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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마이 페어 레이디 프롤로그 - 망령이 소녀에게 물었다 - 본문

미궁의 마이 페어 레이디

미궁의 마이 페어 레이디 프롤로그 - 망령이 소녀에게 물었다 -

개성공단 2021. 9. 23. 14:38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제대로 된 이유로 죽고 싶어



시빌리 노르아트는 불현듯 떠오른 그 생각에서
그러고보니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계속 시체와 접하고 있으면
자신은 이미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특징적인 긴 눈동자로 주위를 살폈다



미궁 엘피스의 차가운 마룻돌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왼팔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목재를 이용해 재주 좋게 주워 모았다

시빌리가 다시 옆으로 시선을 보내니
이번엔 사람의 머리가 떨어져 있었다

목 정도가 남아있었고, 아직 썩지는 않았기에
아마 죽고 나서 며칠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살아날 가능성은 있겠지

목만 남은 남자의 눈동자가
원망스러운 듯 시빌리를 노려보는 듯했다



"히익!?"



시빌리가 손을 떨며 순간적으로 널빤지를 떨어뜨렸다

미궁의 통로에 마른 소리가 울려퍼졌고
엉겁결에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얌마! 몇 번째 같은 짓을 저지르는 거야!?"




그녀의 금빛 머리칼 너머로 주먹이 마구 꽂혔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밖에서 난 것인지 안에서 난 것인지 시빌리는 알 수 없었다

그를 때린 남자는 시빌리보다 큰 육체를 하고 있었고
가죽갑옷을 입고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있었다



"미궁 속에서는 다른 소리는 내지 말랬지!"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시빌리의 머리와 배고픔이 가득찬 복부를 세게 쳤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망가져 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시빌리는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다른 말을 꺼내진 않았다

더 심한 처사를 받을 것이 뻔했고
게다가 남자가 없이는 시빌리의 생활도 어려웠다

매를 계속 맞는 시빌리를 바라보면서도
결코 도우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 주위에 여럿 있었다

너나없이 시빌리처럼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있었고
그들 또한 시빌리와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고용되어 있는 인간으로
그녀와 똑같이 시체를 회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시빌리와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남자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속령 출신 녀석들은 정말이지 쓸모가 없군..."




속령의 인간
그것이 그들과 시빌리의 공통점이고
남자와의 뚜렷한 차이점 중 하나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유서 깊은 공령으로 태어나 자란 인간들
그리고 자신들은 그들에게 정복당한 속령의 인간들


과거 주위 일대 영토를 정복한
세 나라의 인간이 정시민이라 불리는 혼

그리고 그들에게 정복을 받은 속령의 인간
속령민, 로어였다

속령민 로어는 정시민 혼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다

각각의 속령에 따라 취급은 다르지만
대부분 노예처럼 속령민 로어를 다루기도 하여
법으로 정해진 격차가 매우 컸다



"...죄송합니다"




구타가 가라앉을 무렵을 가늠하여
시빌리는 속령에서 쓰는 사투리를 섞으며 말했다

남자는 그 말투도 못마땅한 듯
다시 한 번 세게 머리를 때렸고
흥 하고 코를 킁킁거리며 다음에는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시빌리는 심하게 아픈 마디마디를 안고 다시 나무판을 집었다

그녀의 코는 피와 살이 썩어가는 냄새로
오래 전에 망가져 있었고, 의지할 곳은 겨우 어금니 뿐이였다

다시 시체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시빌리는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했다



죽는다면 뭔가 뜻 있는 죽음을 맞고 싶어

누군가에게 복수한다거나 말이지...



"그냥 소모품처럼 죽기는 싫어!"




시빌리는 남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속령어로 중얼거렸다





 ◇◆◇◆






미궁에서의 시신 수습이 끝나고서야
시빌리는 비로소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코는 금방 돌아오지 않았지만
햇빛을 받으면 그것만으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자, 보수다
다음에도 부르면 모이도록"





그렇게 받은 임금은 구릿빛 화폐가 두 장이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시빌리는 모르지만
딱딱한 빵 한 개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타당한 임금인지는 모른다
그들이 은빛 동전을 여러 닢 받는 것을 본 적도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불명확했다




미궁 도시 아루가가탈에서의 시체 수집은
비교적 좋은 장사라고 할 수 있었다

미궁이란 신비와 영광이 잠든 곳
주변국의 의도도 겹쳐
탐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마물이 잠든 미궁 속에서는
때로 불행한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죽음에 직면하면 그만이지만
몸을 잃으면 목숨을 잃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와해된 파티에서는
미궁 속에 발을 디디는 것도 위험했다


때문에 미궁에 빠지지 않고
시체를 되찾으려는 수요가 나타나는 것이였다

어쨌든 우수한 탐색자를 다시 모으기는 어려웠고
시신 수습은 시체를 담보로 한 좋은 장사였다

손발이 되어 다룰 줄 아는
속령민은 싸게 고용할 수 있으니 더욱 그랬다




"야, 자물쇠!"




