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35)
8성 연합
저것은 분명 어리석은 여자다 로조는 자신의 손 끝에 미미한 온기를 느끼며 무거운 몸을 내던지듯이 하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몸에 드리워졌던 열이 조금씩 모습을 잃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우직해서,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짊어지고 그 작은 몸으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잡으려고 발버둥치고 잇다 통치자라는 역할과 올바르지 않다는 강고한 자율심은 어디까지나 그녀를 떼어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때론 거기에 철저하지 못하고 동정이나 비애 같은 사소한 감정에 얽매이는 그 모순된 꼴은 어리석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어딘가 뒤틀린 성질 필로스 트레이트라는 여자는 언제까지나 그런 자기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필로스 트레이트이기에 로조는 애를 태우고 있었다 옳다고 해서, 그러므..
보라빛이 불꽃을 뚫고, 망자의 몸을 찢어, 벽돌 위로 내팽겨쳤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황혼한 달빛만이 그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보검 끝에 붙어 있던 불꽃 잔재가 얼어 붙듯 사라져 갔다 나도 모르게 눈꺼풀을 깜박였다 손안에, 무엇인가를 베어버린 감촉이 있었다 그것은 예상한 대로 망자를 죽인 감각이였다 보검에 새겨진 '영웅을 죽이는 자'의 글자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어떻게든 죽이긴 한거 같군 뿌리친 보검의 칼날을 돌려서, 땅에 쓰러져 있는 로조를 바라보았다 왼쪽 옆구리에서 오른쪽 배로 베어진 상처 몸통은 거의 둘로 나뉘어 있어서, 아까와 같이 불꽃으로 맞물리는 듯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 꼴은 인간은 물론, 설사 마인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것은 망자다 그 파괴의 ..
그 몸에 새겨진 농후한 보라빛의 일선이 혁혁한 궤도를 수반해서, 빛나고 있었다 보검은 로조의 혼의 불꽃 곁에 잇어, 또한 그 몸을 빛내고 불꽃조차도 삼키려고 할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면서도 단지 자신의 주인만을 따르고 있었다 또 이런 종류인가, 하고 보검은 생각했다 마인, 마종이라고 불리는 무리들 마수가 단지 짐승이나 사람의 마을을 침범했을 뿐인 존재라면 이 마인은 틀림없이 커다란 대마의 덕을 본 자' 과연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을 상대로는 능숙할 것이다 권속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놈들은 마성 자체에 심장을 잡힌 존재다 그 몸은 이제 인간을 초월한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술책이나 무기를 아무리 열심히 휘두른 들 그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을 죽이는 데는 언제나 기적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래서 누가 날 죽이겠느냐?" 필로스 성문 앞에서 그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로조의 가슴 속에는 한 가지의 확신이 차 있었다 그것은 루기스가 자신과 같은 종류임에 틀림없다는 것 군사를 이끄는 자이면서도, 적병 앞에 스스로 몸을 드러내, 그 목을 내밀어 보이는 모습 신을 향해 자신을 죽여보라고 외치는 모습 그렇다, 똑같아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숨따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영락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를 혐오하고 미워하기까지 한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정념을 지닌 건 분명했다 루기스의 본질은 악덕도, 대악도 아닌 그저 로조는 단지 자신의 동류이며, 자신의 찬란한 적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란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아나? 내 원수여" 로조는 타오르는 입술..
그것은 조작된 연극 같은 광경이였다 필로스 트레이트는 숨을 쉴 때마다 오열을 터뜨리는 몸을 앉힌 채, 침을 삼켰다 목을 움직일 때마다, 사지에 통증이 왔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잊어버린 채, 단지 눈 앞의 광경을 응시했다 거기엔 두 개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잇었다 한 쪽은 폭염의 마성, 마성이 사람으로 둔갑했는가, 사람이 마성으로 되버린건가? 그것은 일찍히 로조라고 칭하고 잇던 자였다 마성이 한 손을 치켜들면, 그 자체로 주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자연의 불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사람이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더욱 아니였다 그것은 단지 사람의 목숨을 탐하기 위해서만 방출되는 폭위 그런 것들이 가볍게 손바닥을 열 때마다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동시에 마성의 손가락 끝에서는 불꽃 뱀이 송곳니를 드러내..
