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1화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들 -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자를 죽이려면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예전에 누군가가 그런 말을 남긴걸로 기억한다
괴물을 죽이려면 괴물로
용을 죽이려면 용으로
무언가를 죽이고 싶다고 그렇게 바라는 순간
그 자도 그렇게 되어버린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마인을 죽이려면
그 자도 마인이 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손을 댄 마성의 팔이, 빛의 일섬에 의해 튕겨나갔다
그 육신이 하늘 높이 튀어올랐고, 피는 조용히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살의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였다
하얀 빛은 마성의 팔 뿐만 아니라
팔뚝살, 어깨, 목덜미, 얼굴.. 그렇게 전신을 잡아먹었다
이빨을 세우고, 먹이를 씹듯이 맛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한마디로 추악했다
아름다워 보이는 빛이 온갖 힘을 다해 마성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피도 살도 모두 사라지고
어두운 돌 같은 것만 남았다
길가에 있는 것과 다름없는 그저 돌...
하얀 손이 그것을 주웠다
소녀의 손이였다
흰머리가 파삭파삭 흔들리며
레우라고 칭한 소녀의 작은 몸에 휘감겼다
한 순간의 정적
마성들이 발굽을 울리고
무기를 손에 들며, 소녀에게 경계의 뜻을 나타냈다
마성의 습성 중 하나는 힘에 대한 예찬
형태가 어떤 것이든 힘있는 자는 경계와 경의를 받는다
그것은 상대가 소녀든 별로 다른게 아니였다
그래서 마성들은 레우를 어린애로 생각하지 않았다
마성을 죽일 수 있는 적으로 인식하였다
늑대 얼굴을 한 마수가 송곳니로 치려는 순간
레우가 대면한 마인
통제자 드래그만이 목소리를 냈다
"잘 못 본게 아니군, 그래... 너는 보석이냐?
천쇄에도 묶이지 않는 분방함은 여전하구나"
드래그만은 눈을 찡그리며, 옛 동포의 이름을 불렀다
모습은 전혀 다른 모양이지만, 지고의 찬란한 마원은
일찍이 본 동포의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수백 년 동안 떨어져 있던 동포와의 해후
드리그만의 목소리에는 좋든 싫든
약간의 친밀감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그 이상의 위화감도 말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부하를 죽였다
그 자체는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보석바 아가토스
그녀라는 마인은 분방하기 짝이 없어
다른 자의 생사조차도 자신을 위해 있다고 믿고
누군가를 돌아보는 따위의 것을 할려고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있고, 자신으로 모든 것이 완결된다는 듯
그야말로 보석이라는 마
그런 그녀가 여기에 있었다
약간의 일 정도 저지르는건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인간을 감싸지 않았나
드래그만은 가볍게 손바닥을 벌리고, 흰 머리의 소녀를 들여다보았다
머리와 같은 색의 눈이, 똑바로 드래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 그런 이름은 없어요... 죄송해요"
마성을 잡아먹어 놓고도
마치 허약한 듯이 소녀는 말했다
드래그만은 반사적으로 음침한 소녀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한마디로 이해했다
자신의 동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이다
보석은 깨어났지만
아직 영혼의 뚜껑을 닫은 그대로인 것이다
스스로의 마원을 꺼내놓고도
그저 졸음으로 훌훌 넘기고 있을 뿐
그러니 아직도 신체의 주도권을 주인에게 물려준 채
예전의 모습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자유로운 그녀답다고 하면, 아마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본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억지로 깨울 필요가 있겠지
그리고 그녀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거야
드래그만은 주변의 마성을 물러나게 하고,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먼 거리를 둔 소녀를 향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왜 그녀가 일부러 이런 곳에 왔는지 궁금했다
겉보기만 하면 그저 소녀일뿐 아닌가
마성의 잠자리에 뒹굴 것 같은 기상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보석이 다소 자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일까
드래그만이 소녀에게 묻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겁은 먹은 채,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를 돕기 위해서... 그것 밖에...
저에겐 사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소녀는 흰 머리카락을 흔들며, 생기 없는 눈으로 말했다
그녀의 손 끝에는 방금 마성의 발톱으로 죽을 뻔한 여자가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소녀를 보는 눈조차도 괴물을 보는 눈이였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온 것이라고, 소녀는 말했다
미미하나마 몸에 깃든 보석의 권능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렇구나, 하고 드래그만은 대답했다
"인간은 알 수 없군, 쓸모없는 짓을..."
