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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41화 - 눈을 뜨지 않는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41화 - 눈을 뜨지 않는 자 -

개성공단 2020. 5. 1. 21:51

통치자가 사는 영주관에서

로조가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모습을 보였다

 

그의 얼굴엔 표정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가 얼굴에 쾌활함과 미소를 보이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 앞 뿐이였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서, 신용이나 호감 같은 것을

남에게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반대로 우울한 표정은, 그 자체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

 

커다란 대문 앞에서, 위병이 오른손을 들어 경례 자세를 취했다

로조는 시민의 대변자

영주관의 위병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로조는 경의를 표해야 할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통치자님의 모습은 어떠셨습니까, 로조님?"

 

로조를 비서처럼 따라다니는 한 사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로조에게 큼직한 외투를 건네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조의 한없이 높은 목소리와는 정반대의 음색이였다

 

로조는 입을 꼬불꼬불 구부리며 말했다

 

"예상대로야, 당연하게도"

 

집무실의 필로스 트레이트를 떠올리며

로조는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다

 

서니오 전투 때도 그렇다

자치도시일 뿐인 필로스가 살아남으려면

강자인 대성교의 발밑에 매달리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였다

그 자세를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자신의 사병을 사용한 것을 포함해

그녀의 선택은, 통치자로서 반드시 올바른 행동이였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한다면

그녀의 행동에 반대하는, 자신도, 시민도 분명 옳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하튼 시민을 선도하는 자신을 가리켜 옳다고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뭐, 시민 패거리들은 자신이 옳다고 그렇게 우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나는 옳지 않았다

민회의장에서 시민에게 불어넣고 있는 것은

빈말에 지나지 않고, 대성교나 문장교에서 돈을 뜯어내

필로스 트레이트를 계속 몰아붙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바른 그녀를, 절벽의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였다

 

그러니까 분명, 나의 행동은 옳바르지 않다

로즈는 그렇게 믿으면서 불의부정의 길을 걷고 있었다

 

로조 옆의 비소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열었다

 

"개탄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역시 그 흰눈은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나지 않는 군요"

 

몹시 성난 듯한 말투였다

로조의 입술이 약간 굳었다

최근 필로스 시민의 말버릇은 이것이였다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는다

그 녀석은 무엇이 옳은 지 알 수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민회에서는 그 말을 외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로조는

옆구리가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이라는 놈은 내게 돈도, 혈통도, 힘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며, 

그 눈에 검은색을 띠게 하는 재주 외에는 아무것도..

 

로조는 자기에겐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민회의장에서 시민의 지지와 갈채를 받고

시민의 대변자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정말로 올바르지 않은 짓으로...


로조는 입가의 수염을 살짝 튀기며 말했다

 

"시민들에게 전하도록, 이런 날은 이젠 끝임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다

옳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다

나는 옳음 같은 것이 정말 싫으니까 말이야

로조는 비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입을 크게 벌렸다

 

 

 

 

*

 

 

 

 

 

나는 초록색 군복에 얇은 장갑을 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대천막 속에서 나와 성녀 마티아, 그리고 측근 라르그도 안만이

공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셋만 놓고 보자면, 이 천막 안은 매우 넓게 느껴졌다

 

"내가 필로스 통치자와 상견례를 할 필요가 있는거야?

허수아비를 세우는 편이 차라리 나을거 같은데"

 

따로 내 천막에서 카드판이나 휘두르거나

적당히 들판에서 바람을 쐬고 와도 되지 않을까

그런 뜻을 담아서 말했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타협 의사를 보이면

일찌감치 이 분위기가 굳어진 천막 속을 탈주할 생각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안은 그런 내 생각을 전부 간파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루기스님 혼자 뒀다간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요

아, 혹시라도 그런짓을 했다간 기호품을 끊어버릴수도 있어요"

 

안의 그런 말을 듣고, 나는 약간 들떠 있던 허리를

그대로 의자에 되돌리고 말았다

 

안돼, 안은 이 전쟁에서 물자의 유통을 도맡아 하고 있어

지금의 말은, 내가 멋대로 움직이면

내일부터 딱딱한 빵과 더러워진 물 밖에 주지않겠다는 거잖아

이거 완전 협박 아니야?

 

술도 그렇지만 담배가 떨어지면 치명적이다

 

여하튼 지금까지 품에 넣고 있었던 씹는 담배가

서니오 전투의 칼싸움으로 피에 젖어 버렸다

역시 피맛나는 담배를 즐기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나는 이 자그마한 지배자에게 머리를 숙일 수 밖엔 없다

 

내가 어깨를 움츠리고 표정을 굳힌 것이 재미있었는지

안은 가볍게 목을 울리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

 

요즘 아침이고 저녘이고 바쁜 사람이 많았던 지라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였다

그 어딘지 사람을 따르는 듯한 얼굴을 보고있자니

군량과 무기를 중심으로 한 보급품을 두루 문장교군에 전해지도록

날마다 머리속에서 계산을 반복하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마티아도 그런 안의 미소에 끌렸던 것일까

얄팍하고 갸륵하기까지 한 미소를 얼굴에 붙이고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조금만 내 편을 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내 가슴속에서 울렸다

 

"예, 성녀와 영웅, 그게 그쪽이 원했던 협상 상대니까요

게다가 루기스, 얼마전부터 얘기하고 있던 거지만

당신도 슬슬 문장교의 일원으로서의 자각을 가지지 않되겠습니까"

 

그렇게 내 기대는 그렇게 그쳤다

역시, 아무래도 이 자리에 내 편은 없는 것 같다

 

성녀 마티아, 그리고 나

그것이 상대편 자치도시 필로스의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가 요구한 교섭 상대였다

 

고개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도시를 무덤으로 할 것인가

그 두가지 선택 중, 필로스 트레이트는 이쪽의 손을 잡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두 손을 들고 배를 보여주는 항복은 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도시 필로스는 아직 충분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쪽을 상대로 얼마간은 항전하는게 가능했다

 

그래서 이쪽도, 처음부터 끝까지 강경책을 쓸 만큼 여유가 없었고

서니오 전투로 상처를 입고 회복한지 얼마 안되었기에

솔직히 필로스를 상대로 헛된 희생을 늘리는 일은 

삼가고 싶었던 것이 문장교의 속내일 것이다

여튼 대성교는 아직도 남아 있는 힘을 가지고, 여기를 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의 형편이 맞물린 결과

협상장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쪽도, 저쪽도, 교섭자의 수는 같은 숫자

장소는 문장교의 대천막 안

 

솔직히 내가 있어서 뭔가 도움이 되는가 하면, 의문이지만

성녀 마티아와 교섭인 안이 여기에 있는 것이니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옆에서 졸고 있어도, 무방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크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뇌가 요 며칠의 고생을 견디지 못했는지

그것만으로 산뜻하게 의식을 놓을 것 같았다

 

요 며칠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을, 마티아가 안 순간

그녀로부터 전술이나 앞으로의 방침, 정무에 대해서니 하는 식으로

억지로 머리속에 여러것을 집어넣기 시작한 것이였다

 

솔직히 조금은 봐줬으면 좋겠다고

나의 너와 뇌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인재를..라는 말도 모르는 건가?

 

아무튼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이 회의장에 도착했고

지금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지면서 의식 마저 떨어질 것 같은 상태에 도달했다

조금만 있으면, 기분 좋은 꿈의 세계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자, 꿈과 현실의 사이로...

 

"루기스,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그 귓속에 감기는 듯한

마티아의 목소리가 천막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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