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5화 - 귀로 느끼는 재앙 -
왕도 아르셰가 대문에서 내보낸 것은
마성과 그들에게 이끌리는 사람들 무리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들의 외형은 다양했다
모든 신체에 상처가 있었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병사였다
왕도를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창을 휘두르고 방패를 앞세운 자들
그 가운데 불행히도 죽지 않고 사로잡힌 자들이 바로 그들이였다
주위를 감싸고 그들을 거느리는 것은 마성
그것들은 인간이 바라볼 수 있는 만큼 컸다
몸집이 작은 것조차 성인 남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였다
인간들 모두 확실한 예감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본보기로 머리를 깨뜨려지고, 심장이 찢긴다
어쨌든 마성이 데려간 동포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긴장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싶었다
누구나가 그런 생각을 안고 있었지만, 통곡하는 자는 없었다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모두 갈라이스트 왕국의 병사
그 중에서도 끝까지 걸음을 멈추고, 마성에 맞선 자들이였으니 말이다
그것은 그들의 자랑
인간의 긍지라고 할 수도 있었다
차가운 죽음의 예감이 가슴을 짓눌러도
존엄의 등불만으로 그들은 꼿꼿이 서 있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긴장의 끈이 튕겨졌다
심장이 필요 이상으로 온몸에 피를 흩뿌려
묘한 열기를 지닌 숨소리가 나오게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걸 어떻게든 생각하지 않으려 의식하고 있었다
선두를 걷는 마성
코볼트가 고양이의 얼굴을 기묘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옆에는 옅은 빛깔의 요정 같은 것이 날고 있었다
"이게 벌써 세번째야, 이제 싫증이 날 것 같군, 다시 한 번 묻겠다"
병사들에게 마성이 지성을 보이고 말을 짜내는 것에 적잖은 놀라움이 있었다
포로가 된 사이에 몇 차례 겪은 일이였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 얼굴이 목소리를 내는 꼴은 악몽이라도 꾸는 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코볼트 곁에 있던 요정이 둔탁한 빛을 빛냈다
"지금 우리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마인님께서는 너희들을 용서해주겠다고 말하셨다
자 어떻게 할 것이냐?"
코볼트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스스로 물어보면서도 마치 대답엔 흥미가 없다는 듯 말이다
질렸다는 것 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겠지
사람이든 마성이든 여러 번 같은 장면을 보게 되면
익숙함과 동시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보고 듣는 것은
코볼트에게 있어선 세 번째의 일이였다
선두에 서 있던, 비교적 몸집이 큰 여자가 말했다
"거절한다, 까불지 마라
너희들이 조국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마수 따위... 곧 국왕께서 너희들을 처치하러 올 것이다!
그때 구걸하는게 누가 되는지 두고나 보자!"
큰소리치고는 고급적인 말투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당당한 말투였다
코볼트는 동공을 크게 하더니
"그렇군, 참으로 용감하구나, 기개도 있어
하지만 그런 인간도 얼마안가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하던 걸
너는 어떤 행동을 보일까?"
고양이 얼굴이 여자의 눈 앞에서 조그맣게 이빨을 드러냈다
위협이 아닌, 그저 미소를 지었을 뿐이였다
"하나 알려주지
너도 다른 얘들도,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닌
그저 도망치다가 살해당한 걸로 되어있을 것이다
적어도 안에 있는 놈들에겐 그렇게 전해지겠지
그 벌로 너희 가족은 모욕당하고 다른 인간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를 원망하겠구나 하하하"
여자, 그리고 주위의 병사들이 시선이 강해졌다
코볼트는 이런 시선이 몸서리칠 정도로 좋아졌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각오가 뿌리채 흔들리는 모양 말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그들의 가족 대부분은 아직도 왕도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지 못한 가족을 죽을 것이다
살해당할 것인가, 노예가 될 것인가
함락된 도시의 말로란 대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대충 이해는 하고 있으란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한다고 해도
일체의 흔들림이 없어지는가?
그건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란 그렇게 강하지 않는 법이였다
그리고 코볼트는 이걸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주위의 마성이 제각기 목을 울리며 웃었다
"너에게 남편이 있다면, 그는 산 채로 잡아먹히며 죽을 거야
딸이 있다면, 그 아이는 마수의 아이를 낳겠지
손자는 코볼트가 나을까? 트롤이 나을까?
