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4화 - 세 세력 -

개성공단 2021. 4. 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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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아르셰 남쪽에는 

왕도를 바라볼 수 있는 성채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 보루는 국가의 위난을 대비해 있었으며

평시에는 국군의 훈련장, 주둔지로 사용되어 왔다

그 규모는 매우 컸고, 무너지지 않을 철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큰 돈과 인력이 크게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왕도와는 다른 의미에서 갈라이스트 왕국의 위엄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였다

 

하지만 이 성채가 최전선이 될 거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라이스트 왕국이 이렇게까지 

내몰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실 건축왕이 성채를 건축한 이후

적을 방어할 목적으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최초의 군사적 이용이

본래 지켜야 할 왕도로의 진군 준비라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다

 

 

 

창살이 걸린 창문을 통해

먼 곳을 바라보며, 성녀 마티아는 성채 안으로 드나들었다

완전히 식어버린 석조의 내벽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서로의 조건을 수락한다면, 전열을 같이 하는 것

좋습니다, 이견은 없습니다. 문장교 성녀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평온한 맹세의 말이 방 안에서 새어나왔다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방에는 이상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문장교에 공중정원 가자리아

그리고 갈라이스트 병단

이 세 세력과 그에 준하는 대장들이 마주보며 말을 나눴다

 

본래는 실내가 아닌, 전쟁터에서 만나야 할 사이여서 그런지

이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너무나도 불편한 나머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어색해지는 듯 했다

 

 

마티아의 말에 눈앞의 노장군이 가볍게 눈을 깜빡이며 턱수염을 흔들었다

그의 표정은 묘하게 읽기 힘들었다

전력 증강을 기뻐하는 것인가

아니면, 본래 적대적인 존재와의 협동에 불편함을 표하는 것인가

 

마티아는 그 모습을 눈으로 응시하며, 옆의 엘디스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약속하려는 것은 3자 공동전선

어떤 형태로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이 자리를 그대로 깨져버린다

 

엘디스는 입술을 집게손가락으로 만지며

뭔가 생각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마티아의 심장이 급히 뛰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서 뭔가 뜻밖의 말을 꺼내는 게 아닐까

마티아는 커다란 눈을 가늘게 뜨고, 엘디스의 아름다운 입술을 바라보았다

 

잠시 사이를 두고 엘디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저도 상관없어요

가자리아의 여왕으로서 공동전선에 합류하겠습니다

루기스가 응하는 이상, 저도 싫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어딘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 같은 것이

엘디스의 말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또, 주위의 공기를 삐걱거리게 했다

 

엘프라는 것은 원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자들

한번 가슴에 품은 감정은 결코 버리지 않는 성질이였다

 

갈라이스트 왕국

나아가서는 대성교는 일찍이 엘디스의 아버지의 목숨을 잃게 만든 원인

아마 그녀는 그 일을 결코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엘프의 감정에 풍화란 단어는 없기에 말이다

 

엘디스의 뭔가 막혀 있는 듯한 시선을 받고

노장군 리처드 퍼밀리스는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저도 흔쾌히 받아들이지요

마인이 마성들을 거느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눈은 하지 말고, 일단 사이좋게 지내죠, 여왕 폐하"

 

 

리처드는 노회함을 그대로 붙인 미소로 엘디스에게 말했다

엘디스 역시 뺨을 치켜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형형하게 푸른 눈을 빛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인간의 사이좋게라는 것은 고작해야 10년, 20년의 일

우리가 보기엔 눈 깜빡할 새 같은 거거든요"

 

 

 

서로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주위 공기에는 그대로 금이 갈 것만 같았다

 

여기서 손을 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은

모두 각각의 이익을 위해서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상대를 믿고 있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다세력에 의한 동맹이란 이런 것이였다

 

위난에 빠졌다는 이유로는 증오라는 불을 끄긴 어렵다

인간이나 엘프나 모두 똑같은 것이였다

 

그런데도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적어도 평시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는 법

 

마티아는 가슴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들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온건하게 끝났으면 좋겠는데

말 한 마디 주고받는 것 같지고, 칼 빼들려고는 하지 말라고"

 

 

 

마티아 옆에서 루기스는 질린 듯 담배를 물고 어깨를 움츠려뜨렸다

그는 답답한 공기를 별로 좋아하는 성질이 아니였기에 말이다

 

루기스와 리처드

그들이 내뱉는 말을 나란히 들으면

마디 마디에 차이가 있지만, 뭔가 닯았다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어린 시절 사제지간이였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마티아는 루기스의 몸짓에서 가까운 것을 리처드에게서 감지했다

그가 바로 루기스의 태도를 마련한 사람이겠지

 

문득 가슴이 출렁였다

단단한 가시를 삼킨 느낌이 마티아에게 있었다

 

리처드는 루기스에게 응하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잘 해야 한다고, 지독하게 타이르지 않았었나, 벌써 잊었어?"

 

 

 

다시 마티아의 눈이 반응을 일으켰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가슴 속을 기어가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더 무게를 더해갔다

 

루기스든, 리처드든 모두 적장, 적들에게 말할 태도가 아니였다

 

갈라이스트측 부관이 조금 위험을 포함한 표정으로

리처드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 증거일 것이다

 

 

본래는 그러한 태도에 관해

조금은 루기스에게 말해야 할 것이고

갈라이스트측을 견제해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마티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였다

루기스와 리처드가 몇 차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느껴지는 것은 혐오도, 분노도, 증오도 아니였다

 

마티아는 그저 부러움을 느꼈다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강하게 가슴을 치고 있었다

 

루기스가 이런 편안함을 보이는 자가 얼마나 또 있을까

적어도 마티아는 리처드를 포함해 둘 밖에 모른다

 

또 한 사람은 그의 양부모인 나인즈

그녀에게 자신과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어조로

말을 건네던 루기스의 모습에 

처음에는 뺨을 일그러뜨리고 이를 깨물곤 했다

 

 

 

그걸 보고 마티아는 생각했다

루기스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관없이

항상 주위의 인간을 경계하고 있다

언제 등을 찔릴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거야

 

그것이 리처드나 나인즈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편안해 보이는 안락함을 동반하여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이 너무 슬펐다

너무 비참해... 마티아는 살짝 눈물을 머금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말이다

내 심장이 다시 한번 강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부러운가

그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다니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기분 좋고 훌륭한 것인가

 

 

 

그의 사상을 만들고, 그의 행동을 교정하여, 그의 정신을 조율한다

자기 색깔로 다른 사람을 물들이는 것... 

교육이란 크든 작든 그런 의미를 지니는 바였다

 

만약 무구했던 그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면

그의 어느 것 하나 하나 짚어서 가르쳐줄 수 있었다면

이처럼 마음이 들떠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아아, 정말 부러워

 

 

마티아의 눈동자가 크게 진동하며, 리처드를 응시했다

한 순간, 마티아는 성녀로서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로

가슴에 하나의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럼 왕도 아르셰 공략... 나아가 주둔하고 있는

마인의 목을 베기 위한 전선을 구축합시다

리처드 대대장님,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시겠습니까?"

 

 

 

리처드는 마티아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격자 달린 창밖을 가리켰다

 

 

 

"먼발치에서 보는데, 꽤 잘보이지 않나?

아니...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겠지만"

 

 

 

창밖으로 왕도 아르셰의 대문이 보였다

문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막 열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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