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사형수 21화 - 펄펄 끓는 투지 -
에어 하키에서 사투라는 말을 쓰는 건 처음일지 모른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면 양학
반대로 약하면, 굴욕
비슷한 실력 차라는 것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즈쿠와의 실력은 완전히 동등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그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반면
그녀 또한 나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점수가 났는가 하면, 곧바로 점수가 먹혀버리는 것이였다
10점 선승제로 시작한 승부를 가른 것은
우연한 방심 때문이였다
...라고 쓰면, 마치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 였던 것 같지만
아니, 손에 땀을 쥐었던 것은 사실이였다
문제였던 것은 방심했던 것
스매싱의 순간에
그녀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넋을 잃고 바라본 것이였다
"이겼다!"
두 손을 움켜쥐고, 기쁨을 드러내는 시즈쿠
이렇게 데이트를 하고 있으니, 정말 여자얘 같았다
도저히 동물에 이름을 붙여 자유자재로 조종하거나
미사카기와 유우네의 뼈를 직접 작살낼 만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사형수
안타깝게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꽤 즐거웠어, 고마워"
"뭐, 그저 평범한 데이트일 뿐인데요"
"그래? 언제 신분이 들통날지 모르는 스릴 있는 데이트인데
아, 너는 보통 데이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타입인가?"
"아니에요! 보통인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 시즈쿠의 여자같은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색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니까 OO스럽게 행동 할 것이고
여자니까 OO스럽게, 나이가 들었으니 OO처럼
어려보이니까 OO같이 행동할 거라고 말한다
무슨 픽션도 아니고 OO이란건 있을 수 없다
현실 세계는 소설이 아니다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자신의 가치관 대로, 세상을 맘대로 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시즈쿠를 색안경으로 보고 있었다
사형수라는 색안경이 그녀를 고정된 모습으로 보고 있던 것이였다
나도 원래는 일반인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형수는 비정상
가치관에서 행동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이젠 아무 생각이 없다
이제까지 숨겨주면서, 동거 까지 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시즈쿠를 좋아하지만, 그녀는 아직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유우코의 발언으로 편견이 생겼을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웃는 얼굴엔 어떠한 다른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에어하키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나나나기 시즈쿠는 비정상이 아니다
주저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정체불명의 특수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뿐
그녀의 감성은 영락없는 보통 사람이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즈쿠는 쑥스러운 듯, 볼을 긁었다"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들으면, 좀 부끄럽다고 할까
그렇지만... 굉장히 기쁜 걸"
"네?"
하키 게임장에서 벗어난 우리는 전체를 둘러보며,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앞장 서서 걸었던 나였지만
바깥 세상이 신기했던지, 이번엔 시즈쿠가 앞장 서서 걸었다
"내가 붙잡혔을 때는, 아무도 나를 그렇게 봐주지 않았어
사람들은 아주 나를 안 좋은 눈빛으로만 봤지"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이였다는 건가요?"
"쓰레기라기 보단, 괴물이랄까
내가 있던 마을에서도 그랬어
아무도 나를 그렇게 봐주지 않았어
보통 여자라는 말을 들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웬만해선 시즈쿠도 희귀한 인간이였다
이런 미인을 상대로 여성 취급을 하지 않다니
아마쿠무라는 도대체 어떤 마을이였을까?
"있잖아"
시즈쿠는 나를 되돌아 보며, 벽으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내가 도망갈 길을 막듯이, 한 팔을 누르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었다
"내가 만약 보통 여자라면, 평범한 행복을 좇아도 되는 걸까?"
"...보통 행복이라뇨?"
"보통 말이야, 보통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것을 마시고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새서
좋아하는 사람과 아이를 만드는 거야
그것이 나에게는 보통 행복
아무도 용서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말야"
심장이 뛰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만약에, 유우코에게서도, 경찰로부터도 도망칠 수 있다면
그 때는... 이 나에게 보통 행복을 주겠어?
쭉... 쭉 갖고 싶었어"
내가 대답하려는 순간
그녀의 집게 손가락이 내 입술을 눌렀다
"아직 대답은 하지 말아줘
길게 생각하도록 해, 초조하게 있지는 말고 말이야
자, 다시 데이트를 계속 이어나가볼까?
하고 싶은 게임은 많이 있다구"
한바탕 게임을 하고 놀자
시즈쿠는 만족했는지, 오락실에서 나오기로 했다
물론 손잡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것이 이 데이트의 핵심이였기에 말이다
"그럼 다음엔 어디로 갈까?"
시각은 12시가 조금 지날 때
세 시간에 넘도록 놀고 있었다니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고 있었는 소리가 되었다
체감으로는 겨우 한 시간 지났나 싶었더니
오히려 세 배가 넘은 시간을 착각했다는 이야기였다
체력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피로라는 개념조차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잠깐 점심 식사하러 가실래요?
돈이라면 제가 갖고 있어요"
허언벽이라고 불리기 전에 받아두었던 용돈이 있었다
"아, 좋아, 어디서 먹을까?"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어요
거기서 먹자구요"
데이트를 해본 적도 없던 내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 하면
언제나 여자애들이 들려오는 소리를 귀담아두었기 때문이였다
"생각하니, 집에서는 네가 갖다 준 밥을 먹기만 하다가
외식은 또 처음이내"
"저녘에 남은 음식이나, 제가 대충 만든 음식만 내놓아서 죄송해요"
"아냐, 나는 전혀 상관없어
하지만 이러니까 꽤 신선하네
자리는 마주보며 앉아야 할까?"
"네? 왜요?"
"넌 아무래도 내 신체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래
대화하기도 편하니까, 너로서는 대환영이지 않니?"
시즈쿠는 나의 시선을 간파한 듯
유혹스럽게 장난을 걸어왔다
부끄러우면서도, 사실이였기 때문에
뭐라 간파할 수 없었다
"...부탁드릴게요"
"솔직하구나
솔직한 것은 좋은 일이야
그래, 이러니까 너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어"
히히히히, 하고 히죽거리는 시즈쿠
그녀가 사형수라서 내게 뭔가 숨기고 있다고 해도
이 미소만은 거짓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