남자가 난폭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빌리는 자물쇠라는 단어에 주뼛주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시빌리에게 태연한 손바닥으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아마도 죽은 탐색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일 것이다

보통 마도열쇠로 잠겨 있으며
그것을 잠근 자만, 풀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재산을 지키는데 필수적인 아이템이였던 것

하지만 시빌리에게는 달랐다



그녀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지니
찰칵하고 열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내용을 바로 확인했다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시빌리는 왠지 만지작거리기만 하면, 그것을 열 수 있었다




"잘했어, 추가야"




사내는 시빌리의 손에 동전 한 닢을 들려주었다
상자 안에는 은화가 여러 개 들어 있었지만
시빌리에게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남자들과 헤어진 다음에
시빌리가 가는 곳은 늘 정해져 있었다

돈을 얻은 이상 쓸 필요가 있었으니까




"빵이 갖고 싶어요"




받은 동전을 그대로 내밀고
시빌리는 미궁가의 상점에서 빵을 샀다

공령의 글자는 읽을 수 없지만
속령 동료로부터 어떻게 하면 빵을 살 수 있는지는 배웠다

미궁 도시 아루가가탈은 탐색자들에게
장사를 하는 자들로 구성된 독립 도시다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의식주
동시에 많은 돈을 번 탐색자들이 낭비하기 위한 시설까지
돈만 있으면 구하기 힘든 것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속령민들에겐 거의 인연이 없었다




"이 녀석!
그런 지저분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마!
손님들이 모두 도망가버리면 어쩌려고!"




상점 여주인은 상냥하게 접객을 하고 있었지만
시빌리의 모습을 보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시빌리의 동전을 낚아내고는
단단한 빵을 집어 땅바닥에 내팽겨처버렸다

빵은 여느 때와 같았지만
동전은 평소보다 다르게 더 많이 빼앗긴 것 같았다




"자, 이제 꺼져"





여주인은 개라도 내쫓듯 손을 털며 시빌리에게서 시선을 뗐고
곧바로 붙임성 있는 점주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시빌리는 던져진 빵을 땅에서 주웠고
주위에서 옅은 비웃음이 들렸다




"……:





시빌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타는 듯이 탔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시빌리에게 있어서
이런 곳에서 길가에 쓰러져 죽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이대로 질 것 같아...?
반드시 납득이 가는 죽음을...
그것만이 시빌리를 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도 시빌리는 미궁의 시체를 수습하러 갔다
그녀를 몇 번 때린 남자가
항상 미궁의 입구 근처에서 속령민을 모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시빌리는 알지 못했다
물론 반대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기보다 이 도시에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시빌리에게는 없는 것이였다
속령민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눈에 띄면 그만큼 책임과 죄를 떠넘겨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미궁의 입구는 장엄하여
올려다볼 만한 건물로 뒤덮여 있었다

영웅의 문, 라비리아라고 불리는 곳이다
커다란 종과 기사문장이 있는 것을 보면
교회의 일종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교회 관계자가 마도... 즉, 힘에 대해 관리하고자 하는 것은
속령이든 어디든 크데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깊숙히 들어가겠다
낙오하는 자는 그대로 두고 가겠다!"




정시민 남자가 웃음 섞인 말을 했지만
시빌리를 포함해 모인 십여 명에게는 농담이 아니었다

남자의 말대로 그날은 꽤 깊숙히 잠수했다
평소 같으면 고작 계단을 한두 개 내려가는 정도였지만
오늘은 네 번이나 내려왔다

미궁의 통로는 항상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돌판으로 덮여 있었다
때때로 느긋하게 통로가 뒤틀리거나
여러 번 같은 방향으로 휘어지는 바람에
방향감각은 금방 망가질 정도였다

사실은 더 걷기 좋은 길이나 커다란 방 등
원활하게 이동할 만한 곳이 있었지만
남자들이 이런 불편한 길을 택하는 것은
오로지 마물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였다


마물
인류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생물
마도를 사용할 수 있는 탐색자라면 몰라도
개념조차 희박한 속령민은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최소한의 대응은 해 주지만
만약 뒤에서 마물이 덮친다면
빨리 뛰라고 말하는 것 이외에는 하지 못했다

오지까지 잠수하면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와..."




