신화세계가 아니야, 여기서 끝내지 그래?"

 

그렇게 바라듯이 말하고 나서 하체와 분리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도하스라의 상체를 향해 검끝을 밀어붙였다. 

살과 피, 그리고 심장을 찌르는 감촉이 확실히 손아귀에 있었다.


내 경험상 아무리 고집이 센 마수라도 여기까지 하면 대개는 죽는다.

점액으로 이루어진 마수일지언정, 조각까지 부서버리면 죽을 것이다

 

보통은, 그렇다.

 


"...끝이고 말고요, 축하의 의미에서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쾌활하게 전해진 도하스라의 목소리에,

나는 입 안에서 피를 머금으며 혀를 찼다.


마핵이 보이지 않는 걸 보아하니, 최악의 상황이다
하나의 억측이 확신으로 변했다 

생각하고 싶지만, 바로 눈 앞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이녀석은 본체가 아닌, 분신이다

 

나는 이를 세게 깨물고,  입안에 고인 피를 침과 함께 뱉어냈다.


마수 중에는 

신체를 군대처럼 소대로 쪼개는 녀석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의사를 가졌음에도, 하나의 지성과 의식을 공유했다

한 개의 존재이면서, 다수로 존재할 수 있는 괴물이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정말 있었던 건, 

그야말로 신화 시대의 이야기였을텐데. 젠장할... 


어쨌든, 일단 이 녀석은 망가졌다. 

변변한 행동은 못하겠지. 적어도 지금은 이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표정은 도저히 좋게 지을 수 없지만 말이다

 


"대놓고 그런 표정은 짓지 말라구요, 마수도 상처는 받는다구요"


도하스라는 방금전까지 보였던 마성을 완전 잃어버린 듯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잠꼬대는 꿈 속에서나 해줬으면 하는데 말야

이쪽은 말빨 좋은 사기꾼한테 속아서 가짜를 사게된 기분이라고.


그는, 입술을 가다듬고 말했다.

 

"... 당신말야, 피에 뭐라도 섞고 있는 거야?

마지막 뼈창이 잘 안 움직여서 말이야,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리 말하며, 도하스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을 몸을 휘청거리며 

건너편 복도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끝에는 도하스라의 피와 그리고 섞이듯이 쏟아진, 

내 검붉은 피가 있었다

양쪽이 흩뿌려진 복도는 본래 있을 수 없는 색이 가득했다

 

"글쎄, 시궁창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않 좋은 것만 섞여서 그렇겠지"

 

그런 뜻이 아니라는 듯이, 도하스라는 혀를 찼다. 

그 모습만 보면, 그저 다 죽어가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도하스라는 말을 계속한다. 다 알고서 행한 거냐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만, 나는 성경이 아니야, 애초에 뭘 알겠어?


"그럼, 우연히 내 피에 당신 피가 뿌려져서, 마법을 못쓰게 된거라고요?"

 

말해두겠지만, 단지 인간의 피에 능력을 못쓰게 될 만큼

나의 피는 약하지 않다, 라고 도하스라는 말을 계속했다

말투는 왠지 가벼운 것이었지만, 그 눈만큼은 진지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아주 옛날에 들은 것이 있어

마법은 이물질을 싫어한다고, 옛날부터 나는 이물질이나 다름 없었으니

네가 쓰는 마법에 딱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만약 이 마수가 자유롭게 곳곳에서 뼈창을 소환했다면

나는 곧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왠일인지 불가능했고, 

오히려 건너편 복도에서도 특정한 장소에서만 뼈창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어떠한 구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놈을 죽이기 위해선, 그 구조를 비틀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이 매개체가 될 만한 것이

녀석의 피에 내 피를 위에서부터 쏟아 붓는 바보 같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아까 한 말, 취소할게요"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물을 틈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댁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것 같군요, 제가 보증하죠"

 

나는 다가오는 몇 개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팍의 씹는 담배를 찾고 있었다


"그거, 괜찮은데

그럼 날고기 먹는 연습이라도 하면 되겠어?"

 

그렇게 어깨를 움츠리며 말하자, 

도하스라는 목구멍에서 쉰 소리를 내며 웃었다.

 

 

 

 

 

 

*

 

 

 

 

 

 

"상당히 믿으시는군요, 그 부하를..."

