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5화 - 쌓을 수 있는 벽돌 -
왕도에 씩씩하게 피어오르며
가물거리는 연기의 중심에는 큰불이 있었고
동시에 정체 불명의 하얀 섬광이 보이고 있었다
"지독한 짓을 하는군
아무래도 그 녀석은 변한게 없어, 그게 아쉽단 말이야"
리처드 퍼밀리스는 이 불이
자신의 제자의 소행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마성들은 저렇게 불을 쓰진 않는다
게다가 모처럼 손에 넣은 왕도를 흠집으로 만들 생각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 점들은 정말 이상적이였다
그렇다면 이것을 일으킨 인간 측에서
그리고 왕도에서 주저하지 않고 불을 낼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면 제자밖에 없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권위 그 자체
문화의 집적지, 갈라이스트 왕국 왕도 아르셰
거기에 지워지지 않는 흠집을 내는 데
다소나마 애착이 있으면 심히 곤란했다
동포인 발레리가 이를 보면 분노를 넘어 살의를 떠올릴 것이라고
리처드는 뺨을 느슨하게 했다
결국 루기스에겐 왕도에 애착이 없었던 건가
자신이 태어나 자란 땅이란 의식은 있어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루기스는 이 일면을 불탄 들판으로 만들어버려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
조금 감개무량 할 뿐, 권위 있는 왕도든 문화든
녀석은 조각만큼도 흥미가 없는 것이였다
리처드는 그 점에선 달랐다
의외로 조금의 애국심은 있었던 것이다
옛 위광을 다시 왕도의 가슴에 꽂아
위대한 제국으로 내세우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리처드는 루기스처럼
국가권위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짓밟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된 의식을 취하고
왕도를 부수겠다고 결심했었다
마인은 그만한 적이다
조절해서 가하는 일격은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을 바에야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인간도 손발이 병에 썩어버리면, 눈물을 머금고 그 부분을 잘라내는 법
왕도도 어짜피 건축물, 결국엔 왕관만 가지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왕관도 이젠 가치가 있을까
리처드는 스스로를 비웃듯, 주름을 일그러뜨렸다
아무도 모를 정도로, 무의식 중에 떠올려 버린 것이였다
왕은 군사를 거르리고 도망쳐, 수도를 버렸다
그 자체는 상관없다
예전에도 위급한 경우 왕이 수도를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왕도를 빼앗으며 복수를 한 역사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 늙은 장군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아니였다
왕이 대성교라는 다른 권위에 매달린 사실이였다
적어도 리처드는 그 시점에서 국왕에 실망을 했다
그것은 그저 남의 다리에 매달리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이니 말이다
게다가 남도 아니고 국왕이 직접 매달리다니...
노회함을 담은 표정이 주름을 깊게 하면서, 대화재를 응시했다
"대대장님, 네이마르님으로부터 전령이 왔습니다
공성 준비가 만사에 이르고 있다는 뜻 입니다"
리처드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부하들을 돌려보내고
이쪽도 준비를 갖추겠다고, 그렇게 전하라고 했다
정말 네이마르는 훌륭한 장군이 될 것이다
리처드는 그 점에 흐뭇해 했다
이제 자기가 없어도 충분히 지휘를 할 수 있겠지
지방 귀족의 계집애로 치기엔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막연하게 지시를 받는 것도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그녀
리처드는 그런 인간의 희귀함을 잘 알고 있었다
발레리에게도 이래서 교육을 시킨 것이였다
이어 입술을 물결치며 말했다
"최종적으로 군대를 왕도로 들여보내겠다
그리고 문장교 측에 앞서지 말라 전해라
결코 주도권을 넘겨 줘선 안 된다"
문장교인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상사태를 틈타, 왕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셈이겠지
그것은 리처드가 어떠한 상황이라도 허용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놈들은 그저 공동전선의 협력자
문장교 세력을 먼저 왕도에 입성시키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어짜피 문장교는 이교도 집단에 불과하다
그것은 리처드든 누구든 공통적인 인식일 터였다
하지만, 리처드에겐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문장교가 어떻게 왕도까지 무사히 도달했는가 였다
문장교의 세력 범위에서
왕도 아르셰까지엔 상응하는 거리가 있다
몇 개의 귀족영지를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도 녀석들에겐 전투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그와 같은 군사들이 쳐들어왔다면
아무리 왕도 함락으로 인한 동요를 짊어지더라도
반드시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려 할 것이다
아니, 앞으로의 정세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영토영민은 무조건 지킬 것이다
그런데도 이 놈들은 유유히 귀족 영지를 넘어왔다
한 두 명의 지방귀족만이 아니라
다수의 귀족들이 놈들을 묵인하고 있었다
단지 이교도 상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놈들은 귀족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리처드의 머릿속엔 생각이 오고갔다
그는 턱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하나, 더 진행하도록
왕도 각지에 숨어들게 한 군사들에게 전하거라"