네 번째 계단을 내려와 몇 번 모퉁이를 도니, 큰 홀이 나왔다
시빌리는 엉겁결에 작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곳은 어둑어둑한 미궁과는 거리가 먼, 빛나는 공간이었다




땅속인데도 천장이 매우 높은 데 있었고,
썩어빠졌지만 정성껏 디자인한 벽과 마루가 장식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기둥이 늘어져
사라져 버렸겠지만 조각이 진열되어 있던 모습도 보였다

안쪽에는 긴 상자 같은 것과 큰 문
모두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짐작케 하지만
결코 빛나지 않고 역사의 무게를 안고 있었다

시빌리는 신전보다 더 신전답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조형물은 때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신앙심을 갖게 하는 법이였으니까

그러나 거기엔 신성함을 더럽히듯 많은 피가 있었다




피와, 살점과, 시체
이곳에서 마물과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것은 틀림이 없다
마물이 지금 없는 것은 너무 큰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일시적인 상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빨리들 해!
오늘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어!
마물이 또 금방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마음 탓인지 남자들의 목소리도 여느 때보다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속령민 로어들은 그것을 민감하게 눈치채고
널빤지와 때로는 맨손으로 시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것 말고는 살 길이 없었다
사람의 죽음이 그들의 삶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




시빌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으니
그것은 눈앞에 묘한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 시채는 대문 앞에 설치된
긴 상자에 손을 뻗으며 숨져 있었다

함은 계단식 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어
언뜻 보아서는 그게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보물상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어
그렇다면 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당한가?

그렇게 생각하니 시빌리에게는 주위가 영묘로 여겨졌다
이곳은 이 상자에 들어온 인물들을 매장하기 위한 묘소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탐색자와 자신들은 
곳을 피로 더럽힌 무덤 파헤치고 있다는 셈이였다

순간 시빌리의 등줄기에 오한이 엄습했다
강렬한 현기증과 호흡조차 멈칫하는 압박감을 포함해서...

아무래도 그것은 아무것도 그녀의 착각이 아니었다




"고오오오"




모두의 눈길이 그 포효에 집중됬다
넓은 방의 입구, 아니 주위로 연결되는 오솔길의 곳곳에서
포효하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뭐야!?"




짐승의 머리와 인간보다는 작은 몸
그러나 인간 이상의 근력을 지닌 마물 코볼트였다

그들은 반드시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때때로 탐색자의 파티를 시원시원하게 먹어치우는 존재였다

하물며 무기도 방어구도 없는 속령민의 집단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제...젠장! 누군가 도와줘!"


"입 닥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속령민의 목소리가 난무했다

반면 남자들은 탐색자답게 냉정을 잃지 않았다
시빌리는 과거에도 몇 차례 시체 수집 도중
마물에게 습격당한 경험이 있었다

속령민이 죽기는 했지만 탐색자가 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알 수가 없었다

코볼드는 계속 솟아났고
남자들은 보통 파티라고 할 수 있는 다섯 명이 모여 있었지만
수로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악!"




코볼트가 송곳니와 발톱을 무기로 속령민에게 달려들었고
저항할 사이도 없이 그의 목덜미는 튕겨 나갔다

넓은 방 안을 다시 피가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참담한 꼴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다음, 또 다음, 그리고 또 다시
코볼트는 기세를 더해 속령민들을 덮쳤다

수가 많은 것도 있지만
속령민이 지탱할 시간은 몇 분도 안 되는 것이였다
핏물은 점점 더 번져갔다



"어, 어!"




시빌리는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으며
나무판으로 코볼드의 머리를 내리쳤다

목판이 부서졌지만 순간 코볼드의 의식이 끊겼다
그녀가 행운이었던 것은
바로 근처에 탐색하던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쉽게 죽지는 않는다
그들도 헛되이 사망자를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자가 칼을 휘둘러 코볼드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고
단두대 같은 칼날에 코볼드는 속시원하게 죽어갔다




"쳇!"




남자가 혀를 찼다
코볼드의 수와 기세는 이상했다
얕은 층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칼을 휘둘렀고
그것이 시빌리를 일시적으로 살릴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다.
남자는 시빌리를 구하려 했던 게 아니다



"고오오오오오"




코볼트의 한 무리가 기세를 올리며 시빌리의 등에 매달렸다
금발이 흩날리고, 눈동자에서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쏟아졌다

구원을 청하듯 그녀의 눈동자에는 탐색자가 비쳐졌다



"가만히 있어!"