혼의 불꽃이 공기를 녹이며, 사람의 모양을 취해갓다 이제 거기에 피부나 피가 남아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고 그저 불덩어리가 장난삼아 한 순간만 그런 모습을 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녀석은 분명 내 눈 앞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죽지 않아 죽음을 죽였기에, 이제 이 몸은 망자와도 같다" 망자, 죽음을 잃은 자들, 죽을 수 없게 된 사람들 과연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말이다 딱딱하고, 밤을 태우는 불길이 주위의 광경을 일그러지게 했다 불덩어리는 분명 존재했는데도, 주위는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보검을 움켜쥐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적은 불길 그 자체다. 과연, 저걸 베어 죽일 수 있을까 게다가 상대는 마인이기까지 하다 그저 불꽃을 끌어당..
그건 좀 이상한 광경이였다 로조, 그렇게 불리는 남자의 등에는 칼이 꽂혀 있었고, 배에는 손도끼가 눌려있었다 피는 그 몸에서 해방되었다는 듯한 몸짓으로 온 곳에 흩날린 나머지, 곳곳을 더렵혀 갔다 보통이라면, 그것만으로 쉽게 죽을 것이였다 다소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몇 분 정도가 지나면 심장이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해서 영혼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터였다 하지만 로조에게서 그런 기색은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스스로의 피를 뒤집어쓰고, 한층 더 기세를 높여가는 모습만 보일 뿐이였다 나는 눈을 부릅뜨니, 녀석의 주위에서 피가 기포가 되어 꽃힌 무기가 그 모습을 비틀어지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몸 전체에 열, 혹은 불길이 소용돌이쳤다 마법, 저주와는 다른 것 같은 느낌이였다 눈꺼풀 뒤에, 베르페인에서 보았..
스스로의 입술에서 흘러내릴 것 같은 열을 기억하면서 로조는 눈을 가늘게 눈을 깜박였다 온몸이 뭔가로 만들어지는 감촉을 느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나쁜 기분은 아니였다 아니, 차라리 시원하다. 이런 기분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짜피 내 인생은 뭔가 타오르는 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신분에, 금화에, 미모에, 그리고 뭣보다 옳음에 연연했다 아무리 원해도,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하루하루를 쌓아 올려도, 결코 로조의 손에 그것들은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로조의 수중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모래 조각 하나라도 남겨져 잇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애태웠다 애타는 대로 모든 것을 불태워 주고 싶다고 수없이 바랐다 언젠가 뭔가를 잡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태워 버리는 일이야말로, 희망이..
굉음이 붉은 벽돌을 깼다 어둠 속을 나는 그 모습은 마치 날개의 무리처럼 보였다 그것을 이룬 것은 로조의 한 방망이였다 로조의 솜씨는 가늘다고는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형은 아무리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일제히 지붕에 깔린 벽돌을 날려내는 일은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즉, 저것은 이상 그 자체인 것이다 브루더는 가슴 깊은 곳에서 중얼거리며 은색의 침을 손끝으로 튕겼다 붉은 벽돌을 이리저리 피해 날라가는 바늘의 빛 로조의 목과 심장을 겨눈 그것은 하늘을 관통했다 이 이상 얼마나 잔재주가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단 나았다 이제 로조의 몸에는, 자신의 바늘이 통하지 않는가 하는 그런 브루더의 불안을 털어낼 정도로 바늘은 로조의 목과 심장을 도려냈다 특별히 제조한..
필로스의 통치자석, 거기에 조용히 앉아있는 로조의 모습을 브루더는 창문을 통해 보고 있었다 미심쩍다고 해야하나, 기묘하다고 해야하나, 아무래도 이상해 적의 수괴인 로조, 그 주위에 호위병이 없다 로조는 홀로 사무관이나 호위병이 시중들게 하지 않고 흔들거리는 등불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마치 손을 댈 거면, 내밀어 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것은 명백한 위화감 영주, 통치자의 관사란, 본래 그 도시가 자랑하는 최대의 주택으로 상응하는 병사와 종자가 활보하여 주인을 영접하는 곳이다 도시 필로스의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데도 통치자의 주위에 호위 한 사람 두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로조의 주위뿐 아니라 이 통치자 관사 자체가 이상했다 보통 같으면 별의별 호위가 주위를 배회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