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35)
8성 연합
"잘 오셨습니다, 문장교 여러분" 그 말을 시작으로 필로스 성문 위에서 드높은 목소리를 내는 로조를 바라보며 눈을 느슨하게 했다 로조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상당히 매끈한 것이였다 과연 혀가 잘 도는 남자다 입술을 열면 열수록 말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그런 성질일 것이다 말을 주물럭거리는 그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당당하다 "로조 님, 무슨 생각인지 알려주시면 고맙겠군요" 옆에서 라르그도 안이 로조의 이야기에 맞물리듯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시선을 낭비하게 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시계 바늘이 다리를 놓아주면, 적의 뱃속에 가라앉아 버린 이 최악의 상황도 아직 나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안을 바라보며,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대성교, 그 쪽은 문..
왔다, 왔다, 왔다, 악마가 발소리를 내며 찾아왔다 로조는 어깨를 뒤로 당기며 도시 필로스의 성문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 보았다 문장교의 일대가 개에게 쫓긴 것처럼 가도를 달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당연하지, 등에서 돌탄을 맞고 의기양양하게 맞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놈들은 무장을 갖추었지만 본래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야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진 않겠지 자, 온다 산적이나 뭔가의 습격으로 착각한 채 도시 필로스의 문 앞까지 이르렀을 터 로조는 그렇게 반복해서 머리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모든 것이 잘 될거라고, 자신에게 타이르듯 역시 오늘만큼은 로조도 허세를 부릴 여유가 없었다 전투나 전술 같은 것은 로조에겐 너무나 한계적이였다 혀밖에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
나는 손가락 끝을 장갑으로 감싸고, 몇 번 손가락으로 굽혔다 한숨을 쉬면 벌써 하얀 우박이 보일 만큼 기온이 내려가 버린 듯 했다 추위에서 몸을 숨기듯 하면서 말발굽을 느릿느릿 하며 군사와 함께 가도를 걸었다 오늘만큼은 군마의 포효도 얌전했다 병들도 뺨에서 강함과 긴장이라는 것이 빠져나간 듯 했다 그것도 어쩔 수는 없겠지 어쨌든 오늘은 전장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훈련하러 간다는 것도 아니다 도시 필로스로 가서 물자의 수령과 정보의 교환을 실시하러 가는 것 뿐... 목적이 그러면, 호위하고 있는 병사들의 기색은 좋든 실든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딱히 군기 같은 것은 잡혀져 있지 않아 보였다 도적과 산적류도 소수지만, 장비를 갖춘 군대를 적으로 삼을 만큼 바보는 아니였고 거기에 더해 마수가 그 몸을 활..
일찍이 로조가 창관에서 개처럼 취급받던 시절에 그는 자신이 부정한 인간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신의 구원도 사랑도 받을 수 없다며 말이다 어짜피 주인도, 창녀도, 손님도, 나 이외에는 극히 평범하고 인간다운 태도를 취하는 주제에 내게는 물건에 해당하는 태도를 보이니까 틀림없이, 내가 부정하고 옳바르지 않는 사람이니까 매일 밤을 자든, 기도하든, 선행을 베풀든,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착각이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로조가 청년으로 불릴 만한 나이가 되서부터였다 그 무렵에야 로조는 남들과 같은 복장을 허락받고 몸가짐을 갖추라는 명령을 받았다 창관의 막노동만 하는게 아니라 손님을 끌고 오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였다 별로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개와 같은 자신이 그런 할 수 있..
하얀 눈과 길게 다듬어진 머리카락이 똑바로 하늘을 꿰뚫으며, 찌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분노일까, 실망일까, 동정이나 비탄의 종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어떤 감정이었다고 해도, 겁쟁이 같은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로조는 그 소녀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흉포한 면은 아낌없이 얼굴에 붙이고 창을 휘두르는 시민들 그녀는 그들과 맞대한 창의 끝을 시야에 넣고 손가락 끝하나 겁먹게 하지 않은 듯 했다 오히려 입술은 버젓이 벌어져,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로조, 민회는 통치자를 구속할 권한이 없다 당장 창을 아래로 돌리고, 스스로의 일로 돌아가라" 필로스 트레이트의 목소리는 상당히 맑았고 그녀의 하얀 눈동자 만큼이나 색깔이 없었다 어디까지라도 바르고, 끝까지 꺾이지 않는다 그저 꼿꼿한 성격,..
