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55화 - 으르렁 거리는 두 머리 -

개성공단 2020. 5. 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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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에 한번 막을 내리고, 잠시 텅 빈 모습을 보이는 회의장 안


성녀 마티아는 등받이에 넉넉히 체중을 가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묘한 힘이 들어가 있던 것 같았다. 

그것이 천천히,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나서,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루기스의 말은 진심인 것 같나요?

진심이라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요"

 

회의감를 전혀 숨기지 않는 그 말을 들은 것은

두개의 그림자. 측근인 안과, 가자리아의 여왕 엘디스


마티아의 말을 듣고, 두사람 모두 조금 공백이 있었다. 

안은 미간에 작은 주름을 잡고, 확실한 오뇌를 보이고 있었고

엘디스는 강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디스

엘프 특유의 긴 귀가, 자신있게 허공을 가리켰다

 


"루기스는 장난을 잘 치고, 필요하면 허언도 내뱉지

모든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그 점에 있어선 솔직히 마티아도 전혀 반론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루기스라는 인간은 분명 말을 가지고 노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성질의 인간일 것이다


그저 늘 도도한 모습으로 농담을 던진다.

 

그것이 나쁘다곤 하지 않겠지만 

그러한 인간의 말은 굳이 어느쪽이냐 하면 경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들어주는 쪽이 멍청하다고 느껴지는 일도 자주 있겠지


루기스의 말도 그랬다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말을 끊고 엘디스는 말했다. 

조각같이 빛나는 얼굴이, 말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꺼낸 것에는 타협과 허위를 용납하지 않아요

어디까지가 진심이냐고 하면, 모두 진심이겠죠"

 

엘디스의 말에, 무심코 마티아는 하얀 입김을 흘리고,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녀는 정돈된 눈썹을 찌푸리며, 어색하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역시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씁쓸한 얼굴로 시선을 돌리는 안도 아마 같은 생각일 것이다

 

루기스가 꺼낸 말이, 자연스럽게 마티아의 귀에 떠올랐다


문장교가 마수재해 토벌의 거두가 되어 마인에게 침략당한 도시를 해방한다

여러 나라의 지원을 얻어내, 갈라이스트 왕국의 위기를 구재한다

그리하여, 여러 나라에 필요한 것은 백성을 아우르는 종교이며

그 교의는 대성교든 문장교든, 무엇이 되는 상관없다

이것은 그들에게 우리를 각인시킬, 놓치기 어려운 좋은 기회다

 

본래라면, 한마디로 망언이라고 치부했을 말

마티아의 이성은 바로 어리석다고 치부하고 있었다


사실, 동석하고 있었던 문장교의 중진들은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그에 비슷한 생각을 눈에 띄고 있었다.
깊은 주름이, 의심과 혐오를 보이며 일그러지는 것을 마티아는 봤었다.

 

마티아는 작은 입술을 움직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사고를 회전시킨다.
루기스가 말한 것은 진실이든 허위이든, 회의장에서 바람직한 말이 아니었다.


안그래도, 루기스는 문장교의 일부 중진들에겐 지독히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로. 

그는 무서울 정도로 조직이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건 아무 신경 안쓴다는 듯이, 독단적인 행동을 거듭했다


조직이란 형태나, 인간의 무리를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중진들도, 그 행동 하나하나에 쓰라린 감정을 

가슴 가득히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의 행동을 영웅시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교도로 늘어나면 더더욱...


그러니까, 아마도 자신은 중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자리에선 루기스를 달랬어야 했다고 마티아는 생각했다.


적어도 이성을 중시하고, 타산을 가지고서 판단을 내리던 

이전의 자신이라면 그랬을거라고 마티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조직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선, 그쪽이 유익하기에.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아무래도 그건 옳지 않은 일로 마티아에게 여겨졌다

그래, 루기스의 말이 어디까지나 바르게 느껴졌어


그도 그럴게 마티아는 봐온 것이다. 

