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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47화 - 부정한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47화 - 부정한 자 -

개성공단 2020. 5. 2. 20:49

일찍이 로조가 창관에서 개처럼 취급받던 시절에

그는 자신이 부정한 인간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신의 구원도 사랑도 받을 수 없다며 말이다

 

어짜피 주인도, 창녀도, 손님도, 나 이외에는

극히 평범하고 인간다운 태도를 취하는 주제에

내게는 물건에 해당하는 태도를 보이니까

틀림없이, 내가 부정하고 옳바르지 않는 사람이니까

매일 밤을 자든, 기도하든, 선행을 베풀든,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착각이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로조가 청년으로 불릴 만한 나이가 되서부터였다

 

그 무렵에야 로조는 남들과 같은 복장을 허락받고

몸가짐을 갖추라는 명령을 받았다

창관의 막노동만 하는게 아니라

손님을 끌고 오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였다

 

별로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개와 같은 자신이 그런 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했다

자신이 말을 건다고, 과연 손님이 오기나 할까

 

하지만 그런 불안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로조의 호객은 호조였다

입이 너무나 잘 돌아서, 떠나려는 손님들조차 불러세울 지경이였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지어대는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이 때였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훨씬 더 큰 것을 알아버렸다

 

사람은 사람의 본질 따위는 아무것도 꿰뚫어보지 않는다

...는 것도 알게 되어 버린 것이였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욕설을 하고 진흙을 던져온 인간들이

조금만 옷매무새를 다듬어도 웃으면서 말을 주고받게 된다

자신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는데

외형 하나로 개가 아닌 인간으로 취급하게 되는 것이였다

 

내가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하는 것은 일체 관계 없이

 

로조는 깨달았다

결국 옳음이나 성실함 같은 것은 아무 상관 없이

그저 누구나 남의 모습을 보고 판단했을 뿐

머리 속으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였다

그런데도 모두가 이상하게도, 자기를 옳다고 믿고 따라주었다

 

로조는 그것이 울적하고, 얄밉고, 꺼림칙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옳은지, 아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능청스런 얼굴로, 자신이 옳다고 우길 수 있는가

그것이 너무도 이상해 죽겠단 말이지

민회의장에서 조금만 부추켜 주면 기치를 바꾸는 정의가 뭐가 옳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런 로조에게도 필로스 트레이트라고 하는 소녀만은 달랐다

그녀는 언제나 옳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전의 영주처럼 민회와 담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만도 아닌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녀

실수 그 자체인 자신과 몇번이고 대립해 온 그녀

 

나는 물론 당연히 다른 인간과도 다른 존재였다

흔들리지 않는 올바름을 계속 발하는 것은

로조라고 하는 남자가 필로스 트레이트라는 소녀에게 안고 있던

애태움과도 가까운 감정이였다

 

 

 

 

 

*

 

 

 

 

 

곰팡내 나고, 메마른 것 냄새가 나는, 지하 감옥

현재 필로스 트레이트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였다

 

그곳엔 불빛 같은 것이 없었고, 지하 감옥에 빛이 밝혀지는 것은

간수가 촛불을 들고, 하루에 몇 번씩 순회를 할 때뿐이였다

그 이외에는 단지, 공간 자체가 소침해 버린 것 같은

어둠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로조는 홀로 호위병도 붙이지 않은 채, 활보하고 있었다

그가 딱딱한 바닥을 밟아 디지는 소리만이 주위에 울려 퍼졌다

그 밖에 들려오는 소리는, 고작 죄수의 신음소리 뿐

 

발소리가, 맨 왼쪽의 지하감옥 앞에서 멈추었다

두꺼운 철문이 로조의 눈 앞에 있었다

 

로조는 철문의 작은 구멍에 입을 갖다 대면서

수염을 만지작 거렸다

 

"상태는 어떻십니까?"

 

잠시 아무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로 철문이 소리를 막아버린 것 아닐까

로조가 생각할 무렵, 간신히 소리가 들려왔다

 

"...공기 마시느라, 고생한 건 처음이야"

 

상당히 쉰 목소리였다

목에 상처라도 입었는지는 몰라도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으니, 순수하게 체력도 피폐해졌을 것이다

 

여하튼 이 곳은 본래 귀인이 들어갈 수 있는 감옥은 아니였다

청결함 같은 건 없었고, 쥐가 마루를 달래고,

곰팡이가 천장을 기어가는 그런 곳이였다

통치자였던 필로스 트레이트로서는 오물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

 

게다가 완전히 쇠약해진 것은

분명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혹시, 내 휘하였던, 호위병이나 사무관들에게 손찌검을 하진 않았겠지"

 

쉰 목소리의 마디마디에서 느껴지는

무엇인가를 참는 듯한 울림

간간히 신음으로 바뀌는 듯한 소리...