 

강철공주 베스타리누 게르아는 감옥장 팔로마 바사르에게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생각을 돌렸다


사지는 얼어붙은 듯이 차가웠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면 그건 아니였다.
손끝에 감각은 분명히 있었고, 

전쟁도끼에 손만 닿는다면 충분히 휘두를 수 있었다.

 

베스타리누는 피가 뒤섞인 숨결을 흘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울 수 있는 상태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겠지.


적어도, 이 정도까지 상처를 입은 것은 

베르페인에서 카리아 버드닉에게 어깨를 베여진 이래 처음이었다.
도저히 전투 진행이 가능한 상태라곤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상처를 가지고 적에게 덤빈다는 것은,  

생각없는 멍청이에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고 베스타리누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상한 일인 것이

 


평소였다면 결코 하지 않을 판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베스타리누의 안에서 행해져있었다.


"......믿는다, 안믿는다는 말이 아니야, 그저 사실일 뿐"


베스타리누의 말에, 팔로마는 한마디만 그렇게 대답했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듯한 목소리


베스타리누는 확신했다. 

이 남자는 틀림없이 그 부하를 신용하고, 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여유롭게 있을 수 가 없다.

 

마법 결계는 영구히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법사의 정신이 무너지면 그대로 끝나버린다.


그 때문에, 마법 운용은 다른 곳에서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 했다

성질로 따지면 농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 지원으로서 자신의 부하인 그 마수를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에게 파고들 빈틈은 거기다.  

 견고한 벽에 구멍을 뚫는다면, 그 남자는 스스럼없이 무너질 것이다


베스타리누는, 양탄자에 피를 물들이면서 손끝에 전쟁도끼를 쥐었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당신의 부하는 반드시 패배할 겁니다"

 

베스타리누는 영혼처럼 발걸음을 비틀거리며,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도저히 싸우려는 자의 모습으로는 볼 수 없었고

손발은 아직도 통각을 호소하며, 그 한계를 외치고 있었다

 

어차피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뭐, 철면피를 쓰는 건 누구보다도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


팔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베스타리누는 그 가슴 속을 건져내듯이 말했다.


"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고 말하고 싶겠지

간단한 일이야, 당신의 부하가 맞서는 인간은 루기스 브리간트니까"


팔로마의 눈이 미세하게 날카롭게 움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그가 패배를 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도움을 줄 원군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한걸음 거리를 좁혔다. 

이제 전쟁도끼 휘두르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걸음을 내딛었다.

 

"문장교의 수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이런 땅에 근소한 숫자로 침입할 것 같은가"

 

팔로마는 답답한 공기를 입안에서 내뱉으며 말했다.
목구멍에 엉킨 타액을 토해내는 듯 했다.

 

베스타리누는 볼을 느슨하게 했다.

 

정말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베스타리누는 생각했다.
이런 식의 말로 적을 현혹시키는 방식은 정말 싫었는데.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에 정의를 가슴에 품고 

창을 적을 무찌르는 기사 이야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했는데.

 


이래선 마치, 그를 닮았다. 

허리춤의 보검이 뜨거웠다. 마치 무언가를 강하게 외치는 것처럼...


"네, 그는 말했으니까요, 이 감옥을 지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또 한걸음, 큰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을 밟았다. 

그리고 천천히, 베스타리누는 전투도끼를 높이 들었다.
가능한 한, 위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팔로마의 이마에 무언가 땀과 같은 것이 떠올라있는 것을 

베스타리누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베스타리누의 모습에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듯 했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건가. 

그것도 뒤가 구린 성질의 것이. 

베스타리누는 피를 흘리며 미소를 짓었다.

 

 

"그 증거로, 당신의 부하는 아무도 도우지 않습니다

어짜피 루기스가 당신을 죽이러 올테니

피를 사랑하는 포학한 사람보단, 제게 잡히는 편이 나을텐데요"


그것은 분명한 엉터리 주장이었지만,  

그 쪽이 적에게 더 압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악명 따위, 마음대로 퍼지고 있는 것이니

하나 둘 쯤, 자신이 지어낸다고 해도 불평은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후, 팔로마의 눈이 크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명백한 동요

무언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허리춤의 보검이, 이전보다 더 뜨거워졌다.  

팔로마가 자신의 말에 동요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법결계의 머법사가 혼란하다는 것


베스타리누는 숨을 토해냈다


동시에 전쟁도끼를 내리쳤다, 그것은 틀림없는 혼신을 담은 일격

그것이 마법결계의 일각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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