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69화 - 귀환 -

개성공단 2021. 4. 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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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교 북진

 

 

 

그것은 대마 제브릴리스가 출현한 후

최초의 다른 세력을 향한 대규모 군사적 행동이였다고 기록된다

문장교병 7천여명, 가자리아의 엘프병 6백여 명

타용병 등을 포함하며 총 8천의 병사

 

두 세력은 동맹군이 되어

갈라이스트 왕국 동부 국경, 오거스 대하를 넘었다

 

때는 폭설의 시대

문장교의 성녀 마티아, 공중정원 가자리아의 여왕 핀 엘디스

두 맹주를 내세운 동맹군의 행군은 지독히 열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의 눈이 땅에 녹아 진흙이 되고

진흙은 신발을 무겁게 한다

살을 에는 추위만으로 병사들에게는 중대한 일

한기에 몸을 맡기면 그저 그것만으로도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시체가 될 것인가

 

때문에 많은 국가 및 귀족과 영주들은

폭설의 시대엔 파병 따위는 하지 않기 일쑤였다

병사의 소모가 심해, 어딘가를 공격하는 것 따위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군인으로 북진을 결단한 성녀 마티아

그리고 여왕 핀 엘디스의 속셈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가설이 오고 갔지만

아직 정리된 정설은 없다

 

무엇이 계기이며

무엇이 이들의 등을 떠밀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명

 

 

문장교 북진

그 목적지는, 갈라이스트 왕국 왕도 아르셰

 

 

 

 

 

 

*

 

 

 

 

 

허공에 펼쳐진 커다란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갈라이스트 왕국 것과의 비슷한 틀에

세개의 창, 그리고 옷감이 은은한 냄새를 뿌리는 걸 보니

거의 사용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문장교나 가자리아 깃발이 뒤섞인게

묘하게 어울리는 것은 색상 덕분인가?

 

바로 옆에서 카리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은색 눈이 의아한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바사르가의 깃발을 들 줄이야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군, 문장교도 말야"

 

 

적의 깃발인데 말야... 라고 카리아는 말을 이었다

 

그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보나

깃발이란 의미는 갈라이스트 귀족에겐 큰 것일 것이다

 

적어도 남의 깃발 아래서

칼을 휘두른다는 것은 심히 불편한 일인듯하다

 

솔직히 그런 정서는 잘 모르겠다

깃발은 그저 깃발일 뿐, 거기에 의미가 들어가있다니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 것이였다

 

이것이 바로

귀족으로서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저 빈민으로 태어난 사람의 차이라는 건가

별로 부럽지는 않은 차이지만 말이다

 

 

나는 입 안에서 말끝을 굴리며

뺨을 느슨하게 만들고 대꾸했다

 

 

 

"팔로마의 할아범이 흔쾌히 내주었지

모처럼이니 좀 쓰는게 어때?"

 

 

흔쾌히 내주었다... 좀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에게 물었고, 그는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계약은 성립이다

가혹한 일인지는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는 한번 내 신변에 참담한 위해를 가했고

그렇다면 한번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용서해줄 수 있겠지?

 

 

 

이를 드러내고

입가에 물을 머금었다

물은 이미 액체가 아닌 고체라고 생각될 만큼 얼어있었고

내 몸을 차갑게 식히기 일쑤 였다

 

 

 

"게다가 카리아, 적이라니 소란스러운 소리 좀 하지 마

우리들은 단지, 그들에게 손을 내밀러 가는 것 뿐이라고?"

 

 

 

우리는 거칠게 남의 나라 땅을 짓밟자는 게 아니고

 

갈라이스트 왕도의 함락 소식을 듣고

가슴을 아파하며, 구원에 나설 뿐이라는 것이였다

그 배경으로서 바사르가의 존재가 있었다

 

적어도 표면적인 면에서는

마티아나 엘디스에 의해 그런 명분이 있었던 것이였다

 

카리아는 내 말을 듣자

역시 어이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허리께에 있는 붉은 색의 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말이야

주모자인 네놈은 구세주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냐?"

