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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40화 - 올바른 사람과 부정한 사람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40화 - 올바른 사람과 부정한 사람 -

개성공단 2020. 5. 1. 20:12

자치도시 필로스의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는 집무실 내에서

자신도 모르게 입술의 안쪽을 깨물고 있었다

 

그 흰 눈에 비치는 것은, 문장교에서 보낸 한 장의 양피지

그들의 문장이 날인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위서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내용은 

필로스 트레이트가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문장교의 협조 또는 도시와 함께 쓰러지던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조금이라도 연명하고, 후에 죽든지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필로스는 생각했다

최악이든 최저든 어느 쪽을 택하든 결과는 같다

 

문장교의 손을 잡았다고 해서

지금 잠시 위난을 모면할 뿐

대성교의 본대가 이 땅에 다가왔다면

도시 필로스도, 문장교도, 대성교라고 하는

거인의 일격에 쓰러질 것이다

 

그렇다고 대성교 본대를 상대로 농성 같은 흉내도 내기 어려웠다

 

이제 이 주변 지역은 이제 한랭기에 접어 들 것이다

대륙 북부에서는 하얀 눈이 덮이기 시작했고

아무리 거대 세력을 자랑하는 대성교라지만

그 안에 대규모 군대를 투입하는 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말을 지어내도, 일단 대성교는 문장교에 패배했기에

대성교에게 있어선 다음의 패배란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한랭기가 끝나는 동안, 충분한 병력과 사기

그리고 문장교에 대한 증오를 쌓아두고

눈이 없어지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로스의 명맥은 땅바닥에 떨어지겠지

 

이 곳은 자치를 부여받은 하나의 도시

당연히 강도나 산적으로부터의 자위를 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병력은 가지고 잇다

서니오 전투에 사용한 병력은

필로스 트레이트의 사병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였다

 

정식으로 도시군대를 하면,

문장교를 상대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도

그 군세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여하튼 병들은 대성교군이 문장교군에 삼켜진 모습을

눈으로든 소문으로든 보았기 때문에

문장교군을 보는 순간, 사기는 밑바닥으로 치켜 내려질 것이다

 

그런 열 없는 인간을 데리고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전쟁이란 인간의 광적인 열정을 서로 부딫치는 의식이다

 

필로스는 그런 생각들을 머리에 떠올린 채

천천히 그녀의 몸을 의자에 기대 앉았다

 

그리고 또 하나 전쟁을 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 이유는 조금만 있으면 곧 내 방에 나타나 알려줄 것이다

 

똑, 똑 문을 몇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필로스는 어서 들어오라며, 내팽개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이라는 외교 수단을 자기에게서 빼앗을 패거리들이 왔군

 

사무관의 조용한 목소리가 울러펴지며

그 등 뒤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 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용건부터 후딱 말하지?"

 

문이 열린 끝에는, 민회의장 대표 로조가

예복을 몸에 감싼 채,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로조, 그렇게 불리는 남자의 태생은 좋은 것이 아닌

오히려 천한 태생이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알지 못한 채, 태어났고

어머니의 얼굴도 이젠 잘 기억나지 않는 듯 했다

하급 창녀의 배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그냥 남들이 이봐, 라고 부르면, 대응하는 지경이였다

철이 들 무렵, 그는 결국 스스로의 이름을 지어내고 말았다

 

로조가 손발이 움직이게 될 무렵에는

창관의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주된 일은, 더러워져선 이가 나올 것 같은 시트를 빨거나

기분이 나쁜 손님에게 얻어맞는 것이였다

그것은 로조에게 당연한 일상이였고, 의문을 품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무렵 로조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생각할 머리도 없었고, 어쩌면 감정도 잊어버린건지

그저 부르면 움직이고, 그저 얻어맞거나, 일하기만 하는 일상이였다

 

그래,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신분도, 핏줄도, 힘도, 

신은 로조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주어진 것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이라는 가르침

 

"통치자님이 바쁘단 것은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기껏해야 민회의 대변자입니다

통치자님과 나눌 말은 거의 없습니다"

 

로조는 혀를 돌려, 입술을 움직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 음색은 묘하게 힘과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목소리가 방안에 퍼져가면서

필로스 트레이트의 귓볼을 흔들었다

 

필로스 트레이트는 로조의 말을 재촉하듯

턱을 작게 끄덕이며, 눈앞의 시선을 양피지에서 로조로 돌렸다

 

하얗고 무감정한 눈이 로조를 꿰뚫었다

자신을 향한 그 단단한 시선을

그는 익숙해졌다는 듯이, 가슴에 받아 들이며 말했다

 

"대성교 파병 협력, 그 결과 우리 자치도시 필로스는

뼈아픈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제 민회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알았어, 하고 필로스 트레이트는 입술을 작게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은 묻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로조도 생각하는 이는 같았다

이 통치자님은 민회의 의견을 들었다고 해서

그 태도가 갑자기 바뀌는 일은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인간이 나오는 것이다

 

로조는 특유의 싸늘한 눈을 깜박이며 입술을 열었다

말한대로, 지금 여기에서 그에게는

필로스 트레이트에게 주장을 걸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그 입술은 그저 민회의 결정을 전하는 것 뿐

 

"그러므로 민회는 문장교와 창을 거듭할 수도

협력을 할 수도, 굴복할 수도..."

 

"단호히 거부하면 그렇게 되겠죠, 뻔한 일이야"

 

필로스는 집무 의자에 앉은 채, 더는 흥미가 없다는듯

로조에서 시선을 떼고, 양피지에 다시 눈을 파묻은 채 말했다

 

로조라고 해도, 자신의 말이 너무나도 어리석인 것임은 알고 있었다

문장교에 협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도 하지 않는다

그런 형편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도시 필로스는 명확하게 문장교에 적대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런 형편이 잘된다면, 분명 이 세상은 더 훌륭할 것이다

소원은 이루어지고, 구원은 있고, 뻗은 손은 받아진다

그렇게 끝없이 아름다운 세상임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그런 세계가 있을리가

 

자치도시 필로스는 현재 궁지에 몰려있다

어느 선택지를 붙잡든, 그 끝에는 지옥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선택하는 입장에 있어서

아직 눈에 강한 의지를 품고 있는, 필로스 트레이트에 대해

로조는 실은 감탄 조차 자아내고 있었다

과거 통치자였다면, 오래 전에 갈라이스트 왕국으로 튀거나

문장교에 몸을 엎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는 여전히 최악 속의 최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통치자른 이름의 의자에 앉아있다

 

훌륭하다, 통치자의 거울이다

대성교가 말하는 올바른 자 그 자체야

만세합창까지 해주고 싶어

 

그런 옳음 같은 것이 아무 도움 안되는 것만 빼면 말이지

 

로조는 필로스 트레이트의 말을 듣고는

사람 좋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상이 민회의 뜻이겠습니다

통치자 필로스 트레이트 님이 더 나은 길을 선택하도록

우리 시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로조는 분명 이 소녀가 분명 바른 선택을

계속 이어나갈 것임이라고 가슴속에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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