 

로조는 생각했다

간수나 시민 중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무거운 쇠사슬로 묶인 그녀를 철봉으로 때린 것일까

아니면 고문이라도 했던건가

어쨌든. 그녀에게 무언가가 상처를 입혔던 것 같았다

 

신을 거역하는 배덕자에게 손대는 사람은 없겠지만

울분풀이에 폭력을 휘둘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로스 트레이트의 온몸은 통증으로

제대로 움직 일 수는 없겠지

그러면서도 자신을 따라와 주었던 자들의 걱정이라니

로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문 앞에서 시민에게 둘러쌓였을 때

호위병은 당신을 지키려 하지 않았고

당신을 감싸려고 움직인 건, 사무관 뿐이였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팔았다고 그렇게 말했다

사실 그저 겁에 빠진 나머지, 움직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든 병사가 로조 민회의 앞잡이가 된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결국은 마찬가지다

누구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단 하나의 저항도 없이...

 

그것은 그녀를 우리에게 팔아넘긴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로조는 살짝 이를 맞물렸다

 

병사의 배신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로스 트레이트에서 돌아올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기침 섞인 목소리가 지하 감옥에서 울려퍼졌다

 

"그런가... 로조, 그래서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필로스 트레이트가 병사에 대한 말은 것은 그런가, 한 마디였다

그 한마디엔 비애나 분노가 담겨 있는 것일까

아니면 딱히 떠오르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로조는 아픔을 참듯 하면서 들려오는 그녀의 느긋한 말에

그저 말없이 받아들였다

 

"너의 소망이 권력인지, 아니면 금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병을 사용하여 문장교에게 철저항전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한랭기를 넘길 수 없게 될게 되어

물자도 다 잃고, 도시 자체도 말라 죽을 것이야"

 

필로스 트레이트는 철문의 안쪽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갔다

민회도 당신의 말이라면 듣겠지만, 한계가 있다

대성교의 구원도 그렇게 전망이 밝지 못하다

그렇다고 문장교와 전쟁을 실시했다간, 

필로스라는 도시는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로조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조용히 끄덕 일 뿐이였다

 

전적으로 그녀가 말하는 것은 모두 옳았다

분명 그 말대로, 그녀는 이 지하 감옥에 있으면서

머리 속을 쉬게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배신과 같은 처사를 당하면서도, 원망이나 증오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도시를 생각하고 있었을 뿐 이였다

 

아아, 어디까지나

그녀는 도시 필로스의 올바른 통치자인 것이였다

분명 그녀는, 여기에 이르러서도, 도시를, 시민들을 사랑하고 있다

 

역시 그녀는 자신과 정반대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로조는 가슴 앞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제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 거리가 그냥 싫을 뿐이에요, 당신도, 민회도, 모두 다"

 

그것은 로조가 정말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게 한, 허식 없는 목소리 였다

 

"필로스 트레이트 님, 제가 충고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분명 어디까지나 옳습니다

그 올바름은 제가 홀딱 반할 정도지요"

 

필로스는 로조의 말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반박할 생각도, 뭔가 참견할 생각도 없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감옥에 어울리지 않은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갔다

 

"그 올바름 속에서 살 수 없는 인간도,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약하고, 강하고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잘못 밖에 살 수 없는, 그런 성질의 인간 말입니다"

 

로조는 나 처럼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조는 그 말만 철문에 던지고

더 이상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은 채,

발길을 돌리고, 지하 감옥에서 나가버렸다

 

필로스 트레이트의 몸을 떨어뜨려

도시 필로스의 힘을 약화시킨다

 

자기가 맡은 일의 대부분은 끝냈다

다음은 정밀하게, 적당히 문장교군을 피해가게 하는 것 뿐

 

로조는 갈라이스트 왕국으로부터 받은

밀서를 촛불의 불에 태우고, 입가의 수염을 살짝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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