오만불손하다고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서 수많은 일을 이루어낸 그를. 

사실상 그의 발자국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곳까지 뻗어있었다.

 

그러니까, 마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다면, 그건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하고
그렇게 여기고, 성녀로서 잘못된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입술을 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 중진들도 비슷한 생각이 있었기에

비난을 가죽으로 감싸, 삼키고 말았던 것이다

 

"또, 장로들로부터 불만이 무거워지겠군요"

 


안이,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한 불만의 소리는 마티아에게 직접 전해지는 일은 적었다

하지만 측근의 안의 목소리는 어딘가 원한을 품은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자 루기스의 독단의 폐해를 

가장 받고 있던 건 안 일 수도 있는 거였나
그런 것 치곤, 아무래도 그와도 잘 어울리고 있는 듯하지만


마티아, 그리고 안이 몇번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엘디스는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인간이란 질투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을 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군

자신들을 영광으로 몰아넣고 있는 영웅 한 사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니, 이젠 병적으로 보일 지경이야."

 

엘디스가 뾰족한 입술에서 내뱉은 말은 

마티아나 안 개인에게 향한 것이 아니지만
억누를 수 없는 혐오감과 한탄을 담은 목소리였다.

 

인간은, 금방 자신에게 상처가 있었던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과거 고통에 몸부림치던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것을 제거해 준 인간을 규탄해 내는 것

영웅과 그렇게 이름 붙여진 이야기의 상당수는

비극에 그치지 않겠느냐고 엘디스는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나, 아니 엘프라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야"

 

마티아가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가로막았다. 

긴 머리카락이 날리며, 허공에 흔들렸다.

 

"그는 인간입니다, 엘프들에게 먹힐지 모르겠군요"

 

벽안과, 마티아의 커다란 눈동자가 일순간 교차했다. 

서로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또 무슨 주장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고, 물려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초 간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고, 그저 날카로운 시선과 호흡만이 난무했다.


그제서야 안이 입을 열었다. 

심한 피로감 같은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지금은 영웅님의 처우가 아닌, 그 생각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음 합니다

 

최대한 적당한 말을 선택한 거겠지. 

평소의 안을 생각하면 그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딱딱하고, 둔탁했다 

마치 목구멍에 무언가 집어넣어진 것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우선 양자의 시간을 움직이는 것에는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두사람은 어느 한쪽이 먼저랄것도 없이 시선을 돌리고, 마티아가 말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결론은 대충 이해가 갈 것 같군요"

 

마수재해 토벌의 기점... 이라고 그가 말한 것이였다. 

그것을 어떻게 해서 이룰 것인가.
수단은 다양하지만, 루기스가 선택할 것은 뻔했다.

 

당연한 것처럼, 자신에게 가장 피해가 가는 것을 택하겠지


마티아만이 아니라, 안도, 그리고 엘디스도 이해하고 있었다.  

루기스가 가진 최대의 나쁜 버릇은 그것


자신의 몸을 반드시, 희생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라도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최근에는 드디어 자신이 말하는 것도 귀담아듣게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관리는 그의 사고 전체까지 속속들이 미치지 못했다.

 

아직이다,  아직도 안된다. 

지금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지면, 또다시 그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럼, 어찌해야 좋은가. 

관리가 그의 구석구석까지 미치도록 꼼짝 못하게 하면 됀다.


마티아의 사고 끝부분이, 하나의 결론을 내려던 순간이었다.


엘디스가, 중얼거렸다.


"성가시단 말이지, 루기스는 우리 같은 건

얼마든지 손바닥으로 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자신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는 거겠지"

 

그리 말하면서, 마치 전혀 화나지 않은 듯한 뉘앙스로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벽안이 기묘하게 흔들리면서, 엘프 특유의 아름다움을 뺨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겠군.

 

벽안 속. 어디까지나 깊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엘프의 감정 떠올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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