 

 

 

나는 나도 모르게 뺨을 찌푸렸고

두 손을 들어 그것만은 봐달라고 그렇게 말했다

여하튼 그 호칭이 적합한 사람은 따로 있었고

나 따위에겐 그런 짐은 너무나도 무거웠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실제 목적은 전혀 달랐다

사람을 구하다니 가당치도 않다

 

목적은 갈라이스트 왕국을 발판 삼아

왕관을 문장교 수중에 굴러 들어오게 하는 것... 그것 뿐

 

내가 괴뢰도시 필로스에서 내뱉은 큰소리는

대부분 마티아, 엘디스, 그리고 필로스 트레이트에 의해

이리저리 변형되었다

 

 

바사르 가문이라는 명분

필로스에게 협력적인 귀족의 영지를 행군로로 삼는 것을 묵인

보급로의 확보, 주변 각국에서의 활동.. 그렇게 병사의 준비

 

이를 위해 뛰어다니는 이들은

아침과 밤의 경계선 조차 잊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당연히 나도 몇번인가 그녀들에게 개입하려 했지만

교양이나 지식이라고 하는 면에서 말하자면

그녀들을 당해낼리 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교육의 차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슬픈 거다

 

 

 

"하지만... 용케도 마티아와 엘디스에게 승낙을 받았네

무엇이든 걸려 넘어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게 행군이라고 생각하는데"

 

 

 

피에르트가 검은 머리를 흔들며

어딘지 딱딱하고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긴장감과 그리고 얼마 안되는 아득함을 숨긴 말이 있었다

 

그 말투는 비관적인 것이 아닌

오히려 훨씬 이성적인 말투였다

 

아무리 필로스에게 협조적이라고 해도

갈라이스트 왕국의 일부 귀족들과는 완만한 편이 아니다

이 형세가 무너지면, 우리의 등에 활과 화살을 쏘아댈 것이다

 

덧붙여 폭설 속의 행군은 최악에다 최저다

한 나라의 군세가 마수의 대규모 무리에 습격당해 반파된 일은

과거 얼마든지 있었다

 

 

왕도를 함락시킨 마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 명확한 정체는 불명

소규모 무리라는 정보는 있지만

나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려되는 요소는 가볍게 봐도, 잡초처럼 우거진데

이쪽은 한번 만 잘못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주위는 모든 것이 적... 마치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였다

 

만일 후세에 사람이 살아 남아서

역사학자 따위가 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군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건

처음 갈루아마리아를 함락시킬 때부터 똑같다

게다가 의외로 직접 해내려고 하면

안되는 일이 없는 법

 

어쨌든 문장교는 어짜피 약한 세력

혼란을 틈타 한 두 도시를 강탈하는 것만은 의미가 없다

어짜피 대재해라는 엄청난 한 방에 파괴되버릴 것이다

 

지금 한 걸음 물러나 연명을 한다 해도

그저 서서히 솜으로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날들이 계속 될 뿐

난 그런 것은 매우 질색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것을 잃거나

모든 것을 손에 쥐게 할 수 밖에 없다

 

 

뭐 어때?

그 첫번째로 일단 왕관을 손에 넣자

나는 피에르트의 검은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미쳐 돌아가는 폭풍우 속에서도 살 길이 있을 거야

뭐 어떻게든 잘 되겠지"

 

 

 

후세의 음유시인이 나에 대한 시라도 지어준다면 좋겠군

...그렇게 덧붙이면서 나는 말을 마쳤다

 

 

 

은발이 옆에서 흔들렸다

그녀의 뺨에는 깊은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상상의 공포는 눈 앞의 공포보다 훨씬 무서운 법

하지만 안심해, 필요하다면 네가 원하는 영광을 모두 얻어주지"

 

 

카리아의 말에 반응하듯

검은 눈이 옆에서 강하게 튀었다

피에르트는 언성을 높이듯 입을 열었다

 

 

 

"글쎄, 차라리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난 상관없어

루기스는 어디를 가든 루기스잖아?

영광과는 또 다른 거라고, 카리아?"

 

 

얼마 안되는 사이

숨이 막힌다고나 할까, 두 사람 사이에 내가 있기 때문인지

묘하게 말에서 가시를 느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어의 송곳니가 오가는 것은 처음이였다

 

뭔가 두 사람 사이에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정을 드러내는 무언가가 어딘지 모르게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잠시 말 없는 시간이 지나가다가 문득 시선을 들었다

그 앞엔 나지막한 언덕이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뭔가 그립군

일찍이 몇 번이나 오간 적이 있는 언덕이야

 

이제서야 향수 같은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몸의 중심이 따듯해지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감정이 치밀어 오는 이 감각

 

 

솔직히 나에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군

이제서야 돌아왔다

갈라이스트 왕국으로...

 

 

 

 

원래는 카리아를 갈루아마리아로 보내고

그대로 돌아올 생각이였지만

무엇이 이렇게 뒤틀리게 만들었을까?

 

그래... 나쁘진 않은 여정이였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뜨거운 숨을 내쉬고

동시에 실눈을 떴다

그리고는 시선을 강하게 올리니

 

옛 언덕 위에

여러 명의 병사들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보검에 손을 갖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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