그의 말대로 시빌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코볼트는 그녀에게 매달린 채였다




스르르 사내가 날숨을 들이마셨고
마력이 남자의 검과 몸에 충만해 갔다

공기가 얼얼했다
그것이 마도라고 불리는
탐색자가 가진 재능이라는 것을 시빌리는 알고 있었다

남자의 검에 마력이 장전되며, 검에 글자가 새겨졌다




"마도 검술, 목 사냥"




마도
신과 교회가 인정하고 사람이 사용하는 권능
너무 강한 힘은 죄가 되지만
관리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을 교회는
마도라 칭하며 그 행위를 인정했다

교회 가라사대
신의 비술과 기적의 일부
대기와 생물의 체내에 가득 찬 마력을 이용하여
육체의 강화나 신비의 행사를 행하기 위한 심오

남자도 그것을 습득했고
그렇지 않고서는 미궁에 들어갈 수 있는 탐색자라고 할 수 없었다

신비는 사내의 칼끝에서
떨어져나와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코볼드의 목을 갈랐다

시빌리의 몸과 함께...




시빌리는 자신의 몸을
비스듬히 양단한 자국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꿈만 같기도 했다
베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깜짝할 사이에 현실이 찾아왔다

시빌리의 온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코볼트의 피와 뒤섞여, 탁한 빨강을 띄고 있었다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보고 있었
아니... 다음의 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랬군
시빌리는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목숨 따위는
거들떠볼 필요도 없는 물건 같은 것

미끼로 쓸 수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시빌리에게 다소 이용가치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보다 비싸지는 않다... 당연하지...

몸이 저절로 마루에 쓰러졌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수거해 온 시체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썩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시빌리는 실감했다

차이점은 자신들의 시체를 모아줄 사람은 없다는 것인가



이미 차가워지기 시작한 몸으로
손가락 끝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고 회한이 넘칠것만 같았다



못 끝내, 이런 데서 끝날 수는 없어
정복당해 속령의 백성이 되어도
조소와 모멸을 받아도, 그래도 살아왔는데...

죽고 싶지 않아... 더 오래 살고 싶어...

제대로 된 이유를 갖고 죽고 싶어서...?
그건 핑계야, 그냥 죽고 싶지 않았어



살아서 따뜻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어
부드러운 빵을 먹고 싶었어
평범한 옷도 한 번 입어보고 싶었어
모두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그냥 걸어보고 싶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빌리의 손끝에서 힘이 없어지고
얼굴에는 이미 핏기가 가신 듯 했다

부자연스럽게 뻗은 손이 긴 상자에 닿아 있었다
그렇구나, 쓰러져 있던 시체도
누군가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이렇게 손을 뻗은 거야

그렇게 시빌리는 천천히 눈동자를 감았다




그리고 동시에 목소리가 울렸으니...




"이런... 죽어가고 있군
얌마, 내 무덤에 손대지 말라고
이건 내 것이고, 나만의 것이란 말이야"



누군가의 목소리였고
들어본 적 없는 음계였다

그런데 이렇게 신기하게도 귀에 잘 들어오다니...

대답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만
시빌리는 눈을 부라리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떡할 거야, 이대로 죽을 거야?
편한 것과 괴로운 것 중에서 편한게 낫다면, 그래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나를 깨운 것은 너고, 그러므로 선택권은 너에게 있어"




거만한 말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긴 상자 위에서
다리를 꼬며 시빌리를 보고 있었다

섬뜩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이 기묘한 품성을 느끼게 하는 모습
나이는 아직 어려보였고, 시빌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품위로는 숨길 수 없을 만큼
강한 광포성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상징적인 것은
그의 모습이 반투명하다는 점이다

그는 살아 있지 않다...
하지만 죽지도 않았다

시빌리의 이해를 무시한 채 그는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에렉, 어떻게 할 거야?
살 거야, 아니면 죽을 거야?
대답은 이 두 가지 뿐이야"




사느냐 죽느냐
단순 명쾌한 양자택일
시빌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말
그것을 매우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고 싶어,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아...!"




설령 그녀가 인간이 아니었더라도
대죄인이 되었더라도
그 생애의 끝이 단두대에서의 처형이었다고 해도

살지 않으면 사람은 그대로 끝인 것이니까




그 말만 하고 시빌리는 손끝을 떨어뜨렸다
마치 목숨을 다하듯이 말이다


바라건대도 인간찬가의 내용을 담고 있죠

여긴 여자가 주인공이내요, 거의 노예로 살고 있는 소녀, 시빌리와

망령 에렉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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