첩의 왕녀 옛날에 그렇게 불렸던 그녀는 갈라이스트 왕국의 왕, 아멜라이츠 갈라이스트의 사생아였다 출신은 서민 신분이였던 하인이 낳았다는 말도 있었고 사랑에 빠진 하류 귀족들 사이의 자식이라는 말도 있기에 정확한 것은 누구도 판별할 수 없었다 여하튼 사실을 아는 사람은 국왕을 포함한 아주 적은 자들이며 그 사람들은 공주가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첩의 왕녀, 이전의 갈라이스트 왕국에서는 그 호칭을 필두로, 차례차례로 그녀를 헐뜯기 위한 품평이 주위로부터 들끓어서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그것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본래라면 왕족이라는 존재에 악평이 붙을 리 없었다 왕가라는 핏줄에 국가라는 대검을 쥐락펴락하는 왕의 핏줄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왜 ..
사람을 멀리 내쫒는 듯한 인상을 주는 외안경에 이쪽의 뇌수의 밑바닥까지 간파하는 듯한 하얀 눈동자 나는 몇 번 눈을 깜박이면서,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디까지나 하얗고, 무기질적이까지 한 그 눈에 나의 마음에 홀린 듯이 시선을 빨려들어갔다 물론 그 색깔이 신기해서, 기이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였다 나의 기억이 예전에 그것을 한 번 본 적이 있지 않은가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름도 다르고, 분위기도 매우 다르다 그러나 이런 눈, 일찌감치 이런 물건을 가진 인간은 만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입술을 기울이고 헤아리듯이, 그 표정이나 몸짓을 바라보았다 가슴 가장자리에 무언가의 감정이 스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던 터라 대충 상대편도 눈치를 챈 ..
필로스 트레이트의 뺨을 바람이 때렸다 모래 먼지가 날리고, 몸에 휘감긴 예복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마치 요정이 장난치는 듯이 오늘은 바람이 매우 강한 것 같았다 필로스 트레이트는 배후에 사무관과 호위관을 데리고 문장교의 진지를 밟고 잇었다 한 쪽에 흰 눈이 있기 때문일까, 대성교도의 치장이 있기 때문일까 부담스러울 정도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혀 오는 것을 느꼈다 무례한다고 해도, 그것을 거부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필로스 트레이트 또한 상대측을 상당히 호기심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대성교도에겐 문장교도가 당당히 나도는 모습은 드물었고 엘프는 전설적으로만 들었던 존재이기에 모든 것은 필로스 트레이트, 대성교의 가치관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였다 이것이 이종족, 이교의 문화란 말인가 필로스 트레이트는 일종..
"루기스, 지금 뭐하려고 하는 거에요?" 성녀 마티아의 그 한마디로 무겁게 감겼던 나의 눈꺼풀이 열라고, 눈이 빛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 숨을 가늘게 내쉬고, 입술을 움직였다 "...졸음이 와서 말이야, 황금비단 같은 멋진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산산히 지친 듯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말했다 아니, 실제로 내 머릿속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마음껏 피폐를 호소하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잠이 모잘랐다 게다가 필로스 트레이트라는 통치자님과 얼굴을 맞대며 내가 입을 주고 받는 일 따위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방침은 마티아가 이미 결정해 버렸을 것이고 세부는 라르그도 안이 잘 채워줄 것이다 즉, 내 역할은 의자에 기대어 있는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눈을 감고 있어도 별 문제는 없겠지 나는 그런 말을..
통치자가 사는 영주관에서 로조가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모습을 보였다 그의 얼굴엔 표정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가 얼굴에 쾌활함과 미소를 보이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 앞 뿐이였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서, 신용이나 호감 같은 것을 남에게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반대로 우울한 표정은, 그 자체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 커다란 대문 앞에서, 위병이 오른손을 들어 경례 자세를 취했다 로조는 시민의 대변자 영주관의 위병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로조는 경의를 표해야 할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통치자님의 모습은 어떠셨습니까, 로조님?" 로조를 비서처럼 따라다니는 한 사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로조에게 큼직한 외투를 건네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조의 한없이 높은 목소리와는 정반대의 음색이였다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