그 말을 듣고, 전령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리처드는 전령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나다
너희들이 처분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무튼 장병들의 행동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쪽은 행동하는 쪽이 아닌, 명령하는 쪽이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가보도록"
부하에게 의문을 가지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헤메는 것도 좋지만
끝까지 의문을을 지우지 못한 병사들은 사용할 수가 없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
한순간의 판단이 중요한 전쟁터에서
방황하는 병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리처드는 이렇게 명령했다
망설이지도 말고, 주저하지도 말고, 명령대로 왕도를 불태워라
*
왕도 아르셰 남쪽의 성채
그 내부는 아마도 이 성채가 형성된 이후
최고의 분주함을 이루고 있었다
갈라이스트군이든 문장교의 군이든
어느 쪽이나, 내부의 사람과 항상 연락을 취하는
그런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그 후에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계속 선택해야 한다
즉, 상황이나 취해야 할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장면에선 아랫사람과 똑같이 윗 사람들도 쉴 틈이 없었다
끊임없는 사고와 판단, 일 처리를 요구받기 때문이었다
문장교의 성녀 마티아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것을 포함해, 모든 판단이 마티아의 어깨에 매달렸다
말을 하는 목이 나가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마티아는 전령의 보고를 들으며
양피치를 흝어본 채, 입을 열었다
"갈라이스트군은 왕도 공성 준비를 맞췄다고 하군요
이제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필로스 트레이트는 성녀 마티아의 말을 듣고
재빨리 양피지에 다른 내용을 써갈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티아처럼 집무 책상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기보단, 누구 하나 물러설 수 없다는 게 맞겠죠
물러났다간 모두 거기서 끝이니까요"
필로스는 외안경을 가볍게 다듬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분명 피로가 많이 떠올라있겠지만,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 필로스라는 인간은 문장교측에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행동의 성패는 자신에게 닥칠 것임을 깨달은 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조금도 손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도시를 내주는 굴욕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러나 이번에 귀찮은 것은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것이 마성 뿐만이 아니라
갈라이스트군에게라는 부분일 것이다
왕도를 다시 마성들로부터 빼앗았다고 해서
그 주도권, 말하자면 통치권이 빼앗긴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였다
특히 원정군인 문장교는 그것을 갖지 못하면
모든 것이 그저 와해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설령 갈라이스트군과 창을 맞부딪치더라도
통치권 탈취만은 달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루기스도, 자신도 모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일테니까
필로스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냐고, 마티아에게 물었다
솔직히 군사행동에 관한 것은
필로스보다 마티아가 훨씬 더 정통하니 말이다
필로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협조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귀족과 소통하고
그리고 지금처럼 정무를 처리하는 것 뿐이였다
마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변 귀족들, 그리고 최근에 협력을 약속한 귀족들과도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저쪽에 숨겨둔 패도 꽤 많으니 걱정마세요"
저쪽에 숨겨둔 패라니...
필로스는 그것이 뭐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끝냈다
"내부로부터 연락은 없어요
이곳의 모두를 편안하게 해 주지 않을 생각인거 같아요"
"그에게서 연락이 오다니, 집 나간 고양이가 되돌아 올 정도로 말이 안되는 소리죠
그 점은 제가 관리하고 있으니, 그 점 또한 걱정하지 마세요"
마티아의 말에는 루기스에 대한 모종의 신뢰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성녀에게 있어서, 그러한 감정을 담은 언어를 뱉는건 드물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어느 때건
타산이나 이익 계산을 잊지 못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건만
그에 관한 부분은 다른 것일까
한숨을 내쉬며
필로스는 마티아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길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시선은 양피지를 향해 있었다
손가락 끝은 잠시도 움직임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감탄을 하려던 그 때
문득 필로스의 외안경이 기울어지면서
눈이 가늘어졌다
계속 움직이는 성녀의 손가락 끝이 낯설었고
다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필로스의 특징적인 흰눈이 크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