그 정도는 네가 결정하게 해주마"
아마 거기가 한계였을 것이다
여자는 코볼트의 목소리를 뿌리치며, 양팔을 흔들었다
수갑이 채워져 있긴 했지만, 안하는 것보단 나았다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할 꼴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참한 현실을 맞는 것보단 낫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주위의 병사들도 마찬가지
다리가 끊기고, 팔이 부숴지고, 눈이 파열당하고
장난간처럼 다루어지는데도 죽을 수는 없었다
마성들이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그들은 주된 마인으로부터 그렇게 명령받았으니 말이다
"너희들 말이야, 전쟁터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편하게 죽을 수 있었는데 말야, 크흐흐"
"으.....으아아아아아!!"
대답은 없었다
그저 끝 없는 절규만 있었을 뿐
코볼트의 날카로운 손가락이 눈을 찌를때마다, 그것이 울렸다
요정들은 그것을 보며, 눈 속에서 떨고 있었다
*
"....끔찍하군, 요 근래 이러고 있어, 건방지게 잔꾀를 부리는 군"
할아범은 귓가에 퍼지는 절규를 들으며, 말했다
엘디스가 크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마치 꺼림칙한 것을 토해내듯이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까이 있나 보군
목소리나 환상을 바람에 실어나르는 건
정령이나 요정의 장기니 말이야"
그래서일까
갑자기 귓속으로 절규가 흘러들어왔고
그 외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깨물고 있던 어금니가 조금 아팠다
목소리에 흔들리기라도 했는지, 시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정령술에는 이런 것도 있군요
이렇게 되면 왕도 백성들은 날로 생기를 잃을 것입니다"
마티아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왜냐?
사람들이 목매달아 죽을 때까지의 비명과 절규라는 소리를 끝없이 들으면
그 누구라도 미쳐버릴 것이니 말이다
그것은 백성만이 아닌 병사도 마찬가지
특히 이 보루에 있는 병사들은 국군의 일부라고 들었다
같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같은 훈련을 받아
어쩌면 대화 한 번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녀석이 죽어 가는 것을 계속 들으면
제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의 기분이다
이런 건 오랜만이야
땅 밑바닥의 감옥이 나을 지경이군
"그래서... 이쪽이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왜죠?
뭔가 이유라도 있는 거겠죠?"
물론 저들의 목적은 알 수 있다
이쪽이 견디지 못해 성채에서 기어나오기를 고대하는 것
과연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지만, 전쟁터에선 좀처럼 있는 수법이였다
성채나 요새에 틀어박힌 상대와 싸우는 것보단
평지 전투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니 상대의 정신을 공격하는 수 밖에
하지만 듣기로는 마 군은 규모가 수백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 규모는 매우 적은 숫자라고, 리처드 할아범은 말했다
"하지만... 문장교의 성녀 씨
놈들이 왕도로 쳐들어 왔을 때
당연히 왕도에 아무도 없던 건 아니였소"
달려드는 마수 떼에 상응하는 국군이 있었다
그야말로 왕도에 걸맞는 보호막
그래도 소용없었다
할아범은 거의 입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만큼 깊고 조용한 분노가 있었다
표정은 못 알아보겠지만, 확실히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이였다
"마인... 그렇게 불리는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왕도는 그 하나 때문에 함락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할아범 곁에 있던 부관 네이마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 목소리에도 역시 뭔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었다
마인... 마수나 마성과는 격이 다른, 초월적인 존재
마법이나 무기 따위 전혀 통하지 않는 강함...
옛날에도 그것을 앞에 두고 여러 영웅영걸과 용자들이 죽었다
그 파수꾼 발레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위협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마인 앞에선 대지가 일그러지고, 병사들이 터져 나가는 겁니다
마법 이론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서 있는 땅이 흔들리고, 알 수 없는 힘에 군사들이 휘둘러졌다
그 정체는 불명
역시 가볍게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아주 그렇진 않지만
진지한 기분으로 칼날을 맞대고 싶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상대였다
적어도 대군으로 공격하면
그것을 처치할 방법이 있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구전에 임하자니, 최악의 선택이였다
폐 깊은 곳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담배를 물며
"그래서 할아범"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특유의 냄새가 콧구멍을 찔렀다
리처드 할아범의 깊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나는 볼을 치켜올리며 말을 이어나가며
"설마 이대로 다 뒤질 때까지 농성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뭐, 노망이라도 났다면 모를까 말이야"
할아범은 이를 갈며, 목을 크게 움직였다
그의 표정엔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멍청아, 너 지금 누구한테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너야말로 요 몇 년 사이에 왕도를 잊어버린 건 아니냐?"
이 할아범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노망이 낫는지도 모르겠다
왕도는 내가 자라서 뒷골목을 뛰어다녔던 곳
그 골목길도, 도랑길도, 하수의 위치도 알고 있고
모든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비참하게 엉겨붙어 살던 기억도 지금도 살아있었다
아, 그래
나는 이를 갈면서 크게 볼을 올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할아범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