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75화 - 감옥 속의 공주님 -
"너희들이 충고를 듣지 않을 줄은 알았어
신은 왜 너희같은 인간을 만드셨는지 원"
짜증을 내는 듯한 목소리가
귓전을 웅웅거렸다.
목소리에 반응해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어깨와 손에서 살을 에는 통증이 스쳐갔다.
반사적으로 고통을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시야에 비친 것은, 아마도 어딘가의 천장.
깜끔하게 다듬어진 돌벽돌의 연결을 볼 수 있었다.
그때서야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지, 여기는?
기억은 대강 있었다.
왕궁 앞, 엘프의 군사들에게 둘러싸인채, 화살을 맞았다.
그 자리에서 목이 베일 줄 알았는데,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은 감옥에 갇혀있다는 건가?
카리아나 피에르트는 어찌 됬을 지 알 수 없고,
무사하길 기도 할 수 밖에 없다
의식을 차려서 인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폐가
공기를 흡수할 때마다,
손과 어깨가 일그러지 듯 아파왔다.
"이봐, 일어나서 약은 직접 먹을 수 있겠지?"
아직도 어렴풋한 시선 끝에
하나의 얼굴이 드러났다.
단정하고 인형처럼 보이는 그 얼굴...
엘프 공주, 파괴자, 광란자 라고도 불리는 엘디스
그 여자를 보니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왜 이 녀석이 여기 있는 건가
물론 여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가 가까이 있는 듯한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분명 저승사자와 만담을 나누고 있어야 하는데"
침대에 누운 채, 입술을 떨며 말했다.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내가 누워 잇는 침대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침대였다.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쉰 듯한 소리가 귀에 들렸다.
"안심해, 너는 적어도 지금은 죽지 않아.
인간 나라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내 입에 환약 같은 것이 혀에 박혔다.
이건 혀를 마비시킬만큼, 지독한 맛이 몰려왔다.
"진통제야,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 얌전히 먹어둬"
그러면서 엘디스는 침대 옆에서 일어나
천천히 떠나려고 했다.
머리는 혼란으로 가득찬 나머지. 사고는 무너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진통제는 확실히 천천히 몸의 감각을 없애고 있었다.
아픔도 조금만 있으면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엘프의 공주나 되시는 분이 나를 간호한 것인가?
공주는 그런 성격이 아닐텐데
저 공주는 인간에 관한 일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특히 나 같은 미천한 사람은 애벌레 정도로 인식한다.
그 공주가 마음에 두고 손을 잡는 것을 허락한 사람은
딱 그 자신 혼자 뿐이였다.
공주가 떠나려고 하자,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어디있고, 너는 왜 나랑 있는 거지?"
그 밖에도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 보았다.
엘디스는 약간 불만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여기는 가자리아의 특별감옥이야.
딱히 정해진 이름은 없고, 그냥 탑이라고 불러
그럼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대강 알겠지?"
그건 어딘가 자조스러운 말투로,
엘프의 공주라는 칭호에 비해 어울리지 않았다.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이 탑에 수감 됬으니까 말이야
잘 부탁해 인간"
*
탑, 이라고 불리는 감옥안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감옥이라 부르기에 너무 사치스러웠다.
침대 말고도 가구 하나하나가
서민에게는 상상도 못할 물건들이였다.
하루에 세번 나오는 식사도,
감옥의 식자라기 보단, 너무나 사치스러웠다.
게다가 엘디스의 모습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감옥 자체도 묘하게 넓었다.
옥지기들은 엘디스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았고,
그녀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왜 공주가 감옥에 갇혀있단 말인가?
설마 내가 아는 공주가 아닌가?
그녀가 공주가 맞더라도
나는 왜 그녀랑 갇히 수감되어 있단 말인가?
이러한 것을 엘디스에게 물어도
처음의 의문에 답해 준것 이외에는,
말을 빙빙 돌며 답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감추려고 하기 보다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려고 보였다.
"그럼 오늘도 얘기해봐,
어제는 니가 마수에 죽어가려던 이야기였지?"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대개 이런 시시한 이야기 뿐 이였다.
엘디스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눈동자를 고양이처럼 반짝이며, 항상 침대에 걸터 앉았다
여느 때처럼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꺼내자,
엘디스는 익숙한 솜씨로 나에게 약을 먹이고
붕대를 다시 감기 시작했다.
약간의 상처에 통증이 갔지만,
먹은 진통제 덕분일까, 통증이라고 해도
약간의 둔한 감이 있을 뿐이였다.
이것은 헌신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그냥 그녀가 심심해서 하는 것 뿐이였다.
이 감옥에서 그녀가 하는 일 이라곤,
의자 위에서 책을 읽든지,
나와 이야기를 하든지 정도의 것 뿐이였다.
이따금씩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알 수 없는 행동도 하였는데,
엘프만의 의식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엘디스는 여전히 남성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남자고 그녀가 여자라도 해도
그녀에게 무언가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세상에 둘 도 없는
미모를 가진 여성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지난 세계의 그녀가 떠올라서,
그녀를 바라봐도 나오는 건 구역질 뿐이였다.
아무튼 이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매일 먹는 식사, 좋은 침구,
누구에게도 꾸중 받지 않는 나날이 계속 되었고
이것은 마치 나에게 천국의 삶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생활이 영원할리는 없겠지
'쿵, 쿵'
그 작은 노크 소리가 평온을 깨뜨렸다
"공주님, 실례하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귀에 익은 느낌이였다.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인데...
"핀께서,
공주님의 상태를 알아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였디.
그 말에는 영락없는 성실함마저 느껴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침대 옆에 서서 무릎을 꿇었다.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생활에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죄송합니다. 저의 힘이 모자라서
공주님께 이런 불편을 끼치다니..."
그녀는 내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띄엄띄엄 겹쳐 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게 그 말을 듣다가,
도중에나 겨우 깨달았다
아, 이 여자는 나랑 엘디스를 착각한 것 같은데...
내 이마에 차가운 땀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