타인의 구명
겨우 그걸 위해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다니
마성으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이였다
흰 머리가 드래그만의 시야 속에서 흔들렸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순간만은
생기가 없던 눈동자에 힘이 실린 것 같았다
마치 보석을 방불케 하는, 달빛처럼 강한 빛이 새겨져 있었다
잠시 그 눈부신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얄미움마저 느껴지는 등불이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늦게 깨달아버렸다
은빛의 칼이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드래그만의 맹금 같은 눈이 움직였다
◇◆◇◆
마성이 돌로 바뀌고
흰 머리가 마인과 마주쳤을 때
그 모습에 전혀 시선을 바꾸지 않을 채 입을 열었다
"....적당히 놔, 카리아
설마 내 팔을 부러뜨릴 셈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카리아가 잡은 왼팔을 살짝 움직였다
단지 그것만으로 팔뼈가 크게 삐걱거렸고
혈육이 경련하며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의 근력은 어찌 되는 것일까
보통 사람이 아무리 다른 사람의 팔을 단단히 잡아도
다소 반항은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떤가
쇠로 접합이라도 한 것처럼 팔이 움직이지 안항ㅆ다
너 정말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카리아?
그 동안에도 눈 앞의 광경을 외면했다
그 쯤, 카리아가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놓으면... 아니 놓았더라면
네 놈은 지금 뭘 했을 것 같냐?
또 한 번 맘대로 칼을 휘두르며, 뛰쳐나갔을 테지"
아니냐? 하고, 카리아는 말을 이었다
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라는 부정하는 말이 입에서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역시 너무 뻔한 거짓말은 아무래도 나도 내뱉기 힘들었다
그 정도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대단하네, 어린 시절에 들었던 괴물 이야기 그대로야
아니... 어쩌면 신화의 영역일지도"
피에르트가 검은 눈을 깜박이며, 감탄까지 곁들여서 말햇다
아름다운 입술이 오늘 이 때만큼은 일그러져 있었다
필사적으로 뭐라 말해야 할지를 찾는 것 같았다
카리아도, 피에르트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것 같았다
아니... 분명 그녀들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마인... 그리고 레우라고 밝힌 백발의 소녀
저것은 이형이다... 살아있는 죽음 그 자체란 것이다
본능과 이성이 한데 어울려 정신을 갈취하고, 영혼을 흔들었다
도망가야 해 한다고, 인간의 목숨이란 저 앞에서 그저 파리 일 뿐
그렇고 말고, 그것이 맞아
틀림없어, 영웅인 카리아나 피에르트도 그렇지 않은가
에르디스의 푸른 눈을 보고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렇게 물었다
이미 내 자신 속에선 답은 나와 있었다
엘디스는 턱으로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둘처럼 자네를 묶어버리고 싶지만"
나는 그녀의 뒤숭숭한 말을, 뺨을 살짝 실룩거리면서
보검에 쥔 손에 조금 힘을 주고, 계속 들었다
"...갈 거지?
나는 알고 있어
그러니까... 바보짓을 하지말란 건 아니야"
엘디스 손끝이 내 가슴을 찔렀다
심장이 어느새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이젠 너만의 목숨이 아니야
간다면 우리의 목숨도 책임지고 발을 내딛는게 좋아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너에게 얽매일 테니 말이야"
가슴이 한 번 더 크게 울렸다
모질게도 무서운 말을 던져주는 군
아니, 이제와서 사지에 뛰어들어간 끝에
어이없는 죽음을 하고, 나 혼자 죽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젠장할, 죽는 것은 싫다
사람의 생명을 끌어안는 것도 최고로 무섭다
마인도 그렇다, 아주는 아니지만 직시조차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고
이제 와서 본래의 성품인 겁쟁이로 살긴 싫다
그때처럼 돌아가는 것만은 사양이야
또 그럴 수 없는 사연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오기를 부려서라도 삼키고
피를 흘려서라도 과거와 현재를 답피해야 할 거야
나의 용기란 그 정도... 그래, 그 정도로 충분해
"그럼 가자고, 마인을 죽이러"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은빛 칼을 품